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화·남북관계 정치적 유산 남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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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기연 워싱턴 특파원 |
한국에서 진보 진영이 김 전 대통령을 부인하고 홀로서기를 하기는 어려운 게 현실이다. 미국에서도 보수 진영이 20여년 넘도록 레이건에 얹혀 살고 있다.
김 전 대통령과 레이건의 위상은 장례식을 통해서도 쉽게 확인됐다. 김 전 대통령 장례식은 정부 수립 이후 두 번째, 전직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국장으로 거행됐다. 1979년 11월 3일 박정희 전 대통령 국장 이후 30년 만이다. 미국에서도 레이건 장례식이 2004년 6월 11일에 국장으로 치러졌다. 이는 1969년 린든 존슨 전 대통령 국장 이후 35년 만에 처음이었다.
레이건 전 대통령 국장은 어찌 보면 축제 같았다. 정파를 초월한 지도급 인사들이 한자리에 모여 화합의 한마당을 연출했다.
레이건 전 대통령과 얽히고설킨 인연을 가진 정치 지도자들이 조사를 맡았다. 레이건과 대선전에서 맞붙었다가 현직 대통령 프리미엄에도 패배했던 지미 카터 전 대통령, 레이건과 공화당 대선 후보를 경합했으나 그의 밑에서 부통령을 지낸 조지 H W 부시 전 대통령, 당시 현직이었던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 빌 클린턴 전 대통령 등이 연설했다.
이들은 엄숙하게 조사를 낭독하는 게 아니라 한바탕 조크 대결을 펼쳤다. 장례식장은 폭소와 박수 소리로 거대한 공연장을 방불케 했다.
그렇게 레이건을 떠나 보낸 뒤 미국인들, 특히 공화당원이나 보수 성향의 사람들은 레이건을 그리워하며 살고 있다. 워싱턴 DC 인근의 내셔널 공항은 레이건 내셔널 공항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펜타곤 다음으로 실내 면적이 큰 워싱턴 DC 연방 정부 신청사 건물 이름도 레이건 빌딩으로 명명됐다. 그가 사망한 지 5년이 지난 올해 6월 4일에는 국회의사당 빌딩 내에 레이건 동상이 세워졌다. 미국은 2011년 레이건 탄생 100주년 기념식을 성대하게 치르기 위해 ‘레이건 100주년 위원회’를 본격 가동하고 있다.
레이건은 미국의 전통적인 사회 가치를 지키려는 보수주의자였다. 그는 옛 소련을 ‘악의 제국’으로 불렀고, 공산주의 세력과 정면 대결 끝에 냉전을 승리로 이끌었다. 작은 정부를 지향했고, 과감한 감세를 통한 공급주의 경제 정책을 폈다. 레이건 이후 공화당의 대선 주자들은 예외 없이 레이건의 적자(嫡子)를 자처했다.
그렇게 해서 부시 부자는 당선됐으나 존 매케인은 고배를 들었다. 부시 부자 사이에 재임했던 민주당의 빌 클린턴도 사실 레이건 닮기 전략으로 성공했다. 클린턴은 민주당의 전통적인 진보 노선 대신 중도주의를 표방했다.
레이건의 위세에 눌린 민주당에는 민주당 의원이면서도 레이건의 정치 노선에 동조하는 ‘레이건 민주당 의원’ 그룹이 등장했다. 현재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밀어붙이는 건강 보험 개혁의 발목을 잡고 있는 민주당 내 보수 세력인 ‘블루 도그’ 그룹도 레이건 민주당 의원 그룹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미국 정치 현장에서 대화와 타협이 이뤄지는 밑바닥에는 보수적인 민주당 의원 그룹과 진보적인 공화당 의원 그룹이 확고하게 자리를 잡고 있기 때문이다. 역으로 한국에서 정치가 발전하지 못하는 이유도 이런 당내 재야 그룹이 발을 붙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김 전 대통령은 한국의 민주화와 남북 화합이라는 정치적 유산을 남겼다.
그렇지만 김 전 대통령이 단순히 진보 진영의 아이콘으로만 남아서는 한국 정치가 한 단계 발전하는 데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한나라당 내에 진보 세력인 ‘DJ 한나라 의원’ 그룹이 등장해야 그의 정치 유산이 찬란한 빛을 발할 수 있다. 한나라당 내에 친박근혜 그룹 대신 친DJ 그룹이, 민주당 내에 친노무현 그룹 대신 친이명박 그룹이 탄생할 날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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