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의 기습적인 국회 본회의장 점거 이후 열린 26일 한나라당 주요당직자회의에서 홍준표 원내대표가 한 말이다.
지난 2004년 당시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안이 한나라당 주도로 국회를 통과했을 때 난장판이 된 본회의장의 모습이 17대 총선에서 한나라당에 고스란히 역풍으로 돌아왔던 전례를 거론한 것이다.
민주당이 '007작전'을 연상시킬 만큼 온갖 머리를 짜내 본회의장을 점거한 것도, 이에 대해 한나라당이 당혹해하고 분개하고 있는 것도 이같은 4년 전의 경험과 관련이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실제로 민주당은 한나라당의 한미FTA(자유무역협정) 단독상정에 대해 해머와 전기톱까지 사용하며 국회 외교통상통일위 회의실 문을 부수면서 대응한 당사자였지만 이후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의외의 현상을 발견했다.
여론의 향배가 '민주당보다는 거대여당인 한나라당 쪽에 책임이 있다'는 쪽으로 쏠렸고, 민주당의 지지도는 '의미있는 상승'을 한 것이다.
여론조사기관인 리얼미터가 지난 22∼23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민주당 지지율은 24.2%로 일주일 전 조사에 비해 5.1% 포인트 올랐고, 한나라당은 4.7%포인트 하락한 34.5%를 기록했다.
민주당 내부 조사에서도 지지율이 20% 중반대로 올라 직전 조사보다 5%포인트 가량 올랐고, 각종 쟁점법안에 대해서도 민주당에 우호적인 결과가 많이 나왔다는 전언이다.
지난해 대선과 올해 4월 총선 연패로 나락에 빠진 이후 좀처럼 반전의 계기를 잡지 못했던 민주당으로서는 충분히 고무될 만한 일이다.
특히 '야당 노릇 제대로 못하고 있다'는 지적에 시달려온 '정세균-원혜영 체제'는 국회 극한대치 속에서 오히려 내부 전열의 정비와 외부 세력과의 연대라는 `두마리 토끼'를 잡으려는 전술까지 구사하고 있다.
이런 민주당의 계산을 한나라당이 모를 리 없다. 홍 원내대표가 '자해정치'라고 비난한 것도 '어떻게 해서든 주도권을 뺏기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인 셈이다.
'좌파 10년의 발목잡기'에서 벗어나 집권 2년차인 내년부터는 '국민만을 보고 달리는 정치'를 다짐하는 청와대의 결의를 초장부터 망쳐서는 집권여당 원내 사령탑의 체면이 말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국민 여론의 지지를 받는 법안을 `추리고 또 추리는' 작업을 하고 있고, `자해정치'에서 빠져나갈 원내전술 구상에 여념이 없다. 그리고 딱 한번 '행동대장' 노릇을 한 뒤 이 수렁에서 탈출하려 할 것으로 보인다.
홍 원내대표의 생각대로 연말 정국이 풀려나갈 지는 알 수 없으나 미묘한 당내 기류 변화, 그리고 '지휘통제권'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는 청와대의 입장 등이 얽히고 설켜 있다. 마지막 작전개시까지 힘든 야전사령탑의 고뇌가 있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결국 관건은 여야의 치열한 수싸움 끝에 실제로 '자해정치'가 재연될 것이냐, 그리고 그런 일이 벌어지고 난 뒤 유난히 '감수성이 예민한' 국민이 누구를 향해 '동정'을 보낼 것이냐로 귀결되고 있다.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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