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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거한 노 전 대통령의 파란만장한 정치 인생

입력 : 2009-05-23 13:11:00 수정 : 2009-05-23 13: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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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닷컴]

23일 오전 서거한 노무현(63) 전 대통령의 정치 인생은 특유의 승부사 기질로 돋보인 파란만장한 역사였다.

1946년 8월 6일 경남 김해에서 아버지 노판석씨와 어머니 이순례씨 사이에서 3남 2녀 중 넷째로 태어난 노 전 대통령은 가정 형편이 어려워 대학 진학을 포기한 채 9년간 독학으로 고졸 출신에게 사법고시 응시 자격을 주는 '사법 및 행정요원 예비시험'에 이어 1975년 제 17회 사법고시에 합격하면서 실질적인 정치적인 행보의 기반을 마련했다.

1977년 대전지방법원에서 판사로 부임했지만 7개월만에 그만두고 1978년 부산에서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했다 이후 1981년 제 5공화국 정부의 민주화 세력에 대한 용공조작 사건인 '부림사건'의 변론을 맡게 되면서 인권변호사로서의 길을 걷게 된다. 이후 1987년 대우조선 노동자가 시위 도중 사망한 사건에 연루했다가 제3자 개입 혐의로 검찰에 구속되어 옥고를 치루기도 했다.

이후 13대 총선에서 김영삼 당시 통일민주당 총재에 의해 정치권으로 영입되어 1988년 정치에 입문했고, 초선의원 시절인 1989년 국회 5공 청문회에서 전두환 전 대통령을 향해 의원 명패를 던지며 날카로운 질문을 퍼부어 '청문회 스타'로 대중들에게 기억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1990년 3당 합당에 대해 합류를 거부한 이후, 1992년 14대 총선, 1995년 부산광역시장 선거, 15대 총선에 잇따라 낙선했다. 노 전 대통령은 이후 1998년 7월 서울 종로 보궐선거에서 6년만에 원내 재입성에 성공했지만, 2000년 16대 총선에서 종로를 거부하고 부산에서 출마했다가 또다시 쓴 맛을 봤다. 그러나 이러한 노무현의 모습은 지역주의를 타파하고자 하는 '바보 노무현'으로 불리우며 지지자들을 모으게 되는 계기를 마련케 한다.

이무렵 노 전 대통령의 가장 강력한 지지모임인 '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이하 노사모)이 결성되었고, 자발적으로 모인 첫 정치인 팬클럽인 노사모는 2002년 대통령 선거에서 기존의 선거 판도를 바꾸어놓은 역할을 하게 된다. 노 전 대통령은 노사모의 지지와 네티즌들의 정치화를 도모하면서 결국 2002년 제16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해 당선됐다.

하지만 이후 대통령으로서의 행보는 순탄치 않았다. 판사출신인 강금실 변호사를 법무부 장관에 임명한 뒤, 이에 반발하는 검사들을 무마하기 위해 '평검사와의 대화'를 마련했지만 검찰과의 불신은 더욱 깊어졌다. 또 16대 국회에서 탄핵소추안이 가결되는 최초의 대통령이 되면서 2004년 3월 12일부터 헌법재판소이 탄핵안을 기각한 5월 14일까지 대통령 직무가 정지되기도 했다.

최근에는 박연차 회장의 정계로비가 공개되면서 노 전 대통령이 정치적 자산으로 내세웠던 '도덕성'이 위태롭게 되었으면, 이에 노 전 대통령 뿐만 아니라 권양숙 여사와 아들까지 조사를 받는 등 곤혹을 치뤘다. 형 노건평씨는 지난 해 12월 세종증권 매각 로비 사건에 구속 수감됐다.

사진=세계일보 DB

유명준 기자 pastcross@segye.com 팀블로그 http://comm.blog.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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