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로부터 안티오페와 테세우스는 서로 사랑하며 기쁜 나날을 보냈다. 그러는 사이 두 사람 사이에서 옥동자가 태어났다. 두 사람은 아이가 태어나자 기뻐하며 이름을 안티오페의 언니의 이름을 따서 히폴리토스라고 지었다. 안티오페는 언니가 억울하게 죽음을 당했던 것을 조금이라도 위로하고 싶었다.
그렇게 두 사람이 행복한 날들을 보내고 있을 때, 안티오페의 나라에서는 멜라니페가 왕위를 이어받아 복수의 칼날을 갈고 있었다.
더욱 힘을 기른 아마존의 여전사들은 여왕의 원수를 갚고, 안티오페를 다시 자기 나라로 데리고 가려는 작전을 짰다. 그들은 안티오페가 강제로 납치되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만반의 준비를 갖춘 아마존 족의 여전사들이 아테네까지 공격해 들어왔다. 이미 헤라클레스는 과업을 마치고 떠난 후였고, 이들과 맞서서 싸워야 할 이은 아테네 군사들뿐이었다. 아마존의 전사들은 자기들의 여왕을 살해하고, 여왕의 동생 안티오페까지 납치해간 일로 기어코 복수를 할 생각으로 용맹한 여전사들을 앞세우고, 테세우스가 머물고 있는 왕국까지 침입해왔다.
아마존의 전사들은 아테네를 공격하여 푸닉스 언덕까지 단숨에 점령했다. 이제는 아테네의 최후의 보루라고 할 아크로폴리스 언덕을 포위하고 밀고 올라오고 있었다. 이들의 기세는 거세고 놀라웠다. 아테네의 군사들은 여전사들에게 힘도 제대로 못써보고 여기 저기 시체로 나뒹굴었다. 다급해진 아테네 진영에서는 테세우스를 급히 찾았다. 테세우스는 헤라클레스를 도와 과업을 무사히 마친데다 아름다운 여인까지 얻은 터라 기쁨에 잠겨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안티오페 역시 자기 종족이 이곳까지 추격해왔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고, 테세우스 또한 안심하고 있던 터였다.
“테세우스 왕자님! 큰일 났어요. 큰일 났어요. 빨리 나와 보셔야겠어요.”
깊이 잠들어 있다가 간신히 눈을 뜬 테세우스는 밖을 향해 말했다.
“무슨 일인데, 이리도 호들갑이냐?”
그러자 테세우스를 가장 가까이서 모시는 참모가 다급하게 말했다.
“아마존의 여전사들이 쳐들어 왔어요. 어찌나 용맹하고 강한지, 벌써 푸닉스 언덕을 넘어 아크로폴리스 언덕으로 몰려오고 있어요. 여왕의 원수를 갚고 안티오페를 데려가겠대요.”
“뭐라고?”
테세우스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무장을 했다. 옆에 누워있던 안테오페도 일어나 앉으면서 어쩔 줄 몰라 했다.
“안티오페, 당신은 여기 그대로 꼼짝 말고 있어요. 모든 일은 나에게 맡기고...........”
푸닉스와 아크로폴리스 두 언덕 사이의 협곡에서 격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점차 아테네 군이 밀려나고 있었다. 아마존의 전사들의 용맹에 아테네 군사들은 지레 겁을 먹고 주춤거리고 있었고, 누구 하나 용감하게 맞서 싸우는 사람이 없이 그저 수적인 우세로 밀어붙이고 있을 뿐이었다.
“아테네의 군사들이여. 나를 따르라. 나 테세우스는 그 어느 적이든 물리칠 힘이 있으니 두려워 말라. 두려움은 곧 패배요. 죽음일 뿐이니, 자 용감하게 맞서자. 아테네를 지키자.”
테세우스였다.
“와 테세우스! 테세우스!”
병사들은 용기를 내었다. 테세우스의 이름만 듣고도 용기를 얻은 아테네의 병사들은 아마존 전사들과 일전을 벌였다. 선두로 나선 테세우스의 몽둥이 아래로 아마존 전사들이 퍽퍽 쓰러져갔다. 테세우스가 전면에 나서면서 그의 기를 꺾지 못한 아마존 전사들은 전의를 잃고 퇴각하기 시작했다. 안티오페는 아마존의 여전사들, 옛 동료들이 왔다는 소식에 싱숭생숭한 마음으로 멀찌감치 테세우스를 따라나섰다. 안티오페가 전쟁터 근처에 이르렀을 때는 이미 아마존의 전사들이 뒤로 밀리고 있었다. 안티오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그저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어디선가 날아든 창에 맞아 그만 쓰러지고 말았다. 멀리서 바라보던 테세우스가 달려왔을 때는 이미 피를 많이 흘리며 숨을 거둔 후였다. 그의 가슴에 선혈이 낭자했다. 분노가 치민 테세우스는 적진으로 맹렬하게 뛰어들어갔다. 그의 기세에 놀란 멜라니페는 힘의 열세를 느끼며 퇴각을 명했다.
