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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휘 여원미디어 대표는 “출판 저작물의 해외 수출은 고품질을 기본으로 상당한 시간과 정성이 필요하다”며 “우리 같은 조그마한 출판사도 해냈는데 왜 대형 출판사들이 수출에 나서지 않는지 모르겠다”며 안타까워한다. 이제원 기자 |
‘출판사→도서 도매상→서점→소비자’라는 도서유통 공식을 깨고 소비자와 직거래를 튼 여원미디어·한국가드너㈜ 김동휘(54) 대표이사의 말이다. 아르바이트로 시작해 11년 동안 출판사에서 기획, 편집, 제작, 배본, 영업, 수금 등 출판과 관련한 모든 업무를 숙지한 김 대표는 1992년 ‘대일’이란 출판사를 차렸다. 퇴직금 1000만원을 투자해 펴낸 초등학생용 전래동화전집 ‘어린이 큰 마을’(전20권)이 1개월 만에 3000질이나 팔려나가 순이익만 6000만원이 났다. 디자인, 제본 등에서 당시로서는 최고 품질을 고집한 덕분이었다. 뒤이어 낸 과학학습만화도 대박이 나 매년 3만질씩(판매가 30억원) 팔려나갔다.
“외환위기 때 부도를 맞았습니다. 악몽과도 같은 경험이지만 평소 보여준 근면과 부지런함을 믿어준 사업 파트너들의 도움으로 3년 만에 다시 일어설 수 있었습니다. 2001년 상호를 ‘여원미디어’로 바꾸고, 타깃도 초등생 위주에서 영·유아로 특화하고 소사장제를 전국총판 시스템으로 대신했습니다. 모든 시리즈물에 ‘탄탄’이란 타이틀을 붙여 이미지도 통일시켰습니다.”
서점의 전횡에 반기를 든 김 대표는 전국에 직거래점을 구축키로 했다. 이렇게 해서 탄생한 게 ‘탄탄스토리하우스’다. 법제화하기 5년 전에 도서정가제를 철저히 지켜 상품에 대한 자부심 고양은 물론 출판사와 소비자의 신뢰를 굳혔다. 김 대표의 실험은 모두 적중했다. 특히 팀장제와 인센티브제를 조기 도입한 게 주효해 사원들의 자발성이 회사 발전에 큰 힘이 되었다.
“탄탄스토리하우스는 현재 전국에 35개 지점이 있습니다. 파주에 번듯한 사옥 대신 탄탄스토리하우스를 지을 때 많은 사람이 의아해했지만, 지금은 모두 고개를 끄덕입니다. 그림(원화) 감상에서 동화 낭송, 구연동화, 인형극, 매직쇼, 음악감상 등에 이르기까지 책을 능률적이고 효과적으로 읽을 수 있게 도와주는 프로그램을 운영해 어린이와 학부모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고 있습니다.”
김 대표의 바람대로 파주 출판도시 내 탄탄스토리하우스엔 매일 300여명의 어린이가 찾아와 책과 놀다 간다. 유치원생 등 단체는 예약을 해야 입장이 가능할 정도다. ‘어린이전문서점’이자 ‘교육문화센터’인 탄탄스토리하우스를 전국에 100개를 만드는 게 목표인 김 대표는 경기 용인시 기흥엔 파주보다 두세 배 큰 규모의 탄탄스토리하우스를 지어 어린이와 작가가 함께 어울리는 공간을 제공할 계획이다. 집필실을 설치해 작가들의 창작 동기도 부여하고, 작품을 세상에 내보내기 전에 어린이들의 모니터링을 받아 완성도를 높이겠다는 원대한 구상이다.
“우리나라가 선진국이 되려면 ‘1사1문화 공간’이 있어야 합니다. 출판사는 크든 작든 북카페를 운영해야 합니다. 대부분의 백화점이 문화센터를 운영하지 않습니까. 정부와 언론이 나서 독서 캠페인을 벌인다고 출판 불황이 해결되지 않습니다. 국민이 책을 들게 하려면 출판 소비자들의 문화 수준을 높여줘야 합니다. 책을 읽을 만한 공간 마련과 방법을 알려주는 게 시급합니다.”
