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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원의 '밤의 대한민국']<4>끝이 보이지 않는 어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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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9-06-04 10:09:26 수정 : 2009-06-04 10: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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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위기가 험악해 지는 것을 느낀 범휘가 사내의 손을 억지로 가져다 인주를 묻혔다. 더 이상 시간을 끌었다가는 나이도 많은 양반이 한동안 병원신세를 져야 할 것이 불 보듯 뻔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사내는 분위기를 아는지 모르는지 범휘를 올려다보며 한가득 원망을 표출했다.

지장이 선명하게 찍힌 서류를 보며 천이가 흐뭇한 웃음을 보였다.

“흐흐, 이봐 40대. 담배 한 대랑 바꿨다고 생각해. 범휘아우. 여기 있는 명함들 다 찾아서 태워버리고, 동생들 몇 명만 남겨 놓고 철수해. 여기 출근하는 아가씨들은 오늘 부로 우리 사무실에서 일시키면 되고. 저 새끼들이 쓰던 대포폰 압수해서 저 새끼들이랑 거래한 가게들 손 좀 봐주고.”

“예 형님.”

천은 원룸을 빠져나와 복도로 발걸음을 옮겼다. 막 계단을 내려가려는 찰나, 오늘의 시작을 알리는 투박한 벨소리가 복도가득 울려 퍼졌다. 그는 서둘러 주머니에서 두 대의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하나는 엄청 오래된 구형 휴대전화였고, 하나는 개통한지 얼마 돼 보이지 않는 최신기종의 휴대전화였다. 그중 구형 전화의 발신자를 확인하고 전화를 받았다.

“아이고! 정 사장님 오랜만입니다. 하하 법인 대포요? 몇 대나요? 20대? 이야. 일단 자금이 되는지 모르겠는데 렌터카 대포죠? 휴~ 그럼. 일단 어디보자. 신차가 몇 프로로 맞춰 주실 건가요? 에이 50%면 너무 무겁죠. 45%합시다. 일단 매물 쌓아놓고 팔아야 되는데. 헤헤 고맙습니다. 하하 알겠습니다.”

천이 다시 원룸 현관으로 빠르게 발걸음을 돌려 범휘를 찾았다.

“범휘아우 잠깐 이리와 봐.”

다가온 범휘의 양손에는 명함이 한가득 들려있었다.

“여기는 동생들에게 맡기고 아우는 지금 바로 미금역으로 가서 장 사장 좀 만나봐. 이번에 법인 작업해서 대포차 좀 많이 나왔나보다.”

“지금 바로 말입니까요?”

“그래. 형이 일단 아가씨들 돌리고 있을 테니까, 가서 서류 확인하고 괜찮으면 바로 계약해.”

“예. 형님. 쉬십시오.”

천이 발걸음을 돌리려는데 다시 주머니에서 요란한 벨소리가 들려왔다. 이번에는 최신기종의 휴대전화였다. 발신자도 확인하지 않고 웃으며 전화를 받았다.

“어이! 아영양.”

“짜식. 뭐해?”

“슬슬 장사 들어갈 준비하고 있지.”

천천히 계단을 내려가며 통화를 이어갔다.

“그래? 이따가 가게로 들려 어제 너희 아가씨들 페이 나왔어. 그런데 너 너무한다. 매일 같이 이렇게 너희 보도 불러주는데 밥이라도 한 끼 사야 되는 거 아니야?”

“하하 뭐야? 이젠 나한테까지 외교하는 건가?”

“뭐? 장난? 웃기지 말고 전화해. 나 손님한테 전화 들어온다. 이따 통화하자.”

뭐에 쫒기는 듯 아영이 서둘러 전화를 끓었다. 천이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휴대전화를 바라보며 씁쓸하게 중얼거렸다.

“오랜만에 울리네. 이 핸드폰. 언제 또 울릴까?”

##

“사장님. 서 실장이에요. 바쁘세요?”

북적거리는 분당 서현역 거리. 연수는 바쁘게 지나다니는 사람들 사이에서 통화할 상대를 찾기 위해 열심히 수첩을 뒤적거렸다. 얼마 뒤 연결된 전화기 건너편선 나이가 있어 보이는 남자의 음성이 전해져왔다.

