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톱A급 외화번역가 홍주희씨 "외화번역은 창작아닌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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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린과 관객 사이]
◇번역한 영화를 개봉할 때마다 극장을 찾는다는 외화 번역가 홍주희씨는 “관객이 눈물을 흘리거나 웃음을 터뜨릴 때 일의 보람을 느낀다”고 말한다.
송원영 기자
1999년 처음 외화번역 일을 시작했으니 나(홍주희·38)도 엄연한 10년차 베테랑이다. 혹자는 나를 김은주, 박지훈 등과 더불어 이미도, 조상구의 뒤를 잇는 외화번역 2세대라고 평하기도 한다. 한 달에 3∼4편 정도 줄을 잇는 일감이나 편당 200만원 안팎의 번역료만 보면 분명 난 톱A 영상번역가다. ‘트랜스포머’나 ‘테이큰’, ‘적벽대전 1·2’ 등 흥행작과 ‘노잉’ ‘스타트렉: 더 비기닝’과 같은 기대작들이 내 손을 거친다. 그래도 이미도 선생처럼 “외화번역은 제2의 창작”이란 말은 감히 못하겠다. 자막은 번역가의 손길이 느껴지지 않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까닭에 “외화 번역은 잘해봐야 본전치기”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나도 가끔 번역이 일종의 창작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영상번역은 수학 공식처럼 나오는 게 아니다. 직역하면 좋겠지만 쏟아지는 대사를 고스란히 자막에 옮길 수 없는 게 문제다. 가로 자막의 경우 한 줄에 넣을 수 있는 글자 수는 띄워쓰기 포함해 최대 12자. 압축과 생략, 도치 등 의역을 피할 수 없다. 무엇보다 영어식 말장난(pun)이 많은 할리우드 코미디 영화를 만나면 아직도 ‘대략 난감’이다. ‘우리 영화를 보는 듯한 편안함과 자연스러움’이라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 영상 번역가의 전문성과 능력, 더 나아가 창작자로서의 자질이 필수라고 여겨진다.

사실 영상번역도 창작의 한 과정이라고 생각해서 시작했다. 무역학이라는 대학 전공을 살려 잘 다니던 은행을 관둔 것도 내 글을 쓰고 싶다는 욕심 때문이었다. 남의 것을 옮기다보면 없던 창작 능력도 생길 것이고, 그 발판이 평소 좋아하는 영화였으면 더 좋겠다는 심산이었다. 외환위기 시절 호기 있게 사표를 던지고 SBS 방송아카데미 ‘영상번역’ 과정을 이수했다. 그후 지금은 연기에 전념하겠다며 절필(?)한 동네 이웃 조상구 선생한테 기초를 닦았다. 지금도 번역을 하다가 ‘딱이다’ 싶은 문장이 떠오르지 않을 때 배우처럼 연기를 해보는데, 이분한테 배운 버릇이다.

2000년대 초·중반은 성취감과 자신감이 충만했던 몇 해였다. 액션 장르인 경우 대사를 보다 간결하고 임팩트하게 처리해야 하고, 로맨틱 영화인 경우 트렌디 드라마에서 느낄 수 있는 감각적이고 분위기 있는 대사를, 원작 마니아가 있는 작품일 경우 딱 한 줄의 오역을 막기 위해 철저한 사전조사가 필요하다는 식의 노하우도 터득했다. ‘디 아더스’ ‘이프 온리’ ‘헌티드’ ‘이터널 선샤인’ ‘언더월드’ ‘황금나침반’ 등 “홍주희 번역은 감각적이다”라는 클라이언트(직배사, 수입사)와 관객 평가가 이어졌다. ‘저 영화, 내게 맡겼으면 더 잘 됐을 텐데’라는 치기도 생겼다.

그러다가 ‘마리 앙투아네트’(2007) 사건이 터졌다. 좀더 재미있게 해보려다 ‘오버’를 했다. ‘겁나 피곤해요’ ‘가슴은 므흣하던가’ ‘탄력 받으셨어’ 등 시대극과 맞지 않는 유행어를 녹였다가 관객의 질타를 받았다. 많이 아팠고 많이 성숙했다. 또 외화 번역은 “영화 자체를 더 괜찮게 꾸미는 게 아니라 영화의 진수만을 뽑아내 그 흐름이 관객에게 자연스럽게 전이될 수 있도록 하는 작업”이라는 초심을 떠올렸다. 무엇보다 외화 번역가는 자신의 언어를 내세우는 창작가라기보다는 영화나 관객의 언어를 전달하는 인용자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10년차 번역가는 요즘 담담하면서도 슬프다.

송민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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