김 대표는 우리나라의 문화지도를 확 바꾸어 지적 수준을 높이는 게 궁극적인 꿈이다. 그러면 우리나라의 격이 상승할 것이라는 확신이 있다. 김 대표는 미용실을 예로 들었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미용실 직원은 미스터 아무개, 미스 아무개로 통했지만 지금은 ‘선생님’으로 호칭이 바뀌었다는 것. 미용실의 격이 높아진 것이다. 그러나 서점 직원은 예나 지금이나 크게 변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한다. 독서설계사나 북카운셀러로서 역할을 하지 못해 빚어진 현상이다.
“서점 직원은 지식상품을 취급하는 전문가로서 스스로 도서정보를 쌓고 고객에게 신간 동향 등 출판정보를 제공해야 합니다. 또한 편집쟁이로 불리는 출판편집자들을 작가 이상으로 우대해야 합니다. 편집자야말로 지식을 창조하는 장인입니다. 편집자를 우대해야만 세계적 명저들이 나올 수 있습니다.”
김 대표는 기회 있을 때마다 ‘세계출판편집인포럼’의 한국 개최를 주창한다. 선진국은 물론이고 특히 개도국 편집자들의 국내 방문이나 연수 등을 추진해 각국 출판 편집인들이 우리나라에 관심을 가지면 한국 출판 홍보는 저절로 된다는 것이다. 배우 배용준씨의 책 ‘한국의 아름다움을 찾아 떠난 여행’을 예로 든 김 대표는 국가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데에는 출판이 제격이라고 주장한다. 장르의 종합이자 결실이기 때문이다.
“경제자원은 유한하지만 문화자원은 무한합니다. 자동차를 팔든, 김치를 홍보하든 인쇄 자료인 책으로 출판돼야 문화로서 생명력을 갖습니다. 배용준씨가 삶의 현장에서 체험한 걸 대필하지 않고 직접 집필한 것은 팬들에 대한 배려와 신뢰는 물론 스스로의 격을 높인 것이자 한국문화의 격을 높인 것이기도 합니다.”
김 대표는 출판의 활로를 국내 독자 개발과 함께 해외시장에서 찾았다. 창사 8년 만에 콘텐츠를 어느정도 확보한 여원미디어는 2003년 이탈리아 볼로냐 아동도서전 참가를 시작으로 해외시장 개척에 본격 나서 2009년 10월 현재 23개국에 200종 이상 저작권을 수출했다. 그중에는 독일의 ‘피셔’와 프랑스의 ‘망고’ 등 세계 굴지의 출판사도 포함돼 있다. 일본에선 ‘토끼와 재판’, 멕시코에선 ‘수학·과학동화’가 각각 교과서 교재·부교재로 채택되는 감격도 누렸다. 연 수출액 500만달러 목표가 달성될 날도 머지않았다.
“비결요? 딴 데 신경 안 쓰고 출판 외길을 걸어온 게 비결이라면 비결이겠죠. 수익의 대부분은 콘텐츠 개발과 탄탄스토리하우스 건립 등 독자를 위해 투입했습니다. 또한 도서전 등 현장 최일선에 경영자인 제가 있었다는 점일 겁니다.”
김 대표가 요즘 역점을 두는 것은 작가 양성이다. 물론 국적 불문이다. ‘탄탄경제마을’ 시리즈엔 18개국 그림작가가 참여했고, 올해 라가치상 수상과 우수 일러스트레이터에 뽑힌 이란의 라시나 크헤이리예를 초청해 내년 1년간 한국에서 작품 생활을 할 수 있게 절차를 밟고 있다. 정작 자신은 자녀가 없다고 밝힌 김 대표는 “그러다 보니 집착하는 게 없고, 나보다는 우리, 우리보다는 세계 어린이를 위한 좋은 책을 만들자는 동기가 몸에 배었다”며 “어린이는 비록 자기 자식이라도 소유가 아니라 끝없이 보살펴줘야 할 대상이므로 바르게 성장하도록 보호해주면 된다”고 말한다. 그 매개체는 물론 책이다.
조정진 기자 jjj@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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