“오늘 시간 괜찮으시면 식사나 같이 할 까 전화 드렸어요. 호호. 정말요? 그럼 제가 먼저 가리 잡고 기다릴게요. 딱 20분만 기다릴 거예요. 호호 네.”

전화가 끓어지자 통화 할 때 넘치던 기교 있는 목소리와 미소는 사라졌다. 오히려 그와는 반대로 너무도 쓸쓸해 보이는 그녀의 표정이다.

터벅터벅 약속한 식당으로 걸음을 옮겼다. 머릿속의 복잡함이 무의식 적인 걸음걸이를 만들어 냈다.

‘휴~ 왜 이렇게 된 걸까. 천이와 나.’

##

조용한 커피숍.

“어이! 유 사장! 여기야! 여기!”

40대 중반에 진한 갈색의 피부, 뚱뚱하다 못해 심각한 비만으로 보이는 사내가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너무나 큰 소리에 저마다 이야기를 나누던 다른 손님들이 불편한 심기를 들어냈다. 하지만 주위 시선은 아랑곳 하지 않고 창석을 향해 반가운 손짓을 계속 하고 있었다. 장난기 어린 표정과 가벼워 보이는 태도. 들어 올린 손에는 반짝거리는 큼직한 반지와 시계가 자리를 잡고 있었다. 창석은 단번에 사내를 발견하고는 웃으며 그에게 다가갔다.

“장 사장님 일찍 나와 계셨네요.”

“자네는 딱 맞춰서 오네. 하하.”

둘은 반갑게 악수를 하고 자리에 앉았다. 서로 얼굴을 보자 웃음이 절로 나왔다. 비슷하게 생긴 체형과 외모. 누가 보면 형제처럼 보일 정도였다. 오늘은 서로의 웃음이 더욱 밝아보였다. 그동안 노력한 대가가 지급되는 날이기 때문이다. 자리에 앉자마자 창석은 앓는 소리를 해댔다. 마치 친형에게 동생이 투정을 부리는 말투와 같았다.

“말도 마십시오. 신용 대출 받는 바지가 대가리가 딸리는 놈이라서 오늘 애 좀 먹었습니다.”

“하하 그래? 얼마나 나와?”

“신용등급은 3등급이라 1금융에서 2천 뽑고 3금융에서 1천 더 뽑았어요.”

“하하 한 오백 자네에게 떨어졌겠는걸.”

“아니요. 이번에 원천 작업업자 대구에서 잡혀버리는 바람에 전국에 인천 업자 딸랑 하나 남았지 않습니까. 요즘 위험하다면서 작업비용 500 챙겨 달라고 하더라고요. 어쩔 수 있나요? 내가 아쉬운 판에. 그래서 500챙겨주고, 사업자 빌려준 곳에 백만 원 챙겨주고 해서 딱 4백 챙겼죠.”

“그래도 용돈 벌이는 했구먼. 바지한테 수수료 더 들어갔다고 하고 좀 더 챙기지 그랬어. 고생도 했는데.”

장 사장은 안쓰러운 모습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메뉴판을 바라보던 창석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더욱 앓는 소리를 해댔다.

“말도 마십시오. 수수료 빼고 남는 거 하나도 없다고 좀 더 챙겨달라고 하는데도 십만 원 주면서 밥이나 먹으라네요. 참!”

“하하하! 이봐 원래 다 그렇잖아. 그만 잊어. 자 뭐 좀 시키고 기다리자고.”

“누구 기다리세요?”

“우리 물건 처리해 줄 사람 지금 이리로 오는 중이야.”

주문을 받으러 온 종업원으로 인하여 둘의 대화가 잠시 중단 됐다. 그때 범휘가 안으로 들어왔다. 그를 보자마자 장 사장은 좀 전과 똑 같이 반지와 시계가 자리 잡고 있는 손을 흔들어 보였다.

“여기야! 여기!”

같은 자리에서 또 다시 큰소리가 터져 나오자 손님들의 시선이 더욱 따가웠다. 이번에는 걸어오는 범휘에게도 그 시선이 전해졌다. 웃음을 보였던 창석과는 달리 그의 표정은 딱딱하게 굳어있었다.

“잘 지내셨습니까. 장 사장님.”

