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인이나 배우자에게는 항상 생각하면서도 잘 대해 주지 못해 미안하고, 부모님께 속 썩일 땐 태어난 게 미안하고, 운전 중 끼어들기 할 때, 사고로 장기간 입원해 있을 때, 여럿이 함께 공을 세우고도 혼자만 상을 받을 땐 쥐구멍이라도 들어가고 싶을 정도로 동료에 미안한 게 인지상정이다.
그러나 엘튼 존의 노랫말처럼 “미안하다는 말은 정말 하기 힘들다(Sorry Seems To Be Hardest Word).” 어쩌면 사랑한다는 말보다 더욱 하기 어려운 게 ‘미안하다’는 말일 게다. 특히 자존심 강한 우리나라 사람들에겐.
때로는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로 복잡한 문제가 확 풀릴 수도, 원수끼리 화해할 수도 있지만 적잖은 사람은 그 말을 하질 못한다. 그처럼 미안하다는 말을 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그래도 미안하다는 말은 해야 한다. 인간은 살면서 말로, 행동으로, 또는 무의식적으로 숱하게 많은 죄를 짓는다. 이래저래 남에게 피해도 준다. 더욱이 미안한 상황은 먼 사람보다는 가까운 사람들 사이에서 자주 발생한다. 옆자리에서 담배를 피워서 미안하고, 큰 소리로 전화를 받아서 미안하고, 자주 자리를 비워서 미안하다. 때로는 그냥 옆에 있는 것 자체가 미안할 때도 있다.
명상학교 수강생들이 ‘미안함’이라는 주제로 열린 백일장에서 당선된 30편의 글을 모은 ‘있잖아요 미안해요’(이미연 등 30명 지음, 수선재)엔 살아오면서 응어리처럼 간직한 미안함이 가득하다. ‘미안하다’는 사과의 말을 통해 상처 입는 마음을 치유한 경험담들이다. 사연 중에는 ‘실직한 아버지를 무시했던 딸의 미안함’ ‘치매 걸린 시아버지에게 끓는 라면 대접을 던진 며느리의 미안함’ ‘억측과 지레 짐작으로 새어머니의 사랑을 외면한 여대생의 미안함’ 등 구구절절 애절하다.
책에 실린 글들은 가족에 대한 미안함을 표현한 게 대부분이다. 가깝기에 서로 의존하고, 의존하면서도 이해하지는 못하고, 그러기에 상처를 주고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리라.
미안하다는 말이 가진 힘은 생각보다 크다. 진심 어린 사과의 말 한마디는 상대방의 마음에 맺힌 한을 풀고 용서하고 싶은 마음을 들게 한다. 깨진 관계를 회복하는 유일한 열쇠는 진심을 담아 ‘미안하다’고 말하는 것이다.
슬픔, 미움, 원망, 회한, 외로움, 서러움…, 이 모든 얽히고설킨 감정들이 ‘미안함’이라는 효소를 만나 발효가 된다. 무르익어서 감사의 맛을 머금게 된다. 미안하다는 말을 아껴서는 안 되는 이유이다.
가까울수록, 사랑할수록 미안하다는 말을 더 자주 더 많이 하자. 사랑이란 내가 먼저 미안하다고 말하는 것이다!
조정진 기자 jjj@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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