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발표 ‘겨울의 사랑’ 등 354편 담겨져
초고·시상메모도… 한국문학사 재조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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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김수영의 아내 김현경(왼쪽)씨와 문학평론가 이영준씨. |
김수영(1921∼1968) 시인의 미발표시를 포함한 육필 시 원고와 시상 메모까지 354편을 망라한 ‘김수영 육필시고 전집’(민음사)이 출간됐다. 김수영은 작품이 중·고교 문학교과서에 가장 많이 실려 있고 연구논문이 수백 편에 이를 정도로 한국현대문학사에서 비중이 큰 시인이다. 하버드대에서 김수영을 연구하며 7년에 걸쳐 자료를 탐색하고 해제를 붙여 이 책을 엮어낸 문학평론가 이영준(51)씨는 1일 낮 기자들과 만나 “이 책에 수록된 육필 원고는 미시적으로는 김수영 시를 발생론적 관점에서 보게 하면서도, 거시적으로는 한국 현대문학사의 생성 과정을 기록한 획기적 자료”라고 밝혔다.
김수영은 생전에 초고를 완성하면 아내에게 정서를 요구했는데 그 과정에서 수정과 가필, 행갈이 조정을 꼼꼼하게 지시했고 이 과정은 육필 원고에 생생하게 드러나 있다. 이 원고는 시인의 누이 김수명씨가 40여년 동안 보관해 온 것으로, 이씨가 “사진으로 찍어 보존해서 한국문학 연구자들과 김수영의 시를 사랑하는 독자들과 공유하자”고 제안해 출간이 성사됐다.
이번 육필시고전집에는 처음으로 공개되는 미발표 시 ‘겨울의 사랑’도 수록돼 눈길을 끈다. “여러분에게는 미안할 정도로 교묘(巧妙)를 다한/ 따뜻한 사랑이었다/ 발악하는 사랑이었다”로 맺는 이 시는 1954년 김수영이 당시 미도파백화점에 근무하는 여성과 데이트할 때의 감정을 담아낸 시편으로 알려졌다. 이영준씨는 “지난해 40주기 때 15편의 미발표시를 발굴했다지만 이 중 2편을 제외하곤 완성된 작품이 아니라 시작 메모 수준”이라며 “김수영은 완성작에는 반드시 따로 표시하고 제목도 붙였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젊은 연구자들이 자료를 처음 접하고 흥분한 결과일 것”이라며 “원고에는 없는 제목까지 마음대로 붙여서 미발표시라고 공개한 건 저작권법 위반”이라고 덧붙였다.
이날 이씨와 함께 출판간담회에 참석한 김수영의 아내 김현경(82)씨는 “그 양반은 시를 쓸 때면 굉장히 신경이 예민해져 산고를 겪었는데 한 편을 완성하면 내가 밥을 짓고 있어도 서재로 빨리 들어와 정서하라고 요구했다”며 “나를 옆에 앉혀 놓고 한 자라도 틀릴까봐 큰 눈을 부릅뜨고 조심스럽게 지켜봐 시종 긴장했다”고 회고했다.
조용호 선임기자 jho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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