범휘가 형식적인 인사를 건넸다. 하지만 괜히 사기꾼이던가? 장 사장은 그의 차가운 분위기에 전혀 눌리는 기색이 없었다. 아니 오히려 아까보다 더욱 장난기 서린 얼굴을 하고 있었다.

“하하 그래. 자네 얼굴이 더 좋아졌구먼. 아! 유 사장. 우리와 이번에 차 거래하실 박 실장이야.”

“아! 그래요. 반갑습니다. 유현진입니다.”

장 사장에게 질 새라 창석 역시 밝게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정중하게 악수를 청했다. 하지만 범휘는 자리에 앉은 채 그를 올려다보며 살짝 고개만 숙여 보였다. 무안해진 창석의 손은 재빨리 제 자리를 찾아갔다.

범휘가 쌀쌀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장 사장님, 서류부터 확인 할까요?”

‘뭐야. 저 새끼. 딱 보니 달건이 냄새 좀 풍기는데?’

창석은 범휘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표정만은 여전히 온화한 미소를 유지하고 있었다.

장 사장이 크게 웃으며 말했다.

“하하! 이 사람은 오자마자 온통 일 이야기뿐이야. 일단 뭐 좀 시키고 이야기 하자고.”

“아니요. 일단 서류부터 확인 하시죠.”

범휘는 이들의 행동에 짜증이 밀려왔다. 창석과 장 사장 역시 마찬가지였다. 싫은 것은 확실히 싫다 이야기하는 범휘의 성격과, 겉과 속이 다른 그들의 성격은 물과 기름 같았다.

“참! 사람하고는.”

장 사장이 언짢은 표정으로 혀를 차며 범휘를 노려보았다. 그는 시선을 피하지 않고 더욱 사납게 장 사장을 노려보았다. 그러자 장 사장이 먼저 시선을 피하며 옆에 놓인 가방에서 서류를 찾았다.

서류를 받자마자 꼼꼼하게 체크해보는 범휘. 아까와는 다른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장 사장이 말했다.

“모두 신차야. 출고 된지 2달 정도 됐고, 그랜저 이상 급 세단으로만 뽑았으니까 소비자들 많이 붙을 거야. 렌터카라서 모두 가스차량이고 검은색으로만 뽑아서 자세도 제대로 나와.”

“신차가가 얼마죠?”

친절하게 설명을 하는 장 사장과는 달리 범휘는 여전히 한기가 가득 서린 말투였다. 아랑곳 하지 않고 장 사장이 친절히 애기했다.

“가스차라 좀 싸지. 그랜저가 3천만 원. 어때? 괜찮지?”

대답대신 범휘는 휴대전화에서 누군가의 전화번호를 찾기 시작했다.

“김 대리님 오랜만입니다. 그랜저 가스차량 시세를 좀 알고 싶어서요. 아! 네. 신차가 3천만 원에 할인혜택 5%가 있다고요?”

그는 통화 도중 장 사장을 매섭게 노려봤다. 장 사장이 급하게 물을 찾았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창석 역시 컵을 찾아 벌컥 들이켰다.

통화가 끝나자마자 무슨 말을 꺼내려는 범휘의 입을 장 사장이 막았다.

“하하! 내가 급하게 일을 처리하려다 보니 깜빡하고 말을 못했네. 미안하이.”

하지만 범휘의 입은 장 사장의 사과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사장님. 지금 장난하십니까? 지금까지 이렇게 형님과 거래 해 오신 겁니까?”

“하하. 정말 깜빡하고 이야기 안한 거라니까. 정 사장하고 내가 얼마나 각별한 사이인데 이런 걸로 속이려고 하겠나. 그러지 말고 일단 깔끔하게 계좌로 송금부터 해주게. 그리고 오늘 술이라도 한잔 해야지? 내가 거하게 한잔 사지.”

장 사장의 말에 창석이 맞장구를 쳤다.

“하하! 그래요. 박 실장님. 우리 오늘 이렇게 만났는데 거하게 한잔 합시다. 커피 값은 제가 계산하지요.”

급하게 자리에서 일어나 카운터로 향하는 창석. 그 뒤를 장 사장이 급하게 따라 나섰다.

“역겨운 사기꾼 새끼들.”

##

“뭐가 이렇게 막혀?”

