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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호의 길 위에서 읽는 시] <18> 이정록의 ‘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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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9-11-04 22:28:00 수정 : 2009-11-04 22:2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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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게 별거냐 … 의자 몇개 놓는거지” 그는 튼튼해 보였다. 널찍한 어깨에 듬직한 키, 호방한 웃음과 ‘붕붕거리는 목소리’, 어떤 이야기든 그의 입을 통해서 나오면 걸쭉한 만담으로 육화되어 들리는 재미, 저 속에 슬픔이 깃들일 틈이 있기나 한 건지 의심스러워 실눈을 뜨고 쳐다보면 이내 속을 알 수 없는 심상한 표정으로 돌아가 있는 사내, 그이가 이정록(45) 시인이었다. 천안중앙고등학교 교정에서 시인을 만나 그의 모친이 홀로 사는 홍성 ‘황새울’까지 내려가는 내내 그는 스스럼없이 이야기를 풀어냈다. 

◇노모가 홀로 집을 지키는 시인의 고향 홍성군 홍동면 대영리 ‘황새울’ 들판에 선 이정록 시인. 옛날 이 들녘에는 우렁과 미꾸라지들이 풍부해 황새 왜가리 두루미들이 집 뒤 선산의 소나무 가지에 하얗게 척척 늘어앉아 있었노라고 시인은 회고했다.
그는 어머니를 자주 보면 시가 너무 많이 나와서 안 된다고 웃었다. 데뷔 20년째 접어든 그가 내놓은 5권의 시집에는 고루 어머니 이야기가 실려 있다. 모친이 말씀은 많지 않은 편이지만, 툭툭 던질 때마다 그대로 아들은 밤을 줍듯 시로 주워 올린다. 그가 최근 ‘웅진웹진 뿔’에 보낸 ‘엄니의 화법’이 생산된 배경을 보면 그 과정이 손에 잡힌다. 장발을 하고 다니던 시절 어느 날 파마를 하고 집에 갔더니만 모친이 고개만 내밀고 “큰애야, 너는 왜 농사도 안 짓는 애가 검불은 이고 다니냐?”고 말했다. 5개월 후 머리를 짧게 깎고 파마기를 없앤 후 갔을 때 엄니는 “어째 나라 경제가 어렵다더니 농사 채 다 팔아먹었냐?”고 다시 말했다. 몇 달이 흘러도 잊지 않고 안쪽 바깥쪽 대구를 맞춰버리니, 거기다가 몇 줄만 첨가하면 그대로 시가 아니 될 수 없다는 것이다.

“배냇짓부터 가르쳐준 엄니와 말싸움 해봐야 뭐하나?/ 선산 쪽에다 혼잣말 던진다// 머리칼에 불두화 수북헌 거 보니께/ 엄니가 내 땅 다 훑어갔구먼그류// 뽑지도 않은 배추밭에 함박눈 내린다/ 하느님도 농사 채 다 팔아잡쉈나?/ 그득그득 내려앉는 하늘 검불들.”(‘엄니의 話法’ 부분)

모친의 머리에 불두화 같은 허연 검불이 수북이 늘어나 있어 아들은 “엄니가 내 땅 다 훑어갔구먼그류”라고 말대답하려다가 애먼 함박눈 타령만 한다. 홍성군 홍동면 대영리 ‘황새울’에서 고추 고구마 토마토 농사를 지으며 홀로 지내는 이의순(70) 여사는 일행이 황새울에 도착해 “아들에게 시를 준다는 소문이 자자하다”고 인사를 건네자 “몰러유, 나는…”이라며 대수롭지 않다는 듯 고개를 돌렸다. 사실, 시인의 명민한 감수성이야말로 어머니의 말 한마디를 시로 승화시킬 수 있었고, 모친을 시인 반열로 치켜세운 동력일 터이다. 하지만 모친의 지혜와 애정이 없으면 이 또한 불가능했을 건 자명하다. 이들 모자의 대표적인 합작 명품이야말로 2006년 다섯 번째 시집 표제작으로 내세운 ‘의자’라는 시가 아닐까.

◇이정록 시인과 어머니 이의순 여사. 글감이 떨어질 만하면 ‘엄니’가 던지는 짧은 한 마디는 시인에게 그대로 시가 된다.
“병원에 갈 채비를 하며/ 어머니께서/ 한 소식 던지신다// 허리가 아프니까/ 세상이 다 의자로 보여야/ 꽃도 열매도, 그게 다/ 의자에 앉아 있는 것이여// 주말엔/ 아버지 산소 좀 다녀와라/ 그래도 큰애 네가 아버지한테는 좋은 의자 아녔냐// 이따가 침 맞고 와서는/ 참외밭에 지푸라기도 깔고/ 호박에 똬리도 받쳐야겠다/ 그것도 식군데 의자를 내줘야지// 싸우지 말고 살아라/ 결혼하고 애 낳고 사는 게 별거냐/ 그늘 좋고 풍경 좋은 데다가/ 의자 몇 개 내놓는 거여”

