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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목, 이사람] 7년차 뮤지컬배우 홍광호

입력 : 2009-05-25 21:06:19 수정 : 2009-05-25 21: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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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코 채워지지 않는 큰 그릇 만드는 중”
◇뮤지컬 배우로 7년 동안 걸어온 길이 쉽지만은 않았다. 홍광호는 “어려운 일이 생길 때 생각만 하기보다 가장 먼저 할 수 있는 일이 뭔지 찾아보고 바로 실천한다”고 말했다.
송원영 기자
한 번이면 된다. 뮤지컬 배우 홍광호(27)를 알려면 그가 부른 노래를 딱 한 번 들으면 충분하다. 뮤지컬 스타 조승우가 홍광호에 비하면 자신의 노래는 ‘쓰레기’라고 말한 까닭을,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에서 경쟁률 1300대 1을 뚫고 주연을 꿰찬 이유를 알게 된다. 무대에서 그는 ‘미친 가창력’으로 통한다.

서울 신사동 한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요즘 그는 창작뮤지컬 ‘빨래’로 바쁜 일정을 보내고 있다. 처음 뮤지컬을 하겠다고 했을 때 번번이 오디션에서 미끄러졌다. 너무 어려, 경력이 없어 노래 한 번 불러보지 못하고 서류에서 미끄러졌다. 뮤지컬 ‘명성황후’에서 병사로 출연한 것이 첫 데뷔 무대였다. 2002년이었다. 그리고 7년이 흘렀다. 물론 오디션을 봐야 하는 작품도 있지만 일단 러브콜이 들어온다는 것은 신기한 일이다.

“기분 묘하죠. 저한테 작품을 하자고 하다니…. 감격하면서 책(대본)을 봐요. 예전의 저였다면 이 작품은 나중에 해야지 할 텐데 이젠 주어지는 대로 하려고요. 지금 제가 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이잖아요.”

뮤지컬은 그에게 삶이다. 감사하는 법도 배웠고 즐기는 법도 알았다.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그는 “뿌듯할 정도로 잘 걸어오고 있다”며 웃었다. 걸을 때는 힘들고, 멀리 못 보니 중간에 지친 적도 여러 번이지만 잘 견뎌낸 것이 ‘오늘’을 있게 했다. 과묵하고, 소심하고, 무심한 그가 뮤지컬의 ‘뮤’자만 들으면 가슴부터 쿵쾅이니, ‘포기’라는 단어는 아예 생각한 적도 없다.

“저를 설레게 하는 게 더구나 ‘직업’이니 행운인 거죠. 일찍 시작해 무대에 선 지는 꽤 됐지만 아직 가야 할 길이 멀어요. 채워야 할 게 많으니까요. 뮤지컬 빼면 할 것도 없어요.”

뮤지컬이 꿈이 된 건 고등학교 시절부터였다. 출발은 엉뚱했다. “집에서 가깝고 머리를 좀 더 길게 기를 수 있다”는 유혹에 계원예고에 들어간 것. 그 뒤 뮤지컬의 매력에 빠졌고 이젠 인생이 됐다. 이미 어린 시절부터 뮤지컬과의 연은 시작됐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솔티와 함께’로 교회 무대에 2년간 섰다. 어렴풋하게 남들보다 목청이 크다는 것도 알았다.

군대 시절도 큰 도움이 됐다. 군악대원이었던 그의 주특기는 클라리넷. 몇 번 노래를 부르자 그 뒤엔 애국가도 그의 몫이었다.

‘명성황후’에 이어 ‘미스 사이공’(2006), ‘첫사랑’(2007), ‘스위니토드’(2007), ‘씨왓아이워너씨’(2008)에 출연했고, 영화 ‘고고70’(2008)도 찍었다. 그리고 터졌다. 지난해 ‘지킬 앤 하이드’에서 그의 이름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오는 9월엔 ‘오페라의 유령’이 기다리고 있다. 그의 뮤지컬 인생 1막 1장의 막이 오르고 있는 것이다.

물꼬를 트다, 지킬 박사

지킬 박사와 하이드라는 상반된 역할을 오가며 원맨쇼를 했다. 그가 보여준 ‘지킬’은 호소력 있게 객석을 파고들었다. 여기서 부른 ‘지금 이 순간’은 네티즌 사이에 회자가 됐을 정도다. 이 작품의 매력을 그는 “캐릭터의 이면을 아예 전면에 내세운 점”이라고 꼽았다. 명망 있던 지킬 박사는 하이드가 돼 온갖 범죄를 저지르며 인간 내면에 숨겨져 있는 선과 악을 무대에 표출한다. 그가 스스로 평가한 점수는 40점. “이제 첫술이다”라고 말한 그는 “커가는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작품”이라고 말했다. 던져 준 메시지도 있다.

