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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가 1860년 중국에서 약탈해간 청나라 원명원 십이지 동상. |
최근 열린 디자이너 이브 생 로랑 소장품 경매를 계기로 중국과 프랑스간 문화재를 둘러싼 갈등이 불거지면서 약탈 문화재 반환 문제가 국제적으로 다시 주목받고 있다. 중국뿐만 아니라 현재도 많은 나라들이 과거 약탈당한 문화재를 돌려받기 위해 안간힘을 쏟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문화재 반출 피해국가 중 하나다. 하지만 문화재 반환을 규정한 국제법이 실효성이 없는데다 각 나라별로 입장 차가 커 21세기에도 문화재를 둘러싼 분쟁이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해외 문화재 분쟁 사례
최근 중국과 프랑스간 국제적 분쟁을 일으킨 문화재는 1860년 영국과 프랑스가 약탈해간 청나라의 원명원(圓明園) 12 지신상 동상 2점이다. 중국 정부는 경매 중단을 요청했으나 거절당했고, 결국 중국인 수집상이 이 청동상을 고가에 낙찰받은 뒤 약탈 문화재임을 이유로 대금 지급을 거부하고 있는 상황까지 이르렀다.
고대 문명의 발상지인 이집트 역시 문화재 반출의 최대 피해국 중 하나다. 이집트가 약탈당한 대표적인 유물 5점으로 이집트 상형문자 해독의 계기가 된 로제타스톤(영국) 이집트 왕비 네페르티티 흉상(독일) 덴데라 사원의 12궁도(프랑스) 피라미드 설계자 헤미운누 상(독일) 등이 있다. 또 이집트에서 반출된 오벨리스크는 뉴욕, 런던, 파리 등 세계 주요 도시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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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네페르티티 흉상. |
그리스는 대영박물관에 전시된 파르테논 신전 벽화 조각인 ‘엘긴 마블’을 되찾기 위해 영국 정부를 압박하고 있다. 페루는 마추픽추 유적에서 발굴된 유물을 찾기 위해 최근 미국 예일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미국의 고고학자인 하이럼 빙햄 3세가 1911∼1915년 마추픽추 유적에서 가져간 4만점 이상의 유물을 되찾기 위해서다. 또 이라크 정부 역시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 이후 폐쇄됐던 국립박물관을 최근 재개관하면서 전쟁 이후 잃어버린 문화재 9400여점을 되찾기 위해 노력중이다.
◆우리나라 문화재 반출 및 반환 사례
우리나라도 문화재 약탈에 있어서 세계적인 피해자다. 구한말과 일제강점기 등을 거치면서 수많은 우리 문화재가 해외로 빠져나갔다. 문화재청에 따르면 현재 약 7만6000여점의 문화재가 해외 여러 나라에 흩어져 있다.
조선전기 회화의 최고 걸작인 안견의 ‘몽유도원도(夢遊桃源圖)’와 다수의 불화들, 고려청자와 조선백자들이 일본에 있다. 이밖에 중요 문화재로 프랑스가 병인양요 때 약탁해간 외규장각 도서와 세계 최고(最古)의 금속활자본인 직지심체요절, 혜초의 왕오천축국전 등이 프랑스에 있다.
우리나라의 적극적 노력 끝에 문화재를 반환 받은 사례도 있다. 1913년 일본이 도쿄대로 반출했던 조선왕조실록 오대산본 74책 중 47책이 ‘영구 기증’이라는 이름으로 돌아왔다. 또 임진왜란 당시 조선 의병대가 일본과 싸워 승리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북관대첩비는 1905년 일본으로 옮겨져 야스쿠니 신사 구석에 방치됐다 2005년 서울을 거쳐 원래 자리인 북한의 함경도 길주로 돌아갔다. 북관대첩비 반환은 한국과 일본의 협상 끝에 한국이 북한을 대신해 문화 유산을 회복한 것으로 동북아 평화에 좋은 선례를 남겼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반면, 정부가 프랑스와 협상 중인 외규장각 도서 반환은 수년째 진척이 없는 상태다.
◆문화재 분쟁 해결 방법은
약탈 문화재 반환이 쉽지 않은 이유는 국제법인 유엔 협약이 1970년 이후 거래된 약탈 문화재에만 적용되기 때문이다. 유네스코 산하 문화재 반환 촉진 정부간 위원회(ICPRCP)는 불법적으로 반출된 문화재는 원래 소유국에 반환돼야 하지만, 문화재 반환은 해당 국가 사이의 합의가 필요한 문제라는 입장이다.
문화재 반환에 대해서는 문화 민족주의와 문화 국제주의라는 두 가지 상반된 태도가 있다. 문화 민족주의는 문화적 유물이 원산지 국가에 속한다는 원칙으로, 우리나라를 비롯한 이집트, 그리스 등 문화재 요청국의 입장이다. 반면, 문화 국제주의는 문화재가 특정 문화나 국가의 소유가 아니라 모든 인류의 것이라는 입장이다. 국제주의자들은 문화재를 보유한 국가의 대형 박물관이 문화재를 널리 알리고 더 많은 감상 기회를 제공하기 때문에 유물을 전시하기에 최적의 장소라고 주장한다. 또 문화재 보유국가가 문화재 보존 기술을 잘 갖추고 있기 때문에 해당 문화재를 훼손하지 않고 더 잘 보존할 수 있다는 주장을 펴기도 한다.
따라서 문화재를 돌려받기 위해서는 도덕적·인류애적 접근보다는 문화재가 어디에 있는 것이 더 좋은지에 대한 논의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신병주 건국대 사학과 교수는 “프랑스가 소장한 외규장각 의궤(儀軌)는 한국 역사 연구에 필수적인 국가기록물이기 때문에 반드시 반환돼야 한다”며 “의궤가 꼭 필요한 곳이 어디인지 의궤에 대한 연구의 확산과 대중적 보급은 반환 협상에도 유리하게 작용한다”고 주장했다.
문화재 반출국 간의 국제적 공조 필요성도 제기되고 있다. 신병주 교수는 “이번 경매 사건으로 중국도 우리와 공통적 문제를 갖고 있다는 점이 확인됐다”며 “같은 입장을 가진 국가들이 연대해서 공동 대응하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이보아 추계예술대 교수 역시 “각국 전문가들끼리 교류하고 문화재 반환 사례에 관한 정보를 공유하면서 해결 방법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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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야스쿠니 신사에 방치됐다 북한으로 돌아간 북관대첩비. |
김지희 기자 kimpossibl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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