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법연구회를 해체함으로써 좌경판사가 아님을 확인하는 신분증을 제시하고 법원에 출근해야 하는 것인가?”
보수 정치권과 일부 시민단체로부터 ‘해체’ 압력을 받고 있는 우리법연구회가 고뇌에 찬 속내를 드러냈다. 1988년 개혁 성향의 소장 법관들이 만든 우리법연구회는 ‘법원 내 사조직’이란 비판에 시달려왔다.
우리법연구회 회장인 문형배 부산지법 부장판사는 21일 블로그에 ‘부끄러운 대학생활’이란 글을 올렸다. 문 판사는 “대학 1학년이던 83년 학교 정문 앞에서 학생증 제시를 요구하는 전경 요구에 불응하다가 경찰에 연행된 적이 있다”는 말로 운을 뗐다. 당시 파출소에서 2시간 정도 대기한 문 판사는 결국 경찰에게 학생증을 보여주고 무사히 빠져나올 수 있었다고 한다.
문 판사는 “그 때나 지금이나 나는 이른바 운동권도 아니고 좌파도 아니다”고 전제한 뒤 “26년이 지난 지금 등교하는 나에게 학생증 제시를 요구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고 밝혔다. 우리법연구회가 정치권과 시민단체의 비판을 받는 상황을 학생증 제시 요구에 빗댄 것이다.
그는 “우리법연구회가 판사들의 학술연구단체라고 주장하고 입증해도, 그들은 그렇지 않다고 단정한 다음 ‘우리법연구회를 해체하고 좌경판사 물러가라’며 법원 앞에서 시위를 벌이거나 먼발치에서 시위를 부추기고 있다”고 개탄했다. 우리법연구회 해체가 곧 ‘좌경판사’가 아님을 확인하는 신분증으로 여겨지는 현실에 답답함을 드러낸 것이다.
“과거에는 고작 학생증이었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도대체 무엇을 제출해야 하는가? 정녕 부끄러움과 용기 사이에 고민하게 되는 나날이다.” 문 판사는 이렇게 글을 끝맺었다.
실제로 20일 열린 대법원 국정감사에선 우리법연구회가 핵심 쟁점으로 부상했다. 한나라당 이주영 의원은 “우리법연구회가 스스로를 법원의 주류로 지칭하고 나머지 판사들은 비주류로 만들어 편을 가르고 있다”며 “대법원이 해체를 권고하고, 해체하지 않는다면 법관 재임용 때 배제해야 한다”고 따졌다.
같은 당 주성영 의원도 “하나회가 군부 인사를 전횡하고 출세를 독차지한 사조직이라면, 노무현 정부 때 대법관과 법무부 장관을 배출한 우리법연구회가 딱 그 모습”이라고 지적했다. 자유선진당 조순형 의원 역시 “이념적 성향을 띤 우리법연구회 판사들이 현행법을 무시하는 판결을 하는데, 차라리 정치인이 돼 법을 바꾸려고 노력하는 게 낫다”고 말했다.
답변에 나선 박일환 법원행정처장은 “의원들이 우려하는 바를 잘 알겠다”며 “우리법연구회 스스로도 아마 활동에 대해 여러 가지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라고 한 발 물러섰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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