번화가를 중심으로 열심히 운전을 하던 천이 짜증스럽게 담배를 물었다. 네온사인이 켜진 거리는 사람들로 넘쳐났다. 많은 차들이 주차할 공간을 이리저리 찾고 있었다.

천의 승합차는 주차 공간을 찾는 것을 포기한 채 요란한 엔진소리를 내며 인도위로 올라갔다. 거리를 걷던 사람들이 움찔하며 그를 사납게 쳐다보았지만, 아무렇지 않은 듯 그는 창문을 열고 담배를 맛있게 빨아대고 있었다.

담배가 반쯤 타들어가자 승합차 뒷문이 열리며 아가씨 두 명이 올라탔다.

“이것들아! 왜 이렇게 늦어? 지금 다른 가게 콜 받는지가 언제인데.”

“죄송해요. 손님 에스코트까지 해주느라.”

“빨리빨리 나와라. 시간은 금이다.”

천의 닦달에 아가씨들은 고개를 숙이고 휴대전화기를 만지작거렸다. 승합차는 몇몇 술집을 더 돌아다니며 아가씨들을 태웠다. 뒷문이 열릴 때마다 그의 잔소리는 계속 되었다.

7명의 아가씨가 차안을 가득 메웠다.

차선을 위반하며 좁은 거리를 무섭게 달리던 승합차가 다시 네온사인으로 온몸을 휘감은 건물 앞에 주차되었다.

“여기 6명 들어가.”

순번을 정해 놓았는지 정확히 6명이 빠르게 움직였다. 차 안에는 예전에 사무실을 찾아왔던 아가씨만이 남아 화장을 고치고 있었다.

“오늘 날이 추워서 그런지 콜이 잘 안 터지네. 동생은 일 할 만해?”

은근슬쩍 눈 밀러로 그녀의 허벅지를 내려다보며 천이 말을 걸었다. 아가씨는 여전히 화장을 고치며 대충 말했다.

“예. 괜찮은 거 같아요.”

“그래? 오늘 끝나고 뭐할 거야?”

이번엔 고개를 돌려 단도직입적으로 그녀의 잘빠진 다리사이를 음흉하게 쳐다봤다. 짧은 스커트가 살짝 올라간 그녀의 다리는 부끄러운 줄 모르고 그의 음흉함을 서슴없이 받아들였다.

“오늘 집에 가야죠.”

그녀는 조그마한 거울을 바라보며 말했다.

“오빠랑 밥이나 먹을래?”

“술 많이 안 먹으면요.”

그녀의 말에 천이 입맛을 다시며 옅은 미소를 보였다. (따르르!)

낡은 휴대전화기의 벨소리가 그의 달콤한 상상을 방해했다.

“예! 실장님. 3명이요? 지금 한명 밖에 안남아 있는데. 금방 들어가서 나올 아가씨들 없어요. 일단 하나라도 보내드릴까요? 예. 그럼 3분만 기다리세요.”

통화가 끝나자 아쉬운 시선으로 그녀를 한 번 바라보고 차를 출발 시켰다. 그리고 조수석에 아무렇게 놓인 최신기종의 휴대전화를 집어 들었다.

“아영아! 너희 옆 가게 가는 길이야. 바쁜가?”

“아니, 오늘 첫손님 개시도 못했다. 어디야?”

“3분 안에 도착할거 같은데, 우리 애들 페이 좀 가지고 나와라.”

“그래. 알겠어. 그런데 다른 가게는 아가씨들 많이 들어갔니?”

“콜 이제 15개 받았어. 다른 가게도 썰렁한 것 같아.”

통화를 이어가는 도중 어느새 아가씨를 내려다 줄 가게 앞에 도착을 하였다. 아가씨는 인사도 없이 휙 하니 차에서 내려,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빵빵!)

천이 건너편에 서있는 아영을 발견하고 클락션을 울렸다. 서로 눈이 마주치자 자연스럽게 휴대전화를 내려놓았다.

“뭐야. 이렇게 가까이 있는데 왜 그렇게 얼굴 보기가 힘들어?”

아영이 조수석에 올라타 봉투를 건네며 반갑게 이야기 했다.

“하하 그러게 말이야. 너 손님도 없는데 내가 한잔 팔아줄까?”

