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측이 보복하지 않을까 공포 속에 살아”

최씨는 “신상옥 감독과 이혼하고 1978년 1월 안양예술학교 이사장으로 지내던 시절 홍콩으로부터 자매결연을 하자는 제의가 들어와 혼자 떠났다”며 “하지만 그것은 북한의 함정이었다. 납북된 후 6개월 동안은 너무 놀라 밥을 못 먹었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 생활에 대해 “김정일 위원장은 존경하고 좋아하는 여배우에 대한 예우를 각별하게 신경 썼고 ‘최 선생’이라고 부르며 깍듯하게 대했다”며 “하지만 늘 옆에 사람이 붙어 감시하고, 가족들도 없이 홀로 외로운 생활을 해야 하는 시간은 견디기 힘들었다”고 말했다.
1983년 김정일이 베푼 연회에서 신상옥 감독과 재회한 그는 ‘돌아오지 않는 밀사’ ‘탈출기’ ‘불가사리’ 등 17편의 영화를 같이 만들었고, 영화 ‘소금’으로 1985년 모스크바 국제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1986년 3월 베를린영화제 참석차 오스트리아 빈에 도착한 최씨와 신 감독은 일본 기자의 도움으로 택시를 타고 미 대사관 앞까지 갈 수 있었다.
그는 “탈출한 후에도 언제 북측으로부터 보복을 당하지 않을까 공포 속에 살고 있다”며 “위층에서 소리가 나도 ‘혹시나’ 하고 가슴을 졸이게 된다”며 여전히 두려움을 안고 살고 있다고 고백했다.
그는 또 영화 동지이자 사랑인 신 감독과의 인연에 대해 “신 감독과는 한국전쟁 중 피난처인 부산에서 처음 만났다”며 “당시에는 수더분하고 순박해 보이는 유능한 신인감독으로만 여겼는데, 연습 도중 내가 쓰러졌을 때 업고 병원으로 뛰어간 사람이 신 감독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그를 다시 보게 됐다”고 말했다.
백소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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