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폴레옹은 프랑스 포병 대위에서 1년 만인 23세에 준장까지 초고속 승진했다. 26세에 소장이 된 그는 5년 뒤 정권을 장악했고, 35세에는 스스로 황제가 되었다. 40세가 될 무렵, 그는 거의 모든 유럽을 손에 쥐고 있었다.
그는 고작 10년 동안 권좌를 장악했을 뿐인데도 프랑스와 유럽 전역에 구석구석 스며든 그의 유산은 오늘날까지도 깊고 끈질긴 지속력을 발휘하고 있다. 그는 법 앞에 평등이라는 혁명의 원칙과 더불어 재능에 따른 승진을 보장하는 능력주의 원칙을 계승하고, 행정·법률·교육·과학 분야에서 많은 개혁을 실시했다. 또한 문화 양식과 상상력에까지 그의 힘은 곳곳에 뻗었다.
‘프랑스 혁명 전쟁’의 저자 그레고리 프리몬 반즈와 국제나폴레옹협회 창립 회원인 토드 피셔가 함께 쓴 ‘나폴레옹 전쟁-근대 유럽의 탄생’(박근형 옮김, 플래닛미디어)은 나폴레옹이 전 유럽을 제패하기 위해 벌인 전쟁들을 중심으로 당시의 시대적 배경을 비롯해 전투가 벌어진 과정, 대프랑스 동맹국 간의 복잡 미묘한 관계에서부터 전쟁 이면의 참상들을 다양한 역사적 자료를 통해 자세하게 다룬다.
나폴레옹 전쟁은 처음에는 프랑스 혁명을 방위하는 성격을 띠었으나, 차차 영토 확장을 위한 침략적인 전쟁으로 변해갔다. 나폴레옹은 이 전쟁기간 동안 유럽 여러 나라와 60회나 되는 싸움을 벌이면서, 자신이 직접 지휘한 전투에서는 지는 법 없이 승승장구했다.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군사적 혜안을 가진 것 외에도 거의 모든 분야에 조예가 깊었던 그는 오늘날까지도 나폴레옹 시대에 이뤄진 많은 개혁이 그대로 이어질 만큼 상당한 수준의 지식을 자랑했다. 그는 정교협약을 통해 일대 종교개혁을 단행하는 한편, 프랑스 국내와 제국의 대부분에서 민간 및 행정 분야를 개혁함으로써 폭주하던 혁명에 고삐를 채우고, 비효율을 질서로 대체했다.
프랑스와 독일의 봉건제적 원칙에 기반한 낡은 법률체계는 혁명기에 쏟아져 나온 1만개의 포고령과 함께 폐지되었고, 그 대신 ‘나폴레옹 법전’이라 불리는 새로운 체계로 바뀌었다. 그는 정치면에서는 제한된 남성 참정권과 헌법을 고수했고, 경제면에서는 국내 관세를 철폐한 제도를 그대로 유지했다. 교육면에서는 국가가 운영하는 교육체계를 세웠다. 그는 법 앞에 평등이라는 혁명의 원칙과 더불어 행정부의 구성 및 재능에 따른 승진을 보장하는 능력주의 원칙도 그대로 계승했다. 하지만 혁명기의 다른 정부들처럼 입법부의 자유를 제한함으로써 독재로 향했고, 그로 인해 유배와 탈출, 재집권, 재유배를 거쳐 불행하게 최후를 마쳤다.
조정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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