“어떻게 보면 ‘가면 이야기’인 거죠. 사람들은 어디에 있느냐, 누구와 있느냐, 뭘 하느냐에 따라 가면을 쓰게 되잖아요. 두께도 달라지죠. 저 역시 그래요. 자신에 대해 생각할 기회를 주는 작품이에요.”

‘지킬 앤 하이드’가 인기를 준 만큼 고민도 늘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사람들이 정해 놓은 ‘홍광호’가 생겼다. 어느 순간 ‘규정된 또다른 나’가 존재한다. 그는 “낯설다”고 했다.

“저도 저를 잘 모르는데 저에 대한 선입견이 하나 둘 생겨 처음엔 당황했어요. 저에 대한 기대치가 높아진 것 같기도 하고. 이럴수록 무대에 더 집중하려고요. 제 무대로 관객에게 감동을 줄 수 있다면 바랄 게 없어요. 외부적 상황엔 일단 신경 쓰지 않는 게 답이라고 생각해요.”

◇뮤지컬 ‘빨래’.
행복을 배우다, 솔롱고


뮤지컬 ‘빨래’는 불법체류 외국인노동자가 들려주는 ‘행복’이야기다. 꿈을 안고 서울 달동네에 둥지를 틀며 하루하루 살아가는 사람들 모습 속에 삶의 냄새가 짙다. 주인 할매 역을 맡은 배우 이정은의 연기가 탐나(?) 먼저 출연하겠다고 했다.

“이정은 선배 뒤를 계속 쫓아 다니며 연기 좀 가르쳐 달라고 했어요. 선배가 한마디 툭 던져주는 게 저한테는 굉장한 변화를 주거든요. 매번 무대 설 때마다 조금 더 나아진 연기에 저도 감탄한다니까요. 하하.”

창작 뮤지컬인 만큼 캐릭터 연구는 배우의 몫이다. 외국인 노동자를 직접 만나 억양을 배웠다. 그러면서 그동안 막연하게 갖고 있었던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편견도 없앴다.

“정말 우리와 다를 게 하나도 없어요. 외모도 한국 사람과 똑같고요. 단지 돈을 벌러 한국에 왔다는 이유만으로 그들을 차별한다는 건 말도 안 되죠.”

고된 삶이지만 희망을 안겨주는 작품이라 무대 위에서도 즐겁다. 솔롱고의 모습은 순수하다. “그렇게 보이는 이유는 말이 어눌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고민했어요. 왜 무대에서 그의 모습이 순수해 보일까. 말이 서툴기 때문에 그런 거더라고요. 말이 서투니 표현방법도 훨씬 솔직하고 원초적이죠. 말투를 그대로 살리려고 노력했어요.”

대사·노래 모두 외국인 노동자 말투를 따랐다. 단, 이 작품의 명곡이라 꼽히는 ‘참 예뻐요’만큼은 자연스럽게 부른다. 솔롱고의 속마음을 표현한, 비현실적 장면이다. 마음속에선 누구나 말투가 어눌하지 않단다.

그릇을 키우다, 라울

미래 ‘팬텀’이 있음을 알리는 무대다. 나이가 들면 그가 꼭 해보고 싶은 역할이 ‘오페라의 유령’의 팬텀이다. ‘오페라의 유령’은 추악한 외모로 극장의 유령 행세를 하며 살아가는 팬텀이 여가수 크리스틴을 사랑하며 벌어지는 비극적 이야기를 다룬다. 라울은 크리스틴의 연인. 2001년 한국에서 초연 때 ‘라울’ 역으로 오디션을 봤지만 무대는 그를 허락하지 않았다. 8년 만에 문을 두드리는 데 성공한 셈이다. 공연은 가을이지만 벌써 설렌다.

“오랫동안 기다려온 만큼 멋진 무대를 보여드리려고요. 여기에 나오는 노래들은 혼자 수백 번은 불러본 거 같아요.”

뮤지컬 배우로 탄탄한 길을 닦고 있는 그는 그릇을 키우는 데 주력하고 있다. “물을 채우는 데 급급하기보다 그릇을 만드는 데 집중한다”고 했다.

“종지에 물을 담으면 금세 넘쳐 버리잖아요. 차고 넘치기 전에 그릇을 크게 만들어야죠. 부어도 부어도 채워지지 않게요.”

그의 그릇은 몸집 불리기에 들어갔다. 방법이 뭘까 궁금했다. “하루하루 무대에 최선을 다한다”는 그는 “관객과도, 그리고 자신과도 타협하지 않는다”며 싱긋 웃었다. 쑥스러움이 묻어났다.

윤성정 기자 ysj@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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