세상 사는 게 별거 아니라 서로 의자가 되어주는 일이란 말씀, 그것이 생명 있는 모든 것들이 살아낼 수 있는 이치라는 모친의 그 말씀은, 시인 아들의 가슴에 벼락 치듯 박혀 들었을 게다. 황새울까지 가는 차 안에서 어머니가 집에 계실지 모르겠다고 시인이 미심쩍어 했던 데다 모친을 뵈러 간다는 생각보다 그냥 시인의 고향집을 찍으러 간다는 무심함까지 가세해 불손하게도 빈손으로 시인의 고향집에 들어섰던 것인데, 모친은 아들이 부르자 잠시 뜸을 들이다가 환한 얼굴로 슬며시 나타났다. 아들이 “엄니, 어떻게 우리 올 줄 알고 머리까지 감으셨네”라고 농을 건네도 엄니의 표정은 흔들림이 없다.

3남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난 시인은 6살에 학교에 들어갔다. 영재여서가 아니라 동네 아이가 못살게 굴어 일찌감치 학교로 피신시킨 거였다. 학창시절 내내 시인의 별명은 ‘애기’였다. 고등학교 때까지 내내 반에서 1번을 차지했는데, 대학에 들어가 막걸리를 마시자 갑자기 키가 1년 사이에 9㎝나 커버려 지금의 장한이 됐다고 시인은 말했다. 그가 시인이 된 내력을 들어보면, 역시 시인은 타고나는 것이란 생각이 다시 굳어진다. 아버지가 대학은 못보내 준다고 공무원 시험이나 보라 하여 고등학교에서 직업반인 ‘상과’를 선택했는데, 친구가 자기는 은행시험을 봐야 한다고 사정하여 ‘문과’로 바꾸어주었고, 공대를 가려고 이과를 선택했는데 눈이 나빠서 문과로 바꾸어야 한다는 친구가 쥐포 3마리를 사주며 다시 바꾸자 하여 이과로 간 것인데, 문과 이과 상과를 다 거치게 된 그가 반에서 글짓기 숙제를 대표로 내야 하는 국면에 이르러 이정록이 문과에서 왔다는 이유만으로 얼떨결에 선수로 뽑히는 바람에 글쓰기의 운명에 발을 들여놓았다는 것이다. 

이런 판국에 세 살 위의 누나가, 시인이 일찍 학교 들어가는 바람에 한 학년 차이밖에 나지 않았는데, 아버지가 딸내미까지 고등학교는 보내지 못한다 하여 단식투쟁까지 했건만 끝내 공장에 취직했고, 첫 월급으로 누나가 한국여류수필문학전집을 샀다가 보너스로 나온 만해 한용운 시집을 동생에게 주었던 것인데, 후일 시인이 된 그 고등학교 2학년 동생은 한참 상고 다니던 여학생을 짝사랑하던 때여서 만해의 시 ‘나룻배와 행인’에 꽂혀버렸다. “나는 나룻배/ 당신은 행인.// 당신은 흙발로 나를 짓밟습니다./ 나는 당신을 안고 물을 건너갑니다./ 나는 당신을 안으면 깊으나 얕으나 급한 여울이나/ 건너갑니다.”로 시작되는 그 시는 짝사랑하는 여학생 집 소유의 저수지 나룻배에 앉아 있곤 하던 그의 심정에 절절히 박혔다. 대학 2학년 때 다시 우연히 서점에서 정희성 시인의 ‘저문 강에 삽을 씻고’를 사서 자취방으로 돌아가는 길에 읽고 또 읽으면서 “시가 사람을 울릴 수도 있다”는 사실(정희성 시인은 1회 김수영문학상을, 이정록은 20회 김수영문학상을 받았다)에 놀랐다. 이후 시라는 것을 쓰기 시작해, 아버지가 이장이어서 집에 ‘샘터’가 배달되던 시절 우연히 그 잡지의 독자투고란에 시를 응모해서 ‘지난 가을’이라는 시가 최초로 활자화되자, 전국 각지에서 펜팔이 쇄도했다. 후일 약혼자의 성화에 응모했다가 대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됐고, 다시 4년 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뽑혔다.

