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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결문에 남아있는 일제 고문과 3·1운동 폭력진압

입력 : 2009-08-15 01:02:21 수정 : 2009-08-15 01: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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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일 惡刑 가해 몇번이나 死境 이르러"
"경찰이 교회당 방화하고 양민 총살해"
“연일 악형(惡刑·모질고 잔인한 형벌)을 멈추지 않았고 몇 번이나 사경에 이르렀는데도 전혀 용서하는 바가 없다. ‘변명하지 말고 묻는 대로 답하고 조금이라도 다른 점이 있으면 맞아 죽을 것’이라고 협박했다.”

일제강점기 ‘대한광복회’를 결성해 독립운동을 하다가 체포된 채기중(1873∼1921) 선생이 조선총독부 고등법원(현 대법원)에 낸 상고이유서 일부다. 경찰이 가혹한 고문을 한 게 명백한데도 재판부는 “증거가 없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선생은 이후 사형 선고를 받고 서대문형무소에서 옥사했다.

대법원 법원도서관(관장 이동명)이 14일 출간한 ‘국역 고등법원 판결록’ 제7권에는 일제 치하에서 독립운동가들이 당한 고초가 생생히 드러나 있다.

채 선생과 같이 대한광복회에서 활동한 박상진(1884∼1921) 선생의 판결문에 첨부된 독립운동 자금 모금을 위한 포고문에는 “우리 2000만 민족이 노예로 변했다. 피눈물이 샘솟는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박 선생은 직업이 판사였지만 1910년 경술국치 이후 “식민지 관리가 될 수 없다”며 관직을 버리고 독립운동에 뛰어들었다. 그도 일본 경찰에 붙잡혀 사형 선고를 받고 순국했다.

1919∼20년 판결문엔 3·1운동 당시 일제의 가혹한 진압에 관한 내용이 많다. 연희전문학교 학생 신분으로 3·1운동에 참여했다가 보안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한 인사는 상고이유서에 “경찰관의 권력 남용이 있었다. 법을 경시해 교회당과 학교에 방화하고 양민을 총살했다. 경관이 여학생을 난타해 유혈이 낭자하고, 거의 죽는 상황을 목격했다”고 적었다.

번역된 일제강점기 판결문은 법원도서관 홈페이지(library.scourt.go.kr) ‘국역자료’ 코너에서 열람할 수 있다. 법원도서관 관계자는 “국민이 일제강점기 생활 모습과 법률문화에 쉽게 접근할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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