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어려움 끝에 아르고 호는 코르키스에 도착했지만 불행하게도 몇 사람은 중도에 목숨을 잃거나 되돌아 갔다. 아폴론의 아들로 그리스의 영웅들의 대열에 합류하여 아르고 호에 올랐던 이드몬은 자신의 운명을 알고 있었지만 아르고 호에 승선했었다. 예언의 능력이 있어서 ‘알고 있는 사람’이란 뜻의 이름을 가졌던 그는 아르고 호의 운명을 알고 있었다. 또한 자신의 운명도 알고 있었다. 요컨대 아르고 호를 타면 자신이 죽을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승선했던 그는 마리안디노스인의 나라에 상륙했을 때 멧돼지에게 찔려 죽었다. 그의 애석한 죽음을 위해 아르고 호의 선원들은 3일 동안 상복을 입고 그를 위로했었다.
그런데다가 키잡이인 티피스도 병이 들어 죽었다. 키를 잡을 사람이 없어지자 어쩔 수 없이 안카이오스를 승선시켰는데 그는 헤라클레스에 버금가는 힘이 센 장사였다. 또한 중간에 참여한 영웅으로는 다스킬로스, 시노페에서 헤라클레스의 아마존 공략에 참가했던 3인의 테실리아인도 합류했다. 이들에게 조언을 받은 아르고 호는 아마존의 여무사들을 피하여 테미스킬라로 통과하여 운행했다. 그렇게 하여 드디어 아르고 호는 아레스 신의 섬이라는 전설의 섬에 상륙했다.
그런데 이들이 상륙하여 뭍에 오르려는 순간 갑작스럽게 화살이 비 오듯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새의 깃털이었다. 보통의 깃털이 아닌 청동으로 된 깃털이었는데, 하늘에서 쏟아져 내려왔다. 그 깃털들은 제법 크고 무리를 지어 하늘을 날며 쏘아대는 새들의 깃털이었다.
급습을 당한 아르고 호의 선원들은 적이 놀라서 당황했다. 일단 선원들은 방패를 꺼내어 모여서서 철옹성을 쌓고 날카롭고 강한 깃털을 피했다. 하지만 공격은 끝없이 이어졌다. 언제까지 방패로 막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방패를 거두고 새들을 대항할 수도 없었다. 그들 중 누군가가 힘을 합쳐 고함을 지르자고 제안했다. 그러자 이들은 그 제안에 따라 힘을 합쳐 고함을 질렀다. 이들의 고함소리가 어찌나 컸던지 땅이 울리고 산이 흔들리는 것 같았다. 그러더니 날카롭고 강한 금속성의 깃털 소리가 갑자기 멎는 것 같았다. 마치 양철지붕에 비가 내리듯 시끄럽던 소리가 일시에 비가 그친 듯 조용해졌다. 아르고 호의 선원들은 방패를 슬쩍 제치고 하늘을 우러러 보았다. 그랬더니 그렇게 무섭게 공격을 해대던 새 떼가 멀리로 사라지고 있었다.
이들이 기쁨에 들떠서 다시 한 번 우렁찬 고함을 외칠 때 낯선 사내들이 그들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아르고 호의 선장 이아손이 그들을 향해 외쳤다.
“네 놈들은 누구냐? 저 도망치는 새 떼의 주인이더냐?”
그러자 그들 중 한 사람이 조용히 예를 갖추고 대답한다.
“고정하십시오. 저희는 당신들의 적이 아닙니다. 저는 아르고스라고 하옵고, 이들은 내 동생들이오. 저희는 코르키스에 살던 프릭소스의 아들들이오. 그런데 코르키스 왕인 아이에테스가 아버지를 죽이고, 우리마저 죽이려 하여 외국으로 도망치던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만 배가 난파되어 이 섬에 올라온 것입니다. 그러니 영웅들께서 어디를 가시든 저희를 거두어 함께 데리고 가 주십시오.”
“아르고스라? 오호라, 이 배를 만든 아르고스와 동명이로군. 그래요. 우리는 코르키스로 황금의 양털을 가지러 가는 중인데 그곳에서 도망을 하였다니 다시 돌아갈 수 있겠소?”
“우리도 선원으로 참여하여, 섞여있으면 알지 못할테니, 그리고 막상 저희도 도망칠 곳도 없고…”
프릭소스, 그야말로 오르코메노스 왕의 왕자였다. 그런데 그의 어머니가 이혼당하면서 새로 들어온 계모의 흉계로 죽음을 당할 운명에 처했을 때, 황금 양털을 가진 양의 등에 타고 도망친 장본인이었다. 그런 그의 아들이 아르고 호의 선원들을 만났으니 우연치고는 묘한 인연이었다. 양이 유럽과 아시아의 경계를 넘어설 즈음 여동생 헬레는 등에서 떨어져 죽음을 당했고, 프릭소스는 무사히 코르키스 왕국의 수도 아이스에 내릴 수 있었다. 코르키스의 왕 아이에테스는 프릭소스를 환영하여 자신의 딸 칼키오페와 결혼하게 하고 그를 아껴주었다. 프릭소스는 예언대로 양을 잡아서 제우스에게 제물로 바쳤다. 아이에테스 왕은 양의 가죽을 벗기게 하여 아레스 숲에 보관하고 불을 토하는 용이 지키게 했다.
