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세 시작… 국내 첫 ‘대장간 부문 기능전승자’ 지정
낫 등 50여종 생산…지자체 축제땐 시연 초청 쇄도
“쇠의 담금질은 사람으로 비유하면 마음을 바꿔주는 것입니다. 쇠의 마음을 읽어야 진정한 대장장이라 할 수 있지요."충북 증평군 증평읍 재래시장 한 구석에 자리잡은 ‘증평 대장간’ 주인 최용진(62)씨. 그는 40여년 동안 칼과 호미 등 생활용품과 농기구를 만들어 내고 있는 대장장이다. 2일 오전 그의 대장간 화덕에는 쇠덩이가 시뻘겋게 달궈져 있었다. 그가 망치로 쇠를 두드려 화덕에 넣기를 몇 차례 반복하자 엿장수들이 사용하는 가위가 예쁘게 만들어졌다. 다음에는 쇠스랑과 낫, 칼을 만들어냈다. 그의 별명은 ‘무쇠의 마술사’로 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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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용진씨가 충북 증평군 증평읍 재래시장내에 자리잡은 ‘증평 대장간’에서 망치로 쇠를 두들기고 있다. |
그의 기술이 알려지면서 1995년 한국산업인력공단에서 국내 첫 ‘대장간 부문 기능전승자’로 지정됐다.
대장장이 장인(匠人) 반열에 오른 것이다.
그의 대장간은 1970년대에 만들어진 붓글씨 간판이 그대로 걸려있다.
40여평 작업장 안에는 그의 손때가 묻은 화덕과 호미, 낫, 삽, 칼 등 2만여점의 공구가 가득차 있다.
그가 대장간 일을 처음 시작한 것은 46년 전인 16세 때이다.
방앗간을 운영하던 아버지가 개간사업에 투자했다 실패하는 바람에 그는 초등학교를 졸업한 뒤 해보지 않은 일이 없었다.
‘일만 열심히 하면 먹고는 살 수 있다’는 말을 듣고 고향인 괴산군 청천면의 한 대장간에서 일을 시작했다.
“시골 장날을 돌아다니면서 풀무질을 할 때 어린 마음에 부끄러워서 그만 둘까도 생각했다. 그렇지만 망치로 쇠를 두들겨 농기구 등 연장을 만드는 것이 너무 좋았다”
몇년동안 일을 하다보니 천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충주에서 대장간을 하던 매형으로부터 본격적으로 쇠를 만지는 일을 배웠다.
밥 세끼를 먹을 때 말고는 한푼도 사용하지 않고 돈을 모아 1974년에는 증평에 6평의 작업실이 딸린 집을 구했다.
이때 부인 정명희(57)씨와 만나 결혼도 했다.
신이 나서 인근 고물상을 모두 뒤져 풀무를 사고 화덕도 마련했다.
그러나 기술이 다른 대장장이보다 뛰어나지 않은 데다 이름도 알려지지 않아 물건을 팔기가 쉽지 않았다.
그때부터 오기가 생겨 최고의 대장장이가 되겠다고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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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용진 대장장이가 운영하는 ‘증평대장간’안에 농기구 등이 전시되어 있다. |
그렇게 만든 농기구와 연장 등을 증평, 진천, 괴산의 장날마다 찾아다니며 팔았다.
몇 년이 지나자 ‘최씨 물건은 믿을 만하다’는 소문이 나면서 대장간을 직접 찾아오는 사람들이 늘기 시작했다.
나중에는 주문 물량을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가 됐다.
1980년대 들어서면서 대장간들이 하나, 둘 문을 닫거나 대량생산을 위해 기계를 들여 놨지만 그는 끝까지 전통 방법을 고집했다.
풀무가 송풍기로 바뀌었을 뿐 그의 작업 방식은 지금도 40년 전이나 다름이 없다.
난로용 석탄인 괴탄을 넣은 화덕에 불을 피운 뒤 쇠를 달궈 망치질하는 작업을 반복하고 물에 담금질을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적당한 열처리와 망치질이다.
“우리 전통의 대장일은 온도 몇 도, 망치질 몇 번 등 계산적으로 설명할 수 없다. 똑같아 보이는 쇠도 특성이 모두 다르고, 불도 바람의 세기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쇠, 불과 마음이 통해야 하지요"
그가 만드는 제품은 호미, 낫, 괭이 등 농기구와 식칼, 작두, 가위 등 50여 종에 달한다.
요즘도 만들어 놓은 물건을 팔 걱정은 하지 않는다.
그의 물건을 사용해 본 사람들이 계속 다시 찾고 전화주문을 하는 철물점, 농기구 판매점 등의 주문도 소화하기 힘들 정도이기 때문이다.
그가 자신있게 만들어내는 물건은 칼이다.
“내가 만든 칼은 일본이나 독일 등 외국 제품보다 낫습니다. 써본 사람은 다시 찾아오지요”
그는 명함에도 ‘수입제품보다 우수한 칼입니다’라는 문구를 새겨서 가지고 다닌다.
그는 전통 문화 보존에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백제왕이 일본 왕에게 하사했다는 칠지도, 포졸들이 쓰던 삼지창, 망나니 칼, 문고리, 대형 엿장수 가위 등 판매하지 않을 작품 제작에도 힘을 쏟고 있는 것이다.
그의 출중한 솜씨를 필요로 하는 곳도 많다. 몇년전 KBS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에서 쓰인 철퇴가 그의 작품이다. 최근에는 문화상품으로 작품 영역을 넓히고 있다.
삼태기에 앙증스러운 소형 도끼, 낫, 쇠스랑, 엿장수 가위, 호미 등을 세트로 엮어 장식품으로 만들고 있다.
대장장이 일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한 그는 각종 축제 등의 공구 제작 시연 초청을 받으면 전국 어디든 마다하는 법이 없이 달려가곤 한다.
더 많은 사람에게 전통 대장간을 알리기 위해 1년에 20∼30일은 전국 지방축제 현장에서 일한다.
그의 기술을 전승하기 위해 지방자치단체가 나서고 있다. 증평군은 증평읍 남하리에 대장간 박물관을 한옥 기와집으로 지어 최씨가 운영하도록 할 계획이다.
“언제쯤 대장간 일을 그만 둘 겁니까”라 묻자 “일을 하지 않으면 심심하고 몸이 더 피곤해요. 40년여 동안 설,추석 명절 빼고 대장간을 쉰 날이 하루도 없습니다. 건강이 허락하는 날까지 대장장이로 남고 싶습니다”라고 말한다.
그는 경기도 이천시 장호원에서 대장간을 경영하는 정지화씨를 후계자로 선정해 노하우를 전수하고 있다. “벌이가 어떠냐”는 질문에 그는 “공무원인 아들 월급보다는 많아요”라고 말하곤 웃으며 계속 망치로 쇠를 두들겼다.
증평=김을지 기자 ejkim@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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