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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기의 매력에 빠지다] 탈북자 출신 아코디언 연주자 조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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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9-08-10 17:47:27 수정 : 2009-08-10 17:4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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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즈 연주로 '손풍금' 새 장 열고싶어"
◇조미영씨는 “아코디언은 건반이 적어 소리에 한계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코드로 다양한 배음을 낼 수 있어 소리가 무궁무진하다”며 “음색이 예뻐 듣는 사람이 행복해지는 악기”라고 설명했다.
이제원 기자
“아코디언은 대부분 소리에 반해 시작해요. 중간 음색이 없어요. 애절하거나 밝거나 뚜렷한 음색이 장점이죠.”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희미해지는 악기를 조미영씨는 붙잡고 있는 중이다. 스물여섯이다. 오히려 ‘젊다’는 게 경쟁력이라며 웃었다.

“여자 애가 연주를 하니까 다들 호기심에 찬 눈으로 바라보세요. 전국으로 연주하러 다녀요. 할아버지, 할머니에겐 제일 인기가 좋은 악기죠.”

과거가 짙게 스며든 아코디언을 가지고 그는 미래로 달려가고 있다. 충청도립오케스트라, 경기글로벌필하모니오케스트라와 협연을 가졌고 영화 ‘달콤살벌한 연인’, 드라마 ‘홍길동’ OST에도 참여했다. 지난 6월 밴드 ‘폴카’를 구성하면서 바빠졌다. 아코디언, 바이올린, 기타, 콘트라 바스가 어울려 내는 소리가 일품이다. 올해 말에는 녹음 작업을 할 계획이다.

“언젠가는 아코디언으로 재즈를 연주하고 싶어요. 지금은 탱고 왈츠 폴카 등이 주요 레퍼토리인데 아코디언이 들려주는 재즈는 또 다른 맛이 있어요. 아코디언의 새로운 장을 열고 싶어요.”

내년엔 유럽 여행을 할 계획이다. 아코디언과 비슷한 종류인 중남미의 밴드네온도 만나고 싶고, 동유럽에 펼쳐져 있는 아코디언 소리도 직접 듣고 싶다. 일명 ‘아코디언 여행’이라고 소개했다.

“아코디언은 들고다니면서 연주가 가능하니까요. 혼자서 계획을 세워봤는데 생각만 해도 설레요.”

들고 다니는 것까지는 정말 좋은데 문제는 무게다. 서울 청담동 한 연습실에서 만난 그의 아코디언도 여행용보다 조금 더 큰 가방에 들어 있었다. 가방 무게만 5㎏이다. 아코디언은 13㎏이다. 지난해 차를 구입한 그는 “이동이 조금 수월해졌다”며 “예전엔 들고 다니느라 손에 굳은살이 생겼다”고 했다. 대중교통을 타고 다닐 때는 사람들의 관심이 온통 가방에 쏠렸다. 가출했을 거라는 짐작에 ‘집에 얼른 들어가라’는 말이 따라다녔고, 지하철을 타면 행상인 줄 알고 뭘 팔까 승객들의 시선이 가방에서 멈췄다.

무게 때문에 연주 시간도 오래 잡을 수 없다. 서서 하면 30분이 한계선이다. 앉아서 연주하면 더 오래 할 수 있지만 악기 무게에 눌려 다리가 탱탱 붓는다. 어깨결림도 달고 산다. 이동성 악기 가운데 이 정도의 소리 크기와 음색을 내는 악기는 흔치 않기에 이 정도의 고통(?)은 아무것도 아니란다. 좋은 악기일수록 바람통이 많아 조금 더 무겁고 가격도 1000만∼2000만원 대다. 주로 유럽·중국에서 제작된 걸 사용한다. 연습용은 50만원부터 시작해 최근엔 취미로 배우는 사람이 많아졌다.

국내에서 아코디언은 친숙한 악기지만 아코디언 연주자는 낯설다. 그와 아코디언은 어떻게 만났을까 궁금했다. “함경도에서 자랐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가족과 함께 한국으로 온 지 8년째다. 북한에선 피아노처럼 대중적인 악기가 아코디언이라 아홉 살 때 처음 아코디언과 만났다. 행진곡 연주가 많아 북한에선 직접 아코디언을 제작한다.

“지금은 엄마와 웃으면서 얘기하는데 그때는 연습 안 한다고 엄마한테 혼나기도 많이 혼났어요. 1년 정도 배우다 그만뒀다 12살 때쯤 다시 시작해 계속 배웠어요.”

한국으로 왔을 때가 열여덟이었다. 이듬해 대학에 들어갔지만 적응이 쉽지 않아 학교를 그만두고 뮤지컬 극단에 들었다. 거기서 아코디언과 다시 만났고, 그 길로 아코디언 연주자의 길을 걷게 됐다. ‘연기’보다 ‘연주’가 더 잘 맞았다. 다시 공부하고 싶은 생각에 서울예대 실용음악과에 들어갔다. 아코디언 전공은 혼자였다. 선배도 후배도 없지만 다른 악기 연주자들을 만난 게 큰 도움이 됐다. 음악에 대한 생각도 깊어졌다.

“요즘엔 점점 무대에 서는 날이 많아졌다”며 아코디언과 함께 환한 웃음을 지었다. 12일엔 서울 충무아트홀에서 청소년실내악콘서트 ‘러브 클래식’ 무대에 선다. 그에게 아코디언은 어떤 의미인지 물었다.

“자유를 줬어요.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고, 끊임없이 하고 싶은 걸 만들어주는 친구죠. 어렸을 때 하기 싫어서 도망 다녔던 아코디언인데 요즘엔 얘 덕분에 행복합니다.”

윤성정 기자 ysj@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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