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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평론가 유종호씨 회고에세이 '그 겨울 그리고 가을-나의 1951년'

입력 : 2009-02-07 08:27:15 수정 : 2009-02-07 08:2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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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 문학소년 '아픔의 흉터'… 60여년전 '저편 상흔의 기억'
◇어둑해지는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 연못가에서 만난 유종호씨는 “내가 오래 살지 않았다면, 한국이 이렇게 잘살지 않았다면, 나는 지난 시절을 부정적으로만 보았을 것”이라며 “지나고 보니 모든 것이 예전에 비해 너그러워졌다”고 말한다.
이종덕 기자
문학평론가 유종호(74·전 연세대 특임교수)씨가 1951년 6·25전쟁 당시의 체험을 두툼한 장편소설 한 권 분량의 회고 에세이로 펴냈다. 지난해 월간 ‘현대문학’에 연재했던 에세이를 묶어 ‘그 겨울 그리고 가을-나의 1951년’(현대문학)을 표제로 출간한 양장본이다.

1951년 만 16세, 중학교 3학년에서 4학년으로 올라가야 할 그해, 1·4후퇴 당시의 피란길에서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어렵사리 남하했다가 다시 고향(충주) 부근으로 돌아와 부친이 아는 집에서 더부살이를 할 때, 그는 청주중학교에 주둔 중이던 미 해병대 보급부대에서 일거리를 얻는다. 보급품을 화차에서 하역하고, 다시 ‘칸보이’에 옮겨 싣는 노무자들을 관리하는 미 해병대 노동사무소 최하위 말단 고용인 ‘재니터(janitor)’가 그의 첫 이력이었다. 이른바 ‘청주 역전 마루보시 문지기’였다. 그는 임금표에 영문으로 서명을 했다가 미군장교 눈에 띄어 ‘서기’’로 ‘고속승진’하지만, 문지기나 서기의 임금은 같았다.

전쟁 때문에 고등학교 1학년, 당시로는 중학교 4학년에 해당하는 설레는 사춘기를 미군 보급부대와 함께 옮겨 다니며 노무자들 사이에서 보내야 했다. 청주에서 충주 인근 달천으로, 달천에서 다시 원주 간현으로 미군을 따라다니며, 60년 가까운 세월이 지난 지금까지 남아 있는 ‘아픔의 흉터’를 그때 기억에 새겼다. 이 과정에서 미군 장교, 한국인 통역, 다양한 부류의 노무자들을 만났다. 이 책의 미덕은 그 시절의 소소한 풍경에 대한 세밀한 기록 외에도 각 인물들의 특징을 잘 묘사해 소설적 흥미는 물론 인간에 대한 근원적인 성찰로까지 나아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많은 것을 기억한다는 것은 많이 상처받았다는 것이고 많이 아팠다는 것이다. 삶의 강제가 안겨준 아픔의 흉터가 아니라면 기억이란 대체 무엇인가? 생존이란 본원적 치욕의 그때그때 상흔이 바로 기억이 아닌가? …그러니 기억은 살아남은 자의 슬픔이다.”(116쪽)

유종호씨는 특히 기억력이 뛰어난 문사로 알려져 있다. 그는 문단 어느 자리에서도 술을 한 모금도 마시지 않고, 물론 담배도 피우지 않는다. 늘 꼿꼿한 자세로 은발을 날리며 비음이 적당히 섞인, 듣기에 편안한 성음을 들려준다. 딱딱한 ‘회고록’이 아닌, ‘회고 에세이’에 60여년 저쪽의 일을 어제 보고 체험한 것처럼 생생하게 묘사한 그의 기억력은 놀랍다. ‘진짜’냐는 질문은 ‘나의 해방 전후’(3부작으로 구상한 회고 에세이의 1부에 해당하는데, 지난해에는 일어판까지 출간된 작품으로 2004년 민음사에서 나왔고, ‘국민학교’에 들어간 1941년부터 전쟁 직전인 1949년까지 다루었다. 정작 가혹한 1950년 전쟁 한가운데의 아픈 상처를 다룰 2부는 준비 중이다)를 펴낼 때부터 따라다녔다. 그는 “바둑 두는 이들이 세세한 과정을 다 복기하는 것처럼, 가장 기분 나쁘거나 상처받았던 부분들은 선택적인 기억으로 두고두고 필름을 다시 돌리게 된다”고 대답했다.

그는 ‘생존’이란 ‘본원적인 치욕’이라고 썼다. 먹어야 사는 것은 과학이고, 그래서 사는 것 자체가 누군가에게는 치욕일 수 있다. 그 치욕을 빌미로 세상에는 같은 인간들을 능멸하고, 눙치고, 어르는 이들이 많다. 엉터리 영어 조금 읊조릴 수 있는 덕분에 통역 자리를 얻어 뻐기고 우쭐대는 대학생 미스터 남, ‘병 주고 약 주고, 북 치고 장구 치고, 웃으면서 뺨치’는 황 반장, 아비에게 담요 한 장과 알량한 임금을 넘겨주는 장면에 어린 ‘유종호’를 도둑으로 몰아 구타한 ‘미친 개’ 미군…. 그는 이 과정을 이렇게 회고한다.

“분명한 것은 내가 무엇인가를 잃어버렸다는 사실이었고 그것은 나중 알게 된 글귀를 빌린다면 ‘별을 그리는 부나비의 꿈’을 빼앗겼다는 박탈의 상실감이었다. 뒷날 나는 그것을 소년 상실이란 이름으로 되돌아보곤 했다.”(293쪽)

충주중학교에 수석으로 입학했고, 3학년 때는 ‘문예’지 최종심에서 그가 투고했던 시가 미당에게 평가를 받았던, 삶과 문학에 대한 숭고한 꿈을 키웠던 소년. 그가 목도하고 체험한 전쟁의 아수라판은 소년을 조숙하게 만들었고, 남은 생을 ‘와디’ 아래 복류하는 슬픔의 맥맥한 강으로 만들었다. 겉으로 보이지 않으나, 늘 가슴 속에 흐르는 그런 강물. 유종호의 이 회고 에세이는 픽션보다 생생하고, 생생하기에 더 슬프지만, 아늑하고 단단하게 여민 슬픔이어서 젊은 세대에게 특히 일독을 권할 만한 책이다.

조용호 선임기자 jho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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