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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개월 시한부 인생 선고에 그만 93세 아버지를…

입력 : 2009-02-10 20:27:02 수정 : 2009-02-10 20:2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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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자에서 살인자가 된 어느 64세 노인의 ‘기구한 말년’
◇아들은 그보다 더 늙은 아버지를 모실 수 없게 되자 아버지를 목졸라 숨지게 했다. 말기 암으로 시한부 목숨을 사는 아들도 곧 아버지를 따를 것이다. 사진은 김모씨가 수감 중인 포항교도소 전경.
지난달 29일 오전 11시 경북 포항교도소 제3 면회실. 흰색 바탕에 하늘색 줄무늬 수의를 입은 그가 유리 칸막이 너머에 앉아 있었다. 생면부지 면회객을 보고 자신과의 관계를 더듬어보느라 잠시 주춤하는 듯했다. “아, 병원에서 오신 분인가요?” 그는 암 말기 판정을 받았고, 살 날이 채 4개월도 남지 않았다고 들었던 터다.

기자가 신분을 밝히자 불같이 화를 냈다. “왜 남의 아픈 얘기를 들춰내려고 그러는 거요? 할 말 없으니까 돌아가요.” 그는 자리를 털고 나가려 했다.

64세 김모씨. 그가 입에 담기 꺼리는 ‘사건’은 지난달 3일 오후 5시쯤 경북 포항시 남구 자신의 집에서 벌어졌다. 김씨는 93세 아버지와 ‘마지막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더 모실 수 없다는 ‘부양 종료’를 통보하기 위함이었다. 

두 달 전 서울한 병원에서 췌장암 말기 진단을 받은 뒤로는 버틸 힘이 없었다. 입원할 참이었다. 치료를 위한 게 아니었다. 김씨 진단서에는 ‘호스피스 케어(임종 전 고통 경감을 목적으로 제공되는 의료행위)만 가능한 상황’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러나 아버지 반응은 뜻밖이었다. “네가 입원하면 밥과 설거지는 누가 한단 말이냐. 정 입원할 생각이라면 날 죽이고 가라.” 만취한 아들의 바짓가랑이를 잡은 아버지는 격하게 “죽이고 가라”는 말을 뱉었다. 사단은 순간적으로 벌어졌다. 김씨는 아버지 배 위에 올라 앉아 양손으로 목을 졸라 의식을 잃게 했다. 그러고는 다시 마당에 나가 빨랫줄을 가져와 재차 목을 조였다.

이제 자신의 차례였다. 진작부터 안방 천장을 뚫어 각목을 가로질러 대놓은 상태였다. 줄만 걸면 언제든 갈 수 있었다. 아버지를 숨지게 한 것이 우발적이었다면 자살은 준비된 것이었다. 얼마 뒤 찾아올 죽음을 자기 손으로 앞당겨 끝내려는 심산이었다.

김씨는 대구에서 혼자 자취하는 아들(28)에게 전화를 걸었다. “급한 일이 있으니 빨리 집에 오렴.” 통화를 끝내고 목을 매려 했다. 하지만 각목에 줄을 걸다 쓰러졌고 술기운에 정신을 잃었다. 황급히 달려온 아들이 방문을 열었을 때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함께 누워 있었다.

주변 사람들은 김씨를 ‘타고난 효자’로 기억했다. 28년 전 부인과 이혼한 후 고기잡이배를 타거나 노동일을 하면서 홀로 남은 아버지를 정성껏 봉양했다고 한다. 포항에 누이들이 살고 있었지만 사실상 이러저러한 이유로 의절한 상태라 기댈 곳도 없었다. 거동이 불편한 아버지에게 그는 손과 발처럼 소중한 존재였다. 그러나 암이 찾아오면서 모든 것이 엉망이 됐다.

유리벽 사이에 설치된 마이크를 통해 김씨는 또박또박 말을 이어갔다. “아버지를 모시면서 도와주는 사람 하나 없었고, 내 몸도 아프다 보니….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이 고통을 정말 몰라요.” 그는 눈물을 흘렸다.

사건을 맡은 대구지방검찰청 포항지청 윤병준 검사는 김씨 사건은 노인이 노인을 부양하는 고통이 빚은 참극으로, 일반적인 존속살인과는 의미가 다르다는 점을 이해하고 있었다. 윤 검사는 “김씨가 서울 병원을 다녀오느라 이틀간 집을 비웠더니 거동이 불편한 아버지는 굶주린 채 대변도 처리 못하고, 집은 엉망진창이었다고 말했다”면서 “김씨 스스로 그 장면을 보고 자포자기하는 심정이 들지 않았을까 싶다”고 말했다.

‘어차피 내가 죽고 나면 아버지의 하루하루가 저와 같을진대 차라리 내 손으로 보내드리자’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을 거란 얘기다. 검찰은 김씨에게 존속살인 법정 최저형을 구형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면회 종료를 알리는 음악소리가 들렸다. “아버지를 가시게 한 마당에 내가 목숨을 부지할 생각 따위는 없지요. 어차피 곧 죽을 목숨이어서 맘이 편합니다.” 그는 무겁게 몸을 돌려 면회실 문을 빠져나갔다.

특별기획취재팀=염호상(팀장)·박성준·조민중·양원보 기자 tams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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