워낙 그의 재담이 승한 편이어서, 한 가지 이야기에도 길게 흠뻑 빠져버리게 마련이다. 도대체 그에게서 슬픔의 정서는 얼굴만 맞대고 있으면 느껴지지 않는 편이어서 짐짓 어깃장을 놓았더니 그는 자신의 ‘고난의 깃발’을 가까운 사람들은 안다고 했다. 가깝지 않아서 그가 털어놓지 않은 이야기들을 듣지 못해 아쉬웠고, ‘황새울’에 도착할 무렵 길가를 가리키며 저곳이 삼촌이 서울에서 죽어 내려와 상여로 떠났던 자리라고 스치듯 말했던 기억도 났다. 할머니가 아들을 못 낳은 집의 후처로 들어갔는데, 다행히 아들을 줄줄이 낳았지만 장남인 아버지 밑으로 삼촌들이 세 명이나 연달아 자살했다. 성장기 시인의 가슴에 파인 그 검은 우물이야말로 “켜놓고 잠들어도 눈부시지 않은 빛, 백열전구처럼 몸을 날려 목숨을 끊는 일은 이제 나의 가계에서는 없어야겠다. 터져 버린 알전구의 날 선 밑동을 돌릴 때, 섬뜩해라. 그 칼 가는 소리는 마치 이승의 빛을 서둘러 꺼버린 삼촌들의 신음 같다”(‘형광등’ 부분)는, 적어도 겉으로는 만담가에 가까운 그가 울림이 깊은 시를 쓸 수밖에 없는 동인일 것이다.

하지만 이런 서사적인 시보다도 이정록 시인의 가장 빛나는 매력은 ‘한 소식’에 가까운 짧은 시들이다. 이를테면 “돌부처는/ 눈 한 번 감았다 뜨면 모래무덤이 된다/ 눈 깜짝할 사이도 없다// 그대여/ 모든 게 순간이었다고 말하지 마라/ 달은 윙크 한 번 하는데 한 달이나 걸린다”는 ‘더딘 사랑’이나, “어미의 부리가/ 닿는 곳마다// 별이 뜬다// 한 번에 깨지는/ 알 껍질이 있겠는가// 밤하늘엔/ 나를 꺼내려는 어미의/ 빗나간 부리질이 있다// 반짝, 먼 나라의 별빛이/ 젖은 내 눈을 친다”는 ‘줄탁’ 같은 시는 시사에 남을 만하다. 지구라는 알에 갇혀 있는 병아리가 우주에서 쪼아주는 어미(혹은 신)의 부리질을 별빛으로 받아들이는 시인의 감수성은 놀랍다.

한 번은 친구가 참치회를 산다 하여 제법 급이 높은 비싼 걸 시켰더니 취중에 기가 막힌 시가 떠올라 자신이 술값을 계산하고, 너무 기분이 좋아서 다시 맥주집에서 2차를 산 뒤 서둘러 집에 가 책상머리에 앉았더니 아무 생각도 안 났다고 했다. 다시 그 집에 가서 똑같은 안주를 시켜놓고 술을 마셔도 짧고 명쾌하게 왔던 그 시구는 종적을 감춰버려, 안 써도 되는 술값만 아깝게 탕진한 적도 있었다.

황새울에서 나와 시인의 각별한 누님 이정희 여사를 홍성읍에서 잠시 일별한 뒤 서해의 궁리포구로 갔다. 포구의 밤, 시인은 그가 동화와 동시에 빠져 지내는 근황을 설명했는데(최근 ‘창비’에서 첫 동시집 ‘콧구멍만 바쁘다’를 출간했다), 시인의 모친이 황새울에서 당신은 평생 머슴처럼 일했지만 자식들은 농사를 도와주지 않고 연필만 잡고 있다고 푸념했는데, 최소한 7편 이상 비축돼 있지 않으면 청탁에 응하지 않는다든지, 벌써 두세 권 분량의 시를 써놓고 차기 시집에 넣고 빼는 일을 저울질하고 있다는 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정록은 어머니 못지않은 부지런한 농사꾼이라는 사실을 절감할 수밖에 없었다. 왜 동시나 동화에 꽂히는지 물었을 때에서야, 그에게 시라는 것은, ‘가슴을 후벼 파는’ 장르라는 사실을 알았다.

“시는 앞발을 그러모아서 날카로운 것으로 지 가슴을 짜야 나오는 것이고, 스트레칭을 해서 등딱지를 긁는 것이 아동문학이여. 시는 가슴의 상처와 펜 끝이 너무 밀착돼 있지만 동화나 동시는 달빛 출렁이는 밤바다처럼 여유가 있어. 여튼 가슴을 후벼 파는 게 시라면, 아이들 문학은 따사롭고 위무를 받는 느낌이유.”

조용호 선임기자 jhoy@segye.com
■이정록 연보
●1964년 충남 홍성 출생
●1985년 공주사범대학 한문교육과 졸업
●1989년 대전일보 신춘문예 시 ‘농부일기’ 당선
●199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 ‘혈거시대’ 당선
●2001년 김수영 문학상, 2002년 김달진문학상 수상
●시집 ‘벌레의 집은 아늑하다’ ‘풋사과의 주름살’ ‘버드나무 껍질에 세들고 싶다’ ‘제비꽃 여인숙’ ‘의자’, 동화책 ‘귀신골 송사리’‘십 원짜리 똥탑’, 동시집 ‘콧구멍만 바쁘다’
●천안중앙고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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