봉투를 건네받은 천이 안에 들어있는 액수를 확인하며 말했다.

“됐어. 내가 살 테니까 들어와. 대신 한 병은 천이 네가 사라.”

아영이 차에서 내려 먼저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웨이터가 나왔고 천과 운전대를 교대했다. 가게 안으로 들어온 그를 다른 웨이터가 룸으로 안내했다.

“너희 가게는 그대로네.”

자리에 앉자마자 천이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사장이 짠돌이라 인테리어 할 거면 실장들이 30% 보태라네. 미친 새끼. 삼촌! 3티에 세븐틴 하나 가져와!”

아영이 술을 주문하고 천의 맞은편에 앉았다. 그들의 대화는 앉자마자 열을 올리기 시작했다. 가게 매상이야기부터 아가씨들 이야기, 매너 없는 손님들의 이야기까지.

입에서 단내가 날 때까지 쉬지 않고 잡담이 계속되었다.

“.......그래서 지금 우리 보도 아가씨 손님한테 엄청 뚜들겨 맞고 병원에 누워 있잖아. XX가게 윤 실장 손님은 왜 그렇게 다들 진상이냐?”

“그 언니 아가씨 때도 진상 손님 파트너만 했었잖아. 그 언니 팔자가 드센가보다. 호호!”

이내 술이 들어오고 서로 술잔이 바쁘게 오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아영이 너 여기에 죽치고 있어도 되는 거야? 예약 손님 없어?”

“오늘 예약 모두 캔슬났어. 넌 이렇게 술 마셔도 돼?”

“전화 오면 동생들에게 대신 아가씨들 데리러 가라고 하면 되니까.”

“아무튼, 분당 바닥 돈은 모두 네가 쓸어 간다니까.”

“하하 누가 할 소리.”

한 잔, 두 잔. 술잔이 비워 질수록 더욱 자극적인 이야기 들이 오고갔다.

아가씨들의 2차 이야기부터 일반적인 남녀가 만났다면 할 수 없는 변태적인 섹스이야기 까지. 그들에게는 마치 최고로 재미있는 이야기인양 서로의 이야기에 배꼽을 잡고 있었다.

“호호. 그래서 우리 아가씨 100만원 팁 받으려고 손님이 준 교복 입고 살색 스타킹 신고는 별 짓거리 다했다는 거 아니야.”

“아영이 네 새끼야?”

“그렇다니까. 스타킹 찢고 싶다는 거 찢게 놔두고 강간하는 것같이 하고 싶다고 해서 반항도하고 욕하고 할퀴고 했다는데.”

“하하 뭐야. 그걸 다 해줬다고?”

“그래! 그래 놓고는 손님이 지 볼일 다 보고 나니까 별로 재미없다고 50만원만 주더래. 그래서 그것만 들고 나오려다가 손님이 샤워하는 동안 지갑에서 20만원 더 뺐다네.”

“이야! 강자 제대로인데?”

“더 웃긴 건 뭔 줄 알아? 손님이 볼일 본 콘돔을 가져왔다는 거 아니야.”

“정말? 왜?”

“하하 그런 경우 많아. 2차 나갔다가 사정 안했다고 다시 2차비 돌려 달라고 하는 개진상들. 그런데 딱 보니 그런 개 진상인거 같아서 콘돔 가져왔다네.”

달아오른 분위기는 식을 줄 몰랐다. 처음엔 희석된 양주를 마시다 취기가 돌자 폭탄주를 서로 타주며 분위기를 더 뜨겁게 만들고 있었다.

서로의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 가운데, 천의 혀 꼬인 말투가 찬물을 끼얹었다.

“이야. 얼마만이야? 이렇게 취해 본지가. 세인이 있을 때 이렇게 마셔보고 처음인 것 같다.”

여전히 낄낄거리는 천과는 달리 아영은 익살스럽던 표정을 순식간에 걷어냈다. 딱딱하게 굳어버린 표정으로 반쯤 남은 폭탄주를 단숨에 들이 켰다.

“오랜만에 들어 보네. 그 이름.”

##

“서 실장님 계시죠?”

창석, 정 사장과 함께 룸 안에 들어선 범휘가 웨이터에게 물었다.