그런데 왕은 신탁에서 그리스인에게 살해를 당할 것이라는 신탁을 듣고는 내심 불안했다. 아끼는 딸의 남편, 자신의 소중한 사위였지만 그는 프릭소스를 죽이고, 그의 아들들인 아르고스 형제들마저 죽이려 했다. 그러자 이들은 뗏목을 만들어 타고 아이아를 탈출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결국 난파당하여 아레스 섬에 도착했고, 여기서 아르고 호를 만나게 되었던 것이다.
아르고스는 이아손에게 코르키스 나라와 왕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해 주었고, 황금 양털이 숨겨져 있는 숲 이야기며 양털을 지키는 괴물 이야기도 해주었다. 이제 아르고 호는 다시 출발을 서둘렀고, 아르고 호에는 아르고스 형제들, 아르고스, 프론티스, 멜라스, 키티솔로스 등 4형제도 함께 하게 되었다.
아르고나우테스를 태운 아르고 호는 파시스 강을 거슬러 올라갔다. 이 강을 따라 올라가면 코르키스의 수도 아이아에 닿을 수 있었다. 아르고 호는 무사히 아이아에서 가까운 항에 도착했다. 배를 정박시키고 난 이아손은 선원들 중 텔라몬과 아우게이아스를 대동하고 아이에테스의 궁전을 찾아갔다. 이들의 일행을 헤라 여신이 지켜주고 있었다. 그래서 이들은 다른 사람들의 눈에 뜨이지 않았다. 헤라 여신이 안개를 끼게 만들어 세 사람의 모습이 보이지 않도록 도와주었던 것이다.
하지만 아이에테스의 둘째 딸 메데이아는 특별한 능력이 있었으므로 이들의 출연을 미리 알아보았다. 메데이아는 헤카테 여신을 섬기는 마녀였다. 자칫하면 이들은 목적을 달성하기도 전에 들통이 나서 일을 그르칠 수도 있는 순간이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이아손을 돕는 아프로디테 여신이 이 일에 개입했다. 아프로디테는 재빨리 마녀 메데이아에게 사랑하는 마음을 불어 넣었다. 그러자 메데이아는 처음 본 남자 이아손의 매력에 한 눈에 빠져들고 말았다.
메데이아는 갑자기 마음이 싱숭생숭해지고, 이아손에게 접근하고 싶은 마음을 억누를 수 없었다. 이아손의 모든 것이 매력으로 다가왔고, 잠시라도 눈에서 멀어지면 미칠 것만 같았다. 그런 마음을 억누르고 메데이아는 그들 앞에 나타나 친절을 베풀며 그들을 안내하여 왕 앞으로 데려갔다. 그러는 내내 메데이아는 묘한 눈빛으로 이아손을 흘끔거리며 쳐다보곤 했다.
코르키스 왕 아이에테스 앞에 나아간 이아손은 자기가 이곳까지 오게 된 목적을 이야기 하고, 간곡하게 도움을 청했다. 아이에테스 왕은 처음 이들이 자기 앞에 이르렀을 때, 이국의 그리스인들이 자기 왕국을 빼앗으러 온 것으로 알고 내심 적의를 갖고 있으면서 내색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원정의 목적이 단지 황금의 양털 가죽을 가지러 온 것뿐이라는 이아손의 말을 믿는 척했다. 그리고 그의 용기와 힘을 시험해보고 싶었다. 그의 능력을 알고 나서 그에 대한 대책을 세워야겠다고 생각했다.
아이에테스 왕은 이아손에게 황금 양털을 내 주는 대신에 한 가지 어려운 과제를 제시했다. 그 과제는 무척이나 어려운 일로 내심으로는 자기 손을 쓰지 않고도 이아손을 제거할 수 있는 일이었다. 요컨대, 용감무쌍한 용사들을 물리치는 일이었다. 그런데 이 용사들은 단순한 용사들이 아니라 청동의 발굽을 가지고 코에서 불을 토하는 황소를 길들여 땅을 갈고, 종자로 심은 용의 이빨에서 나온 무장한 용사들이었다. 아무리 천하의 영웅 장사라도 그들을 당해낸 사람이 없을 정도로 그 용사들은 용감하고 힘이 셌으며, 잔혹하기 이를 데 없는 자들이었다. 웬만한 용사들도 이들만 만나면 주눅이 들고, 피하려 할 정도로 대단한 용사들이었다. 이 과제야말로 이아손에게는 너무나도 위험천만한 일이었다. 하지만 이아손은 기꺼이 그 일을 하기로 약속하고, 아이에테스 왕은 내심 힘 안들이고도 그리스인들을 처리하게 되어 기뻐했다.
이들이 맡은 과제에 대한 소식은 아르고 호의 선원들에게도 전달되었다. 그러자 아르고 호의 일원이 된 프릭소스의 맏아들 아르고스는 깜짝 놀라며 이아손에게 말했다.
“이아손! 그건 참 위험한 일입니다. 아주 조심해야 합니다. 그건 이곳 왕의 무서운 계책이에요. 우리 모두를 없애려는 계략입니다. 그렇다고 물러설 수도 없으니, 제가 방법이 있는지 어머니에게 몰래 상의를 해보도록 하겠어요.”
아르고스의 어머니는 다름 아닌 이 나라 왕 아이에테스의 딸이었고, 메데이아는 그녀의 동생이었다. 아르고스는 그날 밤 사람들의 눈에 안 띄게 어머니를 찾아갔다.
“어머니, 어머니, 저 아르고스입니다.”
다음 주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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