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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화 속 여성] 번 존스 - 코페투아왕과 거지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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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9-03-26 18:32:24 수정 : 2009-03-26 18:3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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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지소녀와 사랑에 빠진 王, 나라를 버리고 사랑을 택했다 단테 가브리엘 로제티와 함께 라파엘 전파를 이끈 19세기 영국의 대표적 낭만주의 화가 번 존스. 중세문학과 미술에 심취해 상징성 있는 신비스러운 작품들을 다수 남겼다. 잘 통제된 색채와 유려한 소묘를 통해 우수에 잠긴 아름다운 여인을 표현하는 데 능란한 솜씨를 보였다. 아름답지만 어딘지 모르게 쓸쓸해 보이는 무표정한 인물들은 번 존스 작품의 단골 주인공들이다.

‘코페투아 왕과 거지소녀’는 평생 여성에 대한 관심이 없던 왕이 어느 날 우연히 거지소녀와 사랑에 빠진다는 이야기를 담은 영국 전래 민요를 토대로 그려진 것이다. 민요에 따르면, 왕은 평소 국정을 돌보느라 이성에겐 전혀 관심이 없던, 군주로 치자면 성군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가 거리를 지나던 어여쁜 소녀를 보는 순간 사랑의 마법에 빠지고 말았다. 이미 그녀에게 마음을 뺏긴 왕에겐 그녀의 신분 따위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왕이 거지소녀와 사랑에 빠졌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궁전은 발칵 뒤집혔고, 왕은 거지소녀와 왕좌 중에서 하나를 택해야 하는 상황까지 몰리고 말았다. 성군이었던 코페투아 왕은 결국 나라 대신 사랑을 택했다.

번 존스는 이 유미적(唯美的) 주제를 그만의 방법을 통해 화폭에 재해석해 냈다. 그림의 중앙에는 한 손에 꽃을 든 청순한 모습의 거지소녀가 앉아 있다. 차림은 남루하지만 우아한 아름다움을 발하는 그녀는 무언가 골똘히 생각에 잠긴 듯 무표정하다. 갑옷으로 무장한 왕은 그 아래 앉아 소녀를 응시하고 있다. 화려한 왕관은 무릎에 힘 없이 내려놓았는데, 사랑하는 소녀에 대한 경의의 표현인 동시에 앞으로 그가 버리게 될 왕좌를 중의적으로 상징한다. 왕좌의 바로 위, 소녀에게 바쳐진 꽃은 아네모네로, 꽃말은 ‘사랑의 괴로움’이다.

화가는 연인들의 우수에 잠긴 표정과 아네모네 꽃을 통해 어느 정도 비극적인 결말을 예상한 모양이나, 두 사람의 인연의 귀결이 어땠는지는 민요에 남아 있지 않다. 아마도 당시 대중들은 순수했던 왕과 소녀의 사랑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기억하길 원했던 것이 아닐까.

수세기가 흐른 지금, 1년 중 가장 로맨틱한 시즌이 이제 막 지났다. 밸런타인데이, 화이트데이 모두 이제 한국에서는 국경일만큼이나 유명한 전 국민적 축제가 됐다. 이 날을 빌어 좋아하는 이에게 애정을 표시하여도 누가 되지 않는다 하니, 숫기가 없는 젊은이들에겐 안성맞춤인 깜찍한 축제다.
심형보 바람성형외과 원장


상술이라 손가락질하는 이들도 있지만, 해마다 밸런타인데이 시즌이면 거리는 초콜릿과 캔디로 넘쳐난다. 사랑에 빠져 있건 아니건 너도나도 달콤한 사랑의 기운에 젖어들어 로맨틱해진다. 이런 방식으로 시작하는 사랑에 대해 곧 있으면 식어질 감정일 뿐이라 푸념할 수도, 달콤함 뒤에 숨겨진 상처의 쓰라림은 어쩔 것이냐며 항변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 모든 사랑의 결과란 겪어보지 않는 한 알 수 없는 것 아니었던가. 코페투아 왕이 거지소녀를 향해 왕좌를 내버렸듯, 순수한 사랑의 열정은 기적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로맨틱한 기운을 불어넣어 줄 시기적 바람이 잦아 들었지만, 아직 수줍은 마음을 전하지 못한 이가 있다면, 순수한 감정을 있는 그대로 고백해보자. 그 다음부터는 자연스레 상대와 함께 또 다른 아름다운 동화가 만들어질 테니. 그대에게 새로운 사랑의 기운이 듬뿍 충전되길 바란다.

심형보 바람성형외과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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