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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바다 품은 가을 산사 ‘호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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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 금오산 향일암 가을 산이 여러 빛깔을 더해 간다. 바다는 여름의 치열함을 지나 겨울의 고요함을 준비하고 있다. 단풍에 대한 유혹도 만만치 않지만, 산과 바다를 동시에 접하고 싶은 마음에 남해안을 눈여겨보았다. 통영과 목포, 여수 등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엑스포로 남해안 시대의 새로운 중심지로 떠오른 전남 여수가 먼저였다.

◇향일암의 풍경은 바다에 떠 있는 ‘자유의 소리’다.
향일암을 품은 금오산에 올랐다. 돌산대교를 이용해 돌산읍을 지나 40분쯤 차를 타면 이곳 초입과 마주한다. 돌산읍 율림리 임포마을. 금오산은 바다를 코앞에 두고 있어, 어느 산보다도 가파르다. 거북이 경전을 등에 지고 용궁으로 들어가는 형상을 한 게 금오산(金鰲山)이다. 한문의 글자를 풀이하니 ‘쇠금’과 ‘큰바다거북’이다. 경북 구미의 금오산(金烏山)과는 한자 자체가 다르다. 거북에게서 거북선을 떠올리고, 이내 이순신 장군을 추모한다. 여수처럼 장군과 인연이 많은 땅이 또 있을까. 먼 곳에서 쳐다보면 이곳은 단애 절벽의 바위산이 웅크린 거북의 등처럼 보인다고 여수 사람들은 말한다.

산을 오르다 보니 일부러 새긴 것처럼 돌마다 얕게 파여 갈라진 ‘금’이 있다. 오랜 세월 지탱해 온 거북의 등 같다. 부모와 함께 산을 찾은 아이들도, 처음으로 금오산에 오른다는 대학생도 신기한 표정이다. 여수와 세계박람회의 내용을 보다 자세히 알기 위해 이곳을 찾은 만화가들도 이 모습을 스케치한다. 이들이 담아낼 금오산과 여수의 모습이 벌써 궁금해진다.

◇남해 바다에 우뚝 솟은 금오산에 오른 ‘젊음’이 즐거워 한다. 늘 생기를 불어넣는 바다와 산을 동시에 접했으니 그럴만도 하다.
쉽게 생각하고 구두만 신고 온 양복 입은 신사의 모습이 안타깝다. 급경사에 잘못하면 미끄러질 것 같은 걱정에 다가가 손을 잡아준다. 가파른 계단과 비탈길을 조심스럽게 40여분 오른다. 카메라와 가방만을 메고 산을 오르는 것도 힘이 드는데, 이곳에서 바닥을 다지고 철근 계단을 만든 이들의 고충은 얼마나 심했을까. 간혹 두 팔까지 빌려 ‘네 발’로 산을 오르는 등산객들이 그들의 노고에 대해 한마디씩 말을 덧붙인다. “기적을 이루었네. 헬기도 뜨지 못할 곳에 어떻게 계단을 만들었을까.”

1m씩 해발 고도가 높아질수록 ‘나’의 시야도 넓어진다. 처음에는 돌산도의 최남단 임포마을이 눈에 들어오더니, 이내 여수 시내가 눈앞에 펼쳐진다. 드디어 323m 정상에 올랐다. 바다 한가운데 가파르게 떠 있는 금오산에서 마음껏 바다공기와 산의 공기를 마셔본다. 호사가 따로 없다.

산의 정상에서 남해를 바라보니 바다와 하늘의 색깔이 닮았다. 수평선을 구별하기가 쉽지만은 않다. 남해를 오가는 배들은 조각배처럼 작아보이고, 이곳 정상에서 쉬고 있는 ‘바다 등산객들’의 마음은 하늘처럼 넓어 보인다. 돌산도의 짙은 녹음은 가을을 알리기 시작하고, 해안 절벽에 부서지는 파도는 여름 바다의 낭만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외친다. 바닷바람은 시원하고, 햇볕은 따뜻하니 그 계절을 짐작하기조차 힘들다.

정상의 시원한 바람을 뒤로하고, 금오산이 자랑하는 향일암을 찾는다. 대개 산을 오르면서 향일암을 찾게 되지만, 거꾸로 정상에서 향일암으로 내려가니 기분이 남다르다. ‘태양을 향한 암자’라는 향일암을 ‘바다와 태양을 품은 사찰’로 해석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향일암에서는 일출과 일몰을 동시에 볼 수 있다. 연말연시 이곳이 자주 추천되는 것도 이런 배경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에 이유가 하나 더 추가된다. 향일암은 전국 4대 관음기도량 중의 하나다. 강화 보문암, 양양 낙산사 홍연암, 남해 보리암과 함께 전국 불자와 여행객들이 향일암에서 기복하는 마음은 더 간절했을 것이다. 신라시대 원효대사가 해수 관음 도량으로 ‘원통암(圓通庵)’을 세운 때가 640년 전후라고 하니, 후세인들이 바다 근처 암자에서 1400년 가까이 염원을 빌어온 것이다.

금오산의 다른 곳처럼, 향일암 주변에는 바위가 많다. 향일암 경내에도 바위들이 만들어놓은 공간에서 ‘깨달음’을 얻은 이들도 많을 것이다. 집채만한 바위들이 만나 만들어 낸 좁은 통로와 그 공간에서 장난을 치는 아이들이나, 뚱뚱한 몸을 최대한 세워서 좁은 틈을 지나는 어른이나 이곳의 모습에 취한 듯하다.

대웅전 앞 난간에서 바다를 내려다본다. 금오산 정상에서처럼 굽어볼 정도는 아니지만, 남해를 오가는 배들은 여전히 작다. 저들에게 행운과 여유로움을 선사하소서.

여수=글·사진 박종현 기자 bali@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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