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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더와 미니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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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9-07-31 02:38:20 수정 : 2009-07-31 02:3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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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일에 한 번 열리는 마법의 문
2㎜로 작아진 주인공 모험의 세계로
퇴근길에 집앞 서점에서 아이들과 있다는 아내의 전화를 받았다. 그림책을 고르는 아내를 만나 이 책 저 책 구경하다가 ‘호밀밭의 파수꾼’이라는 책 앞에 발길이 멈춰졌다. 20세기를 대표하는 미국 소설이라고 소개된 글을 봤던 기억이 나기도 했고, 요새 문학서적을 사본 지가 꽤 됐다는 생각에 그 책을 덥석 집어들었다. 사실 제목만으로 미국의 어느 농가를 배경으로 벌어지는 대서사극 정도가 아닐까 했었는데 책의 내용은 내 예상을 완전히 빗나갔고 그 신선한 충격은 며칠을 갔다.

내친김에 평소에 읽어야지 생각만 하고 지나왔던 20세기 걸작들을 차례차례 섭렵하기 시작했다. ‘위대한 개츠비’를 시작으로 ‘백년의 고독’을 거쳐 ‘파리대왕’에 이르렀다. 그 주제의식 뚜렷한 문제작들을 하루 걸러 하나씩 읽다 보니 사회 모순들에 대한 묵직한 메시지들에 머리가 좀 지끈거리더니 결국 조지 오웰의 ‘1984’에서 폭발하고 말았다. 작가 스스로도 폐결핵을 앓지 않았더라면 이렇게까지 어둡게 글을 쓰지는 않았을 거라고 밝힌 것처럼 극단의 전체주의 사회에서의 처절한 인간성 말살을 몸서리쳐질 정도로 느꼈고 며칠 동안 우울한 마음을 떨칠 수가 없었다.

기분 전환 좀 할 겸, 유치원 다니는 아들과 같이 ‘아더와 미니모이’를 보러 갔다. 역시나 극장에는 아이들이 많았고 나머지 어른 관객들도 그 부모들 같아 보였다. 주인공인 아더는 할머니와 단둘이 살지만 구김살 없고 호기심 많은 10살 소년이다. 할머니 집은 며칠 뒤면 부동산개발업자에게 넘어갈 위기에 처하게 되고, 실종된 할아버지가 비밀의 세계에 보물을 숨겨놓았다는 주술서를 발견한 아더는 1000일에 한 번 열리는 마법의 문을 통과해 미니모이 왕국으로 모험을 떠난다. 이 영화의 가장 주목할 점은 그 모험이 벌어지는 장소가 다름 아닌 평소 살던 집의 앞뜰이라는 것이다. 2㎜로 작아져 버린 아더에게 자기가 가장 익숙했던 앞뜰이 엄청난 모험의 공간으로 탈바꿈되어 나타난 것이다.

영화를 보던 아들은 마지막에는 지겨운 듯한 반응을 보이긴 했지만 매우 즐거운 표정이었고 모험의 세계가 실제로 어느 곳에서인가 계속 진행되는 것처럼 집으로 오는 길 내내 살짝 흥분되어 보였다. 돌이켜보면 초등학교 때의 나도 그랬었다. 주인공 소년이 일상에서 벗어나 신나는 모험을 즐기고 다시 일상으로 복귀하는 디즈니 영화들을 텔레비전에서 보고 나면 그날 밤은 꽤 오랫동안 뒤척였고 그런 흥분감은 일주일 정도 갔던 것 같다. 지루하고 별볼일 없는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은 욕망들이 그런 영화들로 반짝거렸던 것이다. 나이가 들고 사회를 알아갈수록 그러한 모험이란 건 있지도 않을뿐더러 세상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는 걸 깨우치게 됐지만 아주 가끔은 밤잠을 설치게 했던 그 설렘들이 지금도 그리워진다.

동화책을 읽어주고 불을 끄고 아들 옆에 누우니 아들이 말한다. “아빠, 그 영화 재미있었지? 나도 그렇게 작아져서 나쁜 놈 막 혼내주고 재미있게 놀았으면 좋겠다.” 나를 바라보는 그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보면서 생각에 잠긴다. 그런 순수함을 오랫동안 가지고 있기를 바라야 하는 걸까, 아니면 커서 사회의 모순들을 바라볼 때 견딜 수 있는 강한 맷집을 바라야 하는 걸까.

치과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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