“실장님 지금 손님하고 식사하러 나가셨는데요. 지금 전화해서 손님 기다리신다고 바로 들어오라 애기하겠습니다.”

잠시 나간 웨이터가 이내 다시 들어왔다.

“실장님 오 분 안에 도착하신 답니다.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아! 그래요. 그럼 우리 시원한 음료수라도 먼저 좀 내 주세요.”

다시 웨이터가 나가고 나자 장 사장이 투덜거리며 말했다.

“뭐야. 박 실장이 추천해서 왔는데 오자마자 기다리는 거야?”

장 사장의 이야기가 달갑지 않은 범휘가 시선을 다른 곳에 두며 말을 아꼈다.

“하하 사장님. 박 실장님이 어련히 좋은 곳으로 모셨을 리라고요. 좀 기다리죠.”

창석이 끼어들었다. 그리고 시원한 음료수를 가져온 웨이터에게 팁을 챙겨주었다.

“하하. 웨이터, 실장님 오시면 손님들 목이 빠져라 기다린다고 빨리 좀 오시라고 해. 술도 지금 그냥 내오지.”

가라앉은 분위기를 화기애애하게 만들려 여간 노력하는 것이 아니었다. 커피숍에서 나오면서부터 분위기가 좋지 않았었다.

창석의 그런 태도에 마음이 조금 풀어졌는지 범휘의 표정이 한결 부드러워져 있었다.

(똑똑)

침묵이 견디기 힘들어 질 찰나 노크소리와 함께 연수가 들어왔다.

“어머? 범휘였네? 죄송합니다. 많이들 기다리셨지요?”

그녀는 잠시 범휘를 반갑게 맞이하더니 바로 같이 온 사람들에게 고개 숙여 인사했다. 급하게 왔는지 두꺼운 겉옷이 걸쳐져있었다.

“아녜요. 손님 만나다 보면 그럴 수도 있지요. 누님. 초이스 좀 부탁드릴게요.”

연수의 등장에 범휘가 반갑게 말했다. 하지만 정 사장은 영 내키지 않는 모습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여기 황진희가 있는 것도 아니고 양귀비가 있는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오래 걸려?”

‘이런 개새끼.’

장 사장의 말에 범휘의 눈이 번뜩였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느낀 창석이 다시 한 번 나섰다.

“하하! 장 사장님 우리 기분 좋게 놀아요. 기다린 만큼 보람이 있겠죠. 저기 실장님. 저희 빨리 초이스 좀 시켜주세요.”

“호호 죄송해요. 바로 초이스 해드릴게요.”

범휘의 살기가 사라지자 창석이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아가씨들이 들어 올 때 까지 서로 아무 말이 없었다. 분명 서로의 보이지 않는 감정싸움이 존재하고 있었다. 어색함은 아가씨들이 들어오고 나서야 조금씩 사라졌다.

늘씬한 아가씨들이 끝도 없이 들어와 인사를 하였다. 그 모습에 장 사장의 입은 헤벌레 벌어졌다. 창석도 여러 아가씨들을 보며 갈팡질팡 고민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범휘는 아가씨들 보단 연수를 바라보며 기분 좋은 웃음을 보이고 있었다.

“자. 오늘 예쁜이들은 여기까지. 총 30명의 아가씨들을 보셨습니다. 원래 기껏해야 열 명 정도 보여주는데 기다리신 사장님들 선택의 폭을 조금 넓혀드리는 저의 작은 배려라고 생각해주세요. 어떤 예쁜이를 선택하시겠어요?”

애교석인 연수의 말에 범휘가 제일 먼저 나섰다.

“하하! 누님, 저는 누님 새끼로 앉혀주세요. 아무나 상관없으니까.”

“호호 정말? 그럼 가장 배고픈 아가씨를 범휘 옆에 앉혀 줘야겠는 걸?”

둘만 다정하게 이야기 하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장 사장이 끼어들었다.

“난 실장님이 마음에 드는데.”

장 사장이 얇은 셔츠 사이로 비춰지는 연수의 가슴골을 노골적으로 쳐다보며 농담 반 진담 반을 섞어 이야기했다.

‘이런 양아치새끼가.’

