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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일 서울 남대문시장 입구에 상인들의 숭례문 복원 기원이 담긴 대형 현수막이 걸려 있다. 이종덕 기자 |
2008년 한 해를 하루 남긴 30일 숭례문은 불타 버린 모습을 가림막에 숨긴 채 복원의 날만 기다리고 있었다. 마치 정쟁과 경제 한파로 무너진 채 좋은 날이 오기만을 기다리는 서민들 마음처럼.
근처 남대문시장에서 만난 상인들은 “잿더미가 돼버린 숭례문처럼 서민들 마음도 모조리 무너지는 상황”이라고 한숨을 내쉬면서도 기축년 새해에는 불황의 끝을 볼 수 있기를 간절히 기대했다.
22년째 의류점을 해온 홍정희(47)씨는 “어지간한 옷은 중국산이고 조금 비싸다 싶은 옷은 팔리지 않는다”며 “지방에서 온 상인들이 작년엔 200만원어치씩 가져갔다면 지금은 50만원밖에 안 된다”고 전했다.
액세서리점을 운영하는 김준영(52)씨는 “IMF 때야 우리만 어려웠지 외국은 안 그랬다. 외국 상인을 상대로 그럭저럭 먹고살 수는 있었는데, 지금은 지방 손님도, 외국 손님도 도무지 찾아오질 않는다”고 했다.
손님들 발길이 뚝 끊긴 여파는 고스란히 시장 짐꾼들에게 미쳤다.
오토바이로 물건을 나르는 백모(55)씨는 “어제 하루 4만2000원을 벌었는데 점심값 5000원, 기름값 5000원에 (택배회사) 납입금까지 1만원 내고 나니 2만원 정도 남았다”며 “작년 연말에는 그래도 하루에 10만원은 벌었는데 어떻게 살아갈지 막막하다”고 말했다.
지나가는 일본인 관광객들을 가리키며 “엔화 강세 덕 좀 보는 것 아니냐”고 묻자 손사래를 쳤다.
김과 김치, 장아찌 등 일본인이 좋아하는 식료품을 파는 김진복(33)씨는 “여기는 소매업자보다 도매로 파는 사람이 많다”며 “일본 관광객 매출 비중이 낮아 별 도움이 안 된다”고 말했다. 기념품을 파는 신주연(36·여)씨도 “일본인 관광객 지갑을 열려면 진땀을 빼야 한다”며 “깎아줘서라도 사면 다행이고, 이것저것 묻기만 하고 가는 사람이 많아 허탈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고 말했다.
항상 그렇듯 상인들도 다가오는 새해에 거는 기대는 컸다. “돈을 번다기보다 버티기라고 생각하고 살면 내년에는 좀 경기가 살아나지 않을까 싶다”(김문기· 51·구두가게 운영), “희망이 뭐 따로 있나. 쑥쑥 커나가는 아이들 보면 그게 살아가는 힘이지”(심은숙·48·여·붕어빵 장수). 모두가 “올해보단 내년이 더 낫지 않겠느냐”는 바람을 조심스레 내비쳤다.
절망을 이겨내는 가장 큰 보약은 ‘희망’이듯이 ‘남대문 사람들’은 그렇게 작은 기대 하나씩 가슴에 품고 싸늘한 바람을 온몸으로 막아내며 ‘마음속 숭례문’을 다시 세우고 있었다.
김재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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