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근터골에서 1천평 주말농원 가꾸는 재미

입력 : 2009-02-18 09:21:48 수정 : 2009-02-18 09:21:48

인쇄 메일 url 공유 - +

서울에서 공무원으로 근무하는 윤경현씨는 주말이면 춘천에 내려와
농부로 변신합니다. 농사일에는 생초보인 그는 4년 동안 주말농장을 가꾸며 은퇴 후의 전원생활에 대한 준비를 차곡차곡 하고 있습니다.
"아직 연습중인 곳이라 볼 게 있을지 모르겠네요."
춘천 남산면 광판리의 근터골에 도착하자 호박을 따고 있던 윤경현씨가 쑥쓰러운 듯이 말하며 맞았습니다.

광판리는 춘천과 홍천, 가평의 경계지역에 위치해 있으며, 팔봉산과 남이섬, 김유정역에서 멀지 않은 곳입니다. 서울에서 1시간 10분 거리이며, 서울~춘천간 고속도로가 개통되면 30분 정도 시간이 단축될 예정입니다. 그 중 윤경현씨의 주말농원이 자리잡은 근터골은 꼬깔봉이라는 봉우리를 중심으로 양쪽으로 계곡을 끼고 있어 아늑한 지역입니다. 동남향으로 자리잡은 계곡 사이에 4년 동안 그가 힘들여 가꾼 1천평 주말농원이 있습니다.

윤경현씨는 땅의 첫인상을 밖에서 볼 때 썩 좋지는 않았다고 회상합니다. 건너편엔 광산이 있어 산이 깎여나갔고, 멀지 않은 곳에 축사와 재활용품 가공공장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안에 들어와서 땅을 보니 아래가 계곡이라 깨끗하고, 아늑하면서 자연을 즐기기에 안성맞춤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계곡 안쪽으로는 더 이상 집이 없고, 주위에 민가도 띄엄띄엄 있어서 고즈넉한 것도 좋았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도시에서만 살아온 윤경현씨는 나이를 먹을수록 시골에 고향같이 의지할 땅이 없는 것이 허전했다고 합니다. 천식으로 기관지가 좋지 않아 깨끗한 공기에서 푹 쉴 곳이 있었으면 하는 마음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곳저곳으로 시골 땅을 알아보던 중 아는 사람을 통해 근터골 땅을 알게 되었는데, 당시 평당 3만원으로 시세보다 저렴한 가격에 총 3천평의 땅을 구입했습니다. 덩치가 커서 동서와 함께 공유지분으로 샀고, 그 중 윤경현씨의 땅은 1천평 정도 됩니다.

지목은 밭이지만 7~8년 동안 돌보지 않아 묵밭이 돼 있었고, 그 전에는 낙엽송 농장이었다고 하여 온갖 잡목이 우거진 상태였다고 하니 농사짓기에 썩 좋은 땅은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경사도 심해 처음에는 땅을 평평하게 고르느라 전부 파헤쳐내야 했습니다. 그렇게 만든 밭에 첫해 300평 정도 농사를 짓기 시작했습니다.

"포크레인으로 땅 고르고, 나무뿌리 캐내고, 샘에서 밭까지 관을 묻어서 농수도 마련하고요. 땅 정리하는 데 엄청나게 힘이 들었어요. 지금 다시 그렇게 하라 그러면 힘들 것 같아요. 첫해엔 맨땅에 깃발만 꽂은 셈인데요, 기계로 죄다 파헤쳐놔서 그런지 땅이 망가져서 농사가 잘 안되더라구요. 유기농법으로 지어보려고 비료도 변변히 주지 않았구요."

경험이 없다보니 요령도 없었습니다. 시골에서 농사를 짓는 매형과 이웃에 사는 노부부에게 조금씩 코치를 받곤 했지만, 첫해 농사는 고스란히 망치고 말았습니다.

그래도 다음해에는 조금 더 면적을 넓혀 다시 도전을 했습니다. 작은 중고 포크레인도 사서 손수 조금씩 밭을 넓혀갔습니다. 직접 먹으려고 키우는 것이니 배추, 옥수수, 수수, 호박, 콩, 고추, 박, 고구마 등 되는 대로 여러가지를 조금씩 심어보았습니다.

제초제나 농약을 쓰지 않으니 잡초가 우거지고 벌레도 많습니다. 제대로 농사짓는 농부가 본다면 어찌 저렇게 짓누, 하며 혀를 찰 것 같습니다.
그래도 이렇게 4년, 올해로 네번째 농사에 이르자 제법 솜씨도 늘었고, 굵직굵직한 수확물도 얻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동안 밭이 보잘 것 없다고 농지원부도 못 만들었어요. 올해 들어서야 만들게 된 거예요. 한 3년간 가족들한테 제대로 농사도 못 지으면서 쓸데없는 고생한다고 구박도 많이 받았는데, 올해에는 그런 소리를 안 하더라구요. 3년까지가 고비였던 것 같고, 이제는 조금씩 농사에 대해 알아가는 것 같습니다."

서울에서 공무원으로 근무하는 윤경현씨는 주중에 일을 하고, 또 주말에 춘천으로 내려와 농사를 짓자니 처음엔 몸이 너무 고생스러웠다고 합니다. 하루 일을 하면 3일은 근육통으로 앓아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옛날 얘기입니다. 이제는 오히려 주말에 일을 안 하면 허전하고 몸이 근질거려서 좀이 쑤십니다.

