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집 베란다에는 피곤하지도 않은지 밤이나 낮이나 늘 서있는 고추가 있다. 사진에서 보이는 것처럼 저 고추는 누구를 그토록 기다리는지 쉬지도 않고 예쁜 색깔을 자랑하며 하늘을 향해, 그것도 거꾸로 서있다.
저고추는 어떤종자 이길래 저렇게 아랫도리가 하늘을 향해 있는 것일까? 고추에 담긴 사연을 말하자면, 뉴저지에 사는 친구가 고추씨를 보내와 우리집 베란다에 심어 키운것이다. 내 친구는 죽어가는 꽃도 살리는 여자이고 나는 싱싱하게 살아 있는 꽃도 우리 집만 왔다하면 죽이기 때문에 뭘 키우는건 아예 소질이 없다. 하지만 멀리서 보내온 그녀의 성의를 생각해 마침 안 쓰는 화분에 그냥 뿌려놨더니 생명력이 강한 씨였는 지 지난 여름 땡볕에, 일주일씩 잊어버리고 물을 안 줘도 저렇게 살아남아 하늘로 향해 치솟으며 자라고 있다.
그후 마치 자식을 양자를 보내기라도 한 것처럼 그녀는 전화 할 때마다 자기가 보낸 고추 잘 크고 있느냐고 안부를 물어와 잘 키우고 있으니 걱정 말라고 했다. 사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물도 제대로 준적이 없는 것 같은데 저 만큼이라도 큰 것은 그녀의 고추에 대한 사랑 때문일 것이다.더 엄격히 말하면 우리집으로 와서, 물도 제대로 못 먹고 배고파하면서 큰 고추다.
그런데 어느날 보니 먹음직스럽게 통통하게 여물어 있었고 때깔도 예쁘고 단단해져서 지금은 나도 가끔 나가서 물주기 전에 쳐다보고 만져주고 예뻐해준다. 그리고 말도 걸어본다. "고추야, 너 그렇게 계속 물구나무로 서있기만하면 피곤하지 않냐?" 그래도 끄떡없이 비가 오면 오는 대로 햇빛이 비추면 비추는 대로 계속 서있다.
이렇게 고추 모양새가 특이하게 생기다보니 친구들도 우리집에 오면 한마디씩 한다. 저런 고추는 처음 보았다고…. 나도 거꾸로 서있는 고추는 처음 본 것이라 씨를 보내준 친구에게 저 고추 종자가 멕시칸 할로피뇨 종류냐고 물었더니 뜻밖에 한국 남원에 사시는 친구 어머니께서 씨를 보내줬다고 한국 종자라는 것이다.
그러고보니 고향을 등지고 이 머나먼 미국까지 오게된 저 고추 팔자나 내 팔자나 비슷하다. 그런데 내가 한국에 살 때는 저런 고추는 듣도 보지도 못했는데 참 특이하게 하게 생긴 고추가 우리집까지 오게 된 것이다.
이전에 내가 들었던 한국속담 중에 '작은 고추가 더 맵다'는 말이 있다.그래서인지, 한국에서 건너온 작고 단단한 조선 고추는 아무데나 넣어도 그 개운한 맛이 최고다. 서양 고추는 멋대가리 없이 굵고 크기만하지 싱겁고 맛을 내는 데는 별로다. 그래서 외국에 사는 한국 여자들에게는 코리아에서 건너온 조선 고추가 그렇게도 인기가 있나보다. 나도 미국 고추, 멕시칸 고추, 유럽 고추, 이 고추 저 고추 온갖 고추 맛을 보았지만 아무리 먹어도 질리지 않고 내 입맛에 딱맛는 고추는 역시 조선 고추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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