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생의 길 찾는 ‘통 큰 정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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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수 |
공자가 일찍이 대학(大學)에서 ‘족식족병(足食足兵)이면 민신지(民信之)’(식량이 넉넉하고 병사가 넉넉하면 백성이 그것을 믿으리라)라고 말했다. 소위 중국에서 말하는 ‘족식족병론(足食足兵論)’이다. 덩샤오핑은 이 같은 실용주의적 사상을 바탕으로 1970년대 말부터 과감한 개혁정책을 단행하면서 내세운 것이 이른바 ‘흑묘백묘론(黑猫白猫論)’이다. 고양이 색깔이 어떻든 쥐만 잘 잡으면 되듯이, 자본주의든 공산주의든 상관없이 중국 인민을 잘살게 하는 것이 제일이라는 뜻이다. 덩샤오핑의 집권 후 기업가와 농민의 이윤보장, 지방분권적 경제운영, 엘리트 양성, 외국인투자 허용 등의 정책에 힘입어 중국 경제는 크게 성장했다.
요즘 이명박(MB) 정부가 ‘친서민’ ‘중도실용’ 정책을 내세우고 있다. ‘강부자당’이라며 공격을 받은 게 엊그제 같은데 한순간에 방향을 튼 것이다. 민간기업 CEO 출신다운 빠른 의사결정이 아닐 수 없어 ‘MB답다’는 느낌이 든다. 기왕 칼을 빼들었다면 철저하게 흑묘백묘 정신을 실천해야 한다. 꼼수 부리는 변신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진보나 보수는 물론 지연과 학연같이 잡다한 것들을 다 털어내는 열린 큰 정치로 새시대를 열어야 한다는 주문이다. 그렇지 못할 경우 이런 말들이 나올 수 있다. “10월 재보선, 내년 지자체선거 등이 다가오니 궁여지책이자 꼼수를 내놓은 것이야”라고. 민심은 가장 낮은 곳에 있지만 가장 강하다. 성현의 뼈 있는 가르침을 한시도 잊어선 안 될 것이다.
북한 정권도 마찬가지다. 공자는 “군자란 깨끗하고 청렴해야 하며 높은 도덕성을 지녀야 한다. 그렇다고 먹지도 않고 옷을 입지도 않으며 잠을 자지 않을 수는 없다. 최소한 자신의 의식주(衣食住) 문제는 명확하게 해결한 뒤에야 청렴도 있고 도덕성도 있다”고 오래전에 말했다. 다산 선생 역시 “고고한 척만 자랑하다가 부모나 처자식을 굶긴다면 어떻게 올바른 선비가 되겠느냐”고 했다.
군자는 통치자를 지칭하는 말이다. 북한을 통치하고 있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공자와 다산의 말씀에서 큰 깨달음을 얻어야 한다. 즉 한치의 허술함도 없다는 민심, 천심의 무서움을 김 위원장은 외면해선 안 된다. 북한의 많은 인민들이 굶어 죽어가는 등 처절한 상황은 세계가 아는 일이다. 그럼에도 그 많은 돈을 들여 핵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다.
김 위원장은 김대중 전 대통령 국장에 조문단을 보내고 남북통행 제한을 해제하는 등 평화공세를 펴고 있다. 차제에 큰 변신을 시도해보면 어떨까 싶다. “흰 고양이든 검은 고양이든 쥐를 잘 잡는 고양이가 좋은 고양이”라고 한 덩샤오핑처럼 “북한 주민을 잘살게 하는 데 보탬이 된다면 남한이든 미국이든 상대를 가리지 않고 손잡고 나가겠다”는 식으로 변신하라는 말이다. 사회주의 국가에서 성공한 통치자로 평가되는 덩샤오핑이 오래전에 활용한 흑묘백묘론을 지금이라도 차용해 보라는 뜻이다. 누구는 되고 누구는 싫다는 소위 통미봉남(通美封南) 같은 속 좁은 정책들은 과감히 폐기하는 게 덩샤오핑 정신을 이어받는 일이 될 것이다.
북한 주민이 잘먹고 잘살도록 하는 것은 북한 지도층의 가장 주요한 소임이다. 북한 지도부는 핵정책으로 미국과의 게임에 올인하기보단 주민들의 의식주에 정책의 최우선 순위를 두어야 정상이다. 이 경우 MB정부도 상응하는 통큰 정치의 면모로 접근할 것임을 8·15경축사에서 약속했다. 북한 지도부가 덩샤오핑의 정신을 실행하면 남북한 간에 윈윈의 상생기류가 조성될 것이다. 그렇게만 된다면 더 바랄 나위 없다. 두 남북지도자는 덩샤오핑보다 역사적으로 성공한 지도자로 우뚝 서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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