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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정 마젤란 편집장 |
어느 날 미장원에서 머리를 하다 문제의 기사를 접했다. 30대라는 강을 힘겹게 건너는 남자들만의 수다였다. “마누라야, 제발 이것만은 알아다오!” 우악스럽기만 할 것 같은 그들의 애처로운 외침에 꽤나 공감이 갔다. 그리고 딱 눈에 머리카락이 들어간 정도만큼 눈물을 찔끔거린 것 같다. 이렇게 착잡한 수다도 다 있나 싶었다. 하루 종일 슬픔이 발에 턱턱 걸렸다. 지아비, 아니 서방이 불쌍하다는 생각이 좀 들었던 것 같다. 그리하여 나는 이 문제의 수다를 주제로 책을 기획해서 그들을 대변해주고 싶다는, 굉장히 거시적이고 혁혁한 계획을 세우게 되었다. 그리고 내키지는 않지만 책을 만들면서 서방을 생각하는 참한 아내짓을 어쩔 수 없이 하고 말았다.
‘날개 없는 30대 남자들의 유쾌한 낙법-절대 약자, 30대 남자들의 솔직한 속내’의 저자 최국태는 남자 30대의 삶을 아프리카 버팔로에 비교했다. 아프리카 버팔로들은 건기가 시작되면 풀을 찾아 대이동을 시작한다. 수백 마리의 버팔로들이 속도를 내다보면 풀을 찾아 이동 중이라는 본래 사실을 망각한 채 달리는 데에만 몰두한다. 이렇게 사력을 다해 달리다 벼랑을 만나면 속도를 조절하지 못한 상당수의 버팔로들이 낭떠러지로 떨어져 생을 마감한다는 것. 속도전만 남아서 왜 달리는지도 모른 채 죽어라고 달리다가 결국에는 벽에 부딪치거나 벼랑으로 떨어지는 버팔로들이 바로 30대 남자들의 자화상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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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국태 지음/마젤란/1만2000원 |
대체 무엇 때문에 쎄 빠지게 일하는지, 왜 이렇게 힘든 건지, 알 길이 없다. 그래서 그들은 느닷없이 말기 암 진단 정도를 받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더 많이 일해라, 더 많이 벌어라, 돈 빨리 갚아라, 몰아붙이지 못할 테니, 세상도 죽어라 죽어라 하지 못할 테니, 딱 6개월만 정말 하고 싶은 것을 하다가 생을 마무리하면 된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나 그들은 사실은 이렇다. 회사와 거래처에서 쏟아지는 숱한 질책과 비난을 감수하며, 아침밥 한번 제대로 챙겨먹지 못하면서도 정말 잘 버텨내며, 소주 한잔 할 자리가 생기면 그래도 국가와 서민들 걱정으로 안주를 만들고, 지하철에서 자살하려 뛰어내리는 사람들 끄집어 올려주며 생의 용기를 준다. 참 속이 없다. 우리가 무얼 그렇게 잘못했느냐며 따져도 모자란 판에 지지리도 속이 없는 것이다.
그리하여 정말 식상하고 흔한 멘트지만 이 시대 모든 30대 남편들이 출근할 때 세 살배기 딸아이에게서 꼭 들어야 하는 말은 바로 이것이다. “아빠, 힘내세요!” “아빠, 최고!”
김혜정 마젤란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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