범휘는 자신의 인내에 한계를 느꼈다. 인상이 심하게 구겨졌다. 그의 변화를 눈치 챈 창석도 이번만큼은 괜스레 끼어들었다가 낭패를 볼 거라는 생각에 입을 굳게 닫고 있었다. 범휘가 일어나려는 모션을 취하려는 찰나! 연수가 그를 째려보았다. 둘 사이에 흐르는 미묘한 무언가를 창석은 쉽게 느낄 수 있었다. 잠깐의 눈빛 교환에 그의 얼굴은 똥 씹은 얼굴로 바뀌었다. 그리고 나긋나긋 장 사장에게 말했다.

“장 사장님. 여기 계신 분. 천이 형님 누님 되십니다.”

지금까지 어떤 위험천만한 일이 있었는지 전혀 모르는 장 사장이 범휘에게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무안한 웃음을 지으며 뒤통수를 긁적였다.

“아이고! 뭐야. 내가 크게 실수 했네. 실장님 미안합니다. 그럼 난 3조에 들어왔던 1번 아가씨로 해야겠는걸.”

범휘와 연수를 번갈아 쳐다보던 창석은 긴장을 풀고 큰소리로 말했다.

“전 가게 에이스로 넣어주세요. 하하.”

연수에게 이야기를 하였지만 눈은 범휘를 향하고 있었다. 다행히 범휘의 기분이 많이 가라앉은 것 같았다.

연수가 손가락으로 머리를 긁적이며 고민하는 모션을 취했다.

“누굴 넣어줘야 하나? 호호 그럼, 매너 좋고 잘하는 아가씨로 넣어드릴게요.”

애교석인 웃음과 함께 연수가 퇴장을 했다. 창석이 살며시 범휘에게 다가갔다.

“제 잔 한잔 받으세요. 반갑습니다. 정식으로 인사할게요.”

정중하게 예의를 차리는 창석의 술을 범휘가 공손히 받았다.

“예. 반갑습니다. 박범휘 라고 합니다.”

“제가 보기에 우리 쪽 일을 하시는 분은 아니신 거 같은데.”

“예. 전 형님과 함께 조그마한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차일도 한 부분입니다.”

“아하! 맞다. 차량 때문에 오신 거죠? 하하 제가 정신이 없습니다. 이해해 주세요.”

범휘의 술잔이 가득 채워지자 창석은 건배를 하며 장단을 맞췄다.

못마땅하게 그들을 지켜보던 장 사장은 지명한 아가씨가 들어오자 큰 소리로 외쳤다.

“자자! 오늘은 먹고 죽는 거야! 우리의 사업에 영원한 영광을 위하여! 건배!”

##

각자 술잔을 연거푸 비워내는 천과 아영. 그들의 시선은 서로 다른 곳을 향해 있었다.

어색한 정적 속, 옆방에서 흥겨운 음악소리가 들려왔다. 노래를 감상하고 있는지 아영은 조용히 눈을 감고 소파에 몸을 기댔다. 천은 애꿎은 담배만 뻐끔뻐끔 펴대며 아영을 조심스럽게 쳐다봤다.

쿵쾅거리는 음악소리가 어느새 멈춰졌다. 기다렸다는 듯이 천이 화제를 돌려 말했다.

“나 정선 쪽에 아가씨들 좀 보내 볼까해.”

다행히도 아영이 관심을 보이며 눈을 번뜩 떴다. 기회를 놓치지 않고 천이 거침없이 말을 이어갔다.

“정선 쪽에 닷찌가 엄청 성행하고 있거든. 고객층도 굉장히 럭셔리 한가봐. 기업인들과 정치인들이 주 고객이라고 하네.”

“그런 쪽은 언제 또 알아본 거야?”

어느새 아영의 눈빛은 호기심으로 가득 차있었다. 천이 한결 여유로워진 모습으로 소파에 팔을 기댔다.

“하하 내가 정선 카지노 전당포에서 대포차들 많이 가져오잖아. 거기 친분이 있는 단골 전당포가 있는데 그 양반이 일 한번 해보라며 이야기 하더라고. 그래서 알아봤는데 수입이 지금보다 두 배는 더 많을 거 같아.”

이야기가 계속 될수록 맞은편에 앉은 아영의 몸이 테이블 쪽으로 밀착되어갔다.

“아가씨들 페이가 얼마나 되는데? 네가 가져가는 수익은?”

