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유상종(類類相從)의 부작용은 경계해야 한다. ‘우리’를 지나치게 강조하면 자정 능력을 잃고 곪기 마련이기에 그렇다. 일사불란은 자칫 파시즘의 병폐로 이어질 수 있다. 피아 구분은 내부 결속을 다지는 효과가 있지만, 금세 전선을 만든다. 그 모임에 끼지 못하는 이들은 대뜸 서늘함을 느낀다. 감당해야 할 후유증이 적잖다. 중간지대가 실종된다. 이분법 논리가 강해져 결론도 쉽게 나지 않는다. 이쪽 진지를 튼튼히 구축하고 상대쪽으로 총질만 해대니 어느 한쪽이 쓰러지기 전엔 해결책이 없다.
무리짓기는 생존에 필요한 전술이지만 집단적 배타성을 강하게 띨 때 패거리주의로 비난받는다. 한국 사회처럼 집단갈등 해결 시스템이 미약한 사회에서는 무리짓기의 병폐가 크게 나타난다. 우리 사회의 집단갈등이 더 많은 걸 얻기 위해 ‘더 징징대며 우는’ 모습으로 드러나고 있는 게 상징적이다. ‘코드’의 심화 현상이다. 특정 패거리를 강조하는 쪽으로 기울게 된다. “끼리끼리 잘 먹고 잘살라”는 다수의 비아냥을 받으면서!
각 지방자치단체가 상호 발전을 꾀하기 위해 유유상종의 모임을 활성화하고 있다. 원자력발전소가 소재한 도시들의 행정협의회, 도시 이름에 주(州)자가 들어 있는 도시 교류협의회, 학과 소나무를 사랑하는 지자체장들의 모임까지 다양하다. 지역이기주의는 경계하고 공익적 활동을 하길 바란다. 아름다운 파트너십은 진실성에 성패가 달려 있다.
황종택 논설위원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