“퇴각하자. 빨리 퇴로를 열고 탈출하여 본국으로 돌아간다. 다음을 기약하자.”
테세우스는 군사를 이끌고 이들을 맹렬하게 추격했다. 테세우스는 이들을 추격하여 메가라까지 이르렀다. 더 이상 퇴각할 기운도 없어진 아마존의 전사들은 거기서 죽기 살기로 테세우스와 일전을 벌였다.
“테세우스, 이 나쁜 야만인, 우리 여왕을 죽이고, 그것도 모자라 안티오페까지 납치하고, 이제는 내 나라까지 쳐들어오느냐. 결판을 내자.”
멜라니페였다.
“멜라니페, 네가 감히 내가 사랑하는 안티오페를 죽이고도 시침을 떼느냐? 내 너를 용서치 않으리라.”
여왕을 이어 2인자인 멜라니페는 고개를 갸웃하며 테세우스에게 도전했다. 하지만 테세우스는 빙그레 웃으며 그녀를 대적했다. 결국 멜라니페는 테세우스가 휘두른 곤봉에 맞고는 그대로 고꾸라져 숨을 거두었다.
“아테네의 병사들이여. 용감하게 전사답게 최후를 마친 멜라니페를 잘 묻어주어라. 그리고 아마존의 전사들이여. 그대들은 이제 당신들의 나라로 건너가라. 내 더 이상은 추격하지 않을 것이다.”
기세등등했던 아마존의 전사들은 풀이 죽어 쓸쓸한 뒷모습을 보이며 천천히 퇴각했다.
무료함을 달래려고 헤라클레스를 따라 나섰던 모험은 의외로 큰 사건을 남기고 마무리 되었다. 이후 테세우스의 용기와 지혜를 목격한 아테네의 시민들은 그를 더 믿고 따랐으며, 그를 존경하며 받들었다. 아테네는 그가 왕이 된 이후 이웃나라 백성들이 부러워하는 평화롭고 부강한 나라가 되어갔다. 그러면서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은 아테네로 넘어와 도움을 청하기도 했고, 테세우스와 친해보려고도 했다. 그래서 핍박을 피해 아테네로 넘어오는 유명인사들도 많았는데, 그중에는 오이디푸스도 있었다.
오이디푸스, 아버지인지 모르고 아버지를 죽이고 심지어 어머니와 결혼을 해서 아이까지 낳았던 오이디푸스는 나중에야 그 사실을 깨달았다. 결국 아내이자 어머니였던 왕비는 자살을 하고, 자신은 눈을 찌르고 페인이 되다시피 한 오이디푸스는 자신의 딸 안티고네와 함께 망명길에 올랐다. 험악한 죄인이 된 그를 어느 누구도 받아주지 않았다. 그러나 이를 불쌍히 여긴 테세우스는 노령의 오이디푸스를 받아주었고, 그의 딸 안티고네도 보호해 주었다. 크레온의 부하들이 압력을 넣어 오이디푸스를 테베로 돌아오도록 했지만 테세우스는 이를 막고 오이디푸스를 끝까지 보호해 주었다. 테세우스는 신의를 버리지 않았고, 오이디푸스를 격려하고 위로해 주었으며, 오이디푸스가 죽을 때 테세우스는 함께 있어 주었다. 그는 오이디푸스의 무력한 두 딸을 보호해 주었고, 그녀의 아버지가 죽은 후에 무사히 본국으로 돌려보냈다.
테세우스는 훌륭한 왕으로서 명성을 얻었다. 하지만 그의 모험심은 사그라지지 않았다. 나라를 위해 열심히 일하다가도 모험심이 발동하면 영웅들과 함께 모험을 떠나는 일에는 꼭 동참하곤 했다. 그는 황금 양털을 찾기 위해 아르고호를 탔던 사람들 중의 한 사람이었다.
그는 칼리돈의 멧돼지 대 사냥에도 참가했다. 이 사냥에 테세우스가 나선다고 하자 그의 막역한 친구 페리토스도 따라 나섰다. 페리토스와 테세우스는 아주 막역한 사이는 아니었다. 그들 간의 우정은 페리토스 쪽에서 아주 경솔한 행동을 함으로써 생긴 것이었다. 그것은 페리토스 의도에 의한 것이었다. 페리토스는 테세우스가 소문대로 위대한 영웅인지 직접 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는 꾀를 내어 곧장 마라톤 평야로 들어가서 테세우스의 소 몇 마리를 훔쳤다. 화가 난 테세우스는 급히 그를 추격했다. 테세우스가 추격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그는 자신의 의도대로 되었음을 내심 기뻐하며, 서둘러 달아나는 대신에 오히려 방향을 돌려 그를 맞이하러 갔다. 정말 위대하고 사람 좋은 영웅인지 알고 싶은 생각에서였다.
그 후 이야기는 다음 주에 계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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