“12시간에 200만원. 이게 기본이라네. 수입은 아가씨와 업주 5:5. 정치인들이나 기업인들이 카지노 룸에서 술 먹긴 그러니까 아가씨 하나 데리고 다니면서 즐기는 거지. 그리고 단속 걱정도 없어. 현직 헌병대장과 전직 경찰 간부가 손님들을 중간에서 쪼인 해 주거든.”

“그래? 꽤 구미는 당기는데? 그래서 천이 네가 직접가려고?”

아영의 호기심 어린 눈빛이 초조하게 바뀌었다. 눈치 채지 못한 천이 거침없이 말했다.

“아니. 난 여기 있어야지. 지금 룸 보도로 있는 아가씨들 정리해서 그쪽으로 보내고 난 여기서 안마보도만 돌릴 참이야.”

대답이 마음에 들었는지 아영이 천의 술잔을 가득 채웠다.

“이제 겨울 장사 들어가는데 왜 룸 보도를 정리해? 새로 아가씨 구하지”

“룸 보도는 정말 돈 안 돼. 아가씨들한테 한 테이블에 2만원씩 띄고 어떻게 먹고 살아? 요즘은 시간 진상인 놈들 많아서 하루에 한 아가씨가 2테이블 밖에 못 보는 경우도 있어. 안마보도는 그 짓거리만 하니까 20분이면 끝나잖아. 안마보도 아가씨 한명이 하루에 10개도 뛴다고.”

“그래. 맞는 말이긴 하네. 그런데 그쪽에 이미 자리 잡은 놈들 있을 거 아니야?”

이번에는 조금 걱정스러운 표정이다. 그러나 천은 별로 신경이 쓰이지 않는지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다.

“하하 걱정 마셔. 기존에 있던 놈들이 중간에서 쪼인 해주는 헌병대장이랑 트러블이 좀 있나봐. 동생들 좀 데려가서 정리해야지. 그 놈들 정리하는 조건으로 내가 들어가는 거거든.”

“악마 같은 놈.”

눈을 흘기며 핀잔을 준다. 그러나 그런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는지 천은 빠르게 답했다.

“만약 우리에게 슈퍼맨이나 스파이더맨과 같은 능력이 있었다면 어떨 거 같아? 그들과 같이 정의의 사도가 되었을까? 아니. 사람들은 그 영화 속 악당과 같이 백이면 백 모두 변했을 거야. 안 그럴 거라고 생각하지만 모두가 그래. 자신의 욕구를 모두 채운다음에야 정의나 악을 생각 하게 되어 있어. 결론은 세상의 모든 사람은 악마야. 하하.”

아영이 피식 웃으며 천의 입안에 과일을 한가득 집어넣었다. 볼록 뛰어나온 볼이 빠르게 제 모습을 찾아갔다.

“정선이라. 하하! 대한민국에서 가장 현찰이 많이 돌아가는 곳. 어때? 매력 있지 않아?”

##

“아휴 예쁜이들 보소. 아주 그냥 아랫도리에 힘이 꽉 들어가게 하는구먼.”

장 사장이 옆에 앉은 아가씨의 풍만한 몸을 이리저리 휘저으며 얘기했다. 범휘는 그런 모습이 거북한지 보라는 듯 술을 들이켰다. 창석은 장 사장의 비위를 맞추기 바빴다.

“하하! 이봐! 장 사장님 파트너. 오늘 장 사장님 다릿심 쭉 빼놓아야 돼. 옜다! 기분이다.”

창석은 지갑에서 빳빳한 수표를 꺼내 장 사장 파트너에게 건넸다. 이에 질세라 장 사장이 지갑에서 만 원짜리 수십 장을 꺼낸다.

“자! 이 돈들 가져가고 싶으면 저기 무표정한 양반 한번 웃겨봐!”

범휘를 바라보며 능글능글한 웃음을 보이는 장 사장.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아가씨들이 그에게로 달려든다.

곤욕스러워 하는 범휘의 모습에 장 사장이 배꼽이 빠져라 웃음보를 터트렸다. 가만히 지켜보던 창석이 아가씨들을 말려보지만, 수십 장의 지폐가 이미 그녀들을 가만히 놔두지 않았다.


소설가  sojj121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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