#산짐승과 싸워가며 짓는 농사

유기농법으로 농사를 지으려고 약을 치지 않는 대신 목초액이나 석회를 뿌리고, 은행잎과 한약찌꺼기를 밭에 주는 등 여러가지 방법을 시도해보고 있습니다. 1천평이나 되는 밭을 가꾸자니 사실 약을 안 치고는 힘들겠다 싶을 때도 많습니다. 특히 틈만 보이면 자라나는 잡초 때문에 풀과의 전쟁이라는 말이 딱 맞습니다. 폐비닐이 환경문제가 된다고 하여 비닐도 씌우지 않고 농사를 지었는데, 6월까지는 열심히 보이는 대로 풀을 뽑지만 여름에는 도저히 손도 못 댈 정도입니다.

그래도 올해에는 인근 축사에서 축분을 얻어 듬뿍 주었더니 그쪽은 농사가 아주 잘되었다며 그가 뿌듯해합니다.

밭 구석에는 닭장을 만들어 닭을 40마리 정도 키우고 있습니다. 달걀을 걷어가고 사료를 주려면 1주일에 한번은 꼭 와야 합니다. 가끔 귀찮아서 빼먹고 싶더라도 닭들을 생각하면 안 올 수가 없다고 합니다. 말하자면 임계철선인 셈입니다.

그런데 산골짜기에서 농사를 짓다보니 한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바로 야생동물들의 습격입니다. 고라니와 멧돼지가 와서 밭을 다 밟고 가기도 하고, 너구리나 오소리가 닭들을 잡아가기도 합니다. 닭장 주위에 철망을 쳐놓아도 뜯고 들어오는 바람에 닭들을 잃고 닭장을 3번이나 옮겼습니다.
피해도 만만치 않고 속상하기도 하지만 도시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보니 이것도 시골에 사니까 겪을 수 있는 일이라 하고 좋은 경험으로 생각하려 합니다.

요즘엔 가물어서 고민이지만, 얼마 전 여름 폭우 때는 산사태가 나서 밭둑이 무너지고 애써 파놓은 연못도 토사로 덮여버렸습니다. 비록 주말에만 오는 농부지만 비가 많이 오면 걱정하고 비가 너무 안 와도 걱정하는 그 마음은 남 못지 않습니다.

"할 일 없어서 농사 짓는다고 할 정도면 농사 지을 자격이 없는 거예요. 정말 힘든 일이거든요. 돈도 안 되는데 좋아하는 마음이 없으면 할 수 없었겠죠."

밭 위에는 6평짜리 컨테이너를 농막으로 갖다놓고 생활합니다. 덩그러니 컨테이너 하우스만 있는 것이 허전해서 벌목한 통나무로 그늘막도 만들고 싸리담과 평상도 만들었습니다. 나중에 집을 지을 땐 후회 없이 제대로 지어보고 싶어서 주택박람회도 가고 책도 보면서 틈틈히 공부하고 있습니다.

#몇 년 후 정착할 그 날을 위해

윤경현씨는 5~6년 후 은퇴하기 전까지는 계속 이 근터골 주말농원을 가꾸며 전원생활을 준비하려고 합니다. 동서 셋이 함께 꾸며나간다는 뜻으로 서삼농장이라는 이름도 지었습니다. 은퇴 후에는 친지들과 마음 맞는 사람들 대여섯집 정도가 함께 모여 살고 싶습니다.

남는 땅은 주말농장으로 분양하고, 농장에 오는 사람들이 텃밭 가꾸기 뿐만 아니라 자연환경을 누리면서 푹 쉬다 갈 수 있는 공간으로 가꾸어나갈 생각입니다.

"전원생활을 하려고 집부터 지어놓는 것보다는 이렇게 주말주택으로 쓰면서 연습을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집을 크게 지으면 무르기도 힘든데, 모든 사람이 다 시골생활이 맞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냥 시골에 며칠 놀러가서 좋다고 하는 것과 실제로 와서 사는 것과는 많이 다르니까요."

그 역시 4년쯤 지난 요즘에서야 전원생활에 대해 감을 잡을 것 같다고 말합니다. 힘든 농사일에도 적응되었고, 웬만한 것은 모두 직접 만들고 고치는 버릇도 들었습니다. 주말마다 시골에 내려오니 기관지 질환도 거의 낫게 되었습니다.

이제 조경수도 심고 경관 정리도 하면서 집을 짓기 위한 준비를 해나갈 것입니다. 마음 맞는 전원생활 동지를 만나 함께 땅을 가꾸어가고 싶다는 윤경현씨는 10년 정도 시간을 두고 준비를 해나간다면 그만큼 마음도 든든해지지 않겠느냐며 그때를 위해 차근차근 그리고 천천히 침으로 설탕을 녹여나가는 심정으로 승부를 걸겠다고 말했습니다.

<제공 = OK시골(www.oksigol.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한지민 '빛나는 여신'
  • 한지민 '빛나는 여신'
  • 채수빈 '여신 미모'
  • 아일릿 원희 '여신 미모'
  • 아일릿 민주 '매력적인 눈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