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툴고 無기교한 포토 드로잉 국내 첫 공개
![]() |
◇늘 실험적이고 모험적인 작업을 즐기는 조각가 심문섭씨가 자신의 작품앞에 서 있다. 그의 작품은 단순한 물체가 아닌 공간이라는 상황과 어우러진 한 편의 시를 꿈꾼다. |
“선배들이 하는 것은 안 하려고 했지. 그런 점에선 당연한 ‘직함’ 같기도 해.”
5일부터 25일까지 갤러리 현대와 학고재에서 동시에 전시를 갖는 그는 조각이라는 고정관념에 대해 끊임없이 ‘반발’한다.
“소재에 대한 해석과 그것을 에워싸고 있는 공간 주변에서 일어나는 풍경들을 시적으로 환기시켜주는 것이 나의 작업이라 할 수 있지. 사유의 세계를 제공하는 거야.”
쉽게 말해 공간이라는 공책에 물성이라는 언어로 시를 쓰는 셈이다. 흙, 나무, 돌 등과 같은 재료들의 속성이 그대로 부각되는 이유다.
“날것을 제시해 만들기 위한 형태가 아닌 자발적 형태를 추구하고 싶어.”
그는 서울 종로구 평창동과 경기도 덕소, 경남 통영, 프랑스 파리의 작업실을 오가며 조각의 시어들을 낚는다.
“장소의 변화에서 오는 새로운 긴장의 맛을 즐기고 있어. 고향 통영의 작업실은 유년기로의 시간여행을 떠나게 해줘 좋지.”
그는 물성과 장소가 갖는 시간과 역사, 그리고 문화를 함께 녹여내 상상이 살아 숨 쉬는 시적 세계로까지 밀고 나간다. 개발로 헐린 전통가옥의 대들보도 작업의 소재가 된다.
“쓰였던 나무엔 시간과 문화가 묻어있게 마련이지. 오브제 스스로가 얘기를 하는 것 같아.”
그는 이 같은 소재들이 함께 향유하고 공유할 수 있는 부분이 많다고 했다. 시어의 풍부한 내재적 의미가 그의 ‘시조각’을 더욱 풍요롭게 하고 있는 것이다.
나무와 철 등을 조합하기도 한다. 충돌이 아닌 또 다른 메타언어를 만들어 내기 위한 것이다. 시적 언어의 조탁이라 할 수 있다. 그는 이를 두고 “자연의 순리를 따라 또 다른 자연을 창조한다”고 했다.
그의 조형물들은 전통적인 조각보다는 설치작업이나 개념미술을 많이 닮았다. 돌확 모양에 물과 조약돌이 담겨 있거나 나무 식탁 같은 곳에 대나무가 꽂혀 있기도 하다. 철판 중간을 떼어내 움푹 팬 석재를 넣고 물을 담아놓은 듯한 평상 위에는 크고 작은 돌들이 놓여 있다. 한옥의 대들보였을 법한 나무들을 대충 다듬어 만든 듯한 탁자, 신문지 더미를 빛이 나는 광섬유로 묶어놓은 설치물, 얼기설기 다듬은 듯한 나무 벽이나 칸막이 등이 전시장을 차지한다.
“최소한만 개입해 내 방식대로 만든 ‘차용된 자연’이라 할 수 있지.”
그는 서울대 재학 때부터 두각을 나타내 오세훈 서울시장의 장인인 작고한 조각가 송영수 교수의 귀여움도 많이 받았다고 한다. 국전 문공부장관상, 국전 국회의장상, 제1회 김세중 조각상, 프랑스 정부의 문화예술공로 슈발리에 훈장 등 상복도 비교적 많은 편이다.
학고재에서 조각과 설치물을, 갤러리 현대에서는 사진과 사진 드로잉 작품을 중심으로 각각 전시한다. 사진 작업은 지난해 프랑스 파리 팔레 루아얄 공원에서 연 전시를 비롯해 해외에서는 선보여왔지만 국내에서는 처음 공개하는 것이다.
자연을 찍은 사진을 디지털작업을 통해 아주 조금 변화시키거나 인화된 사진 위에 먹이나 아크릴 물감을 사용해 조금 변주한 작품들이다. 조각 작업에서 보여온 것처럼 ‘재편된 풍경’들인 셈이다. 흑백 화면으로 구성된 이른바 심문섭식 ‘포토 드로잉’이라 할 수 있다.
“실제로 입체 작품이 들어갈 장소를 촬영하고 인화하여 그 위에 작품의 아이디어를 시각화하기 위해 아크릴 물감으로 작품을 그리거나, 먹으로 작업하여 원래와는 다른 풍경을 만들어 내고 있다.”
그는 이번 전시에서 한지 위에 먹으로 드로잉한 작품도 보여준다. 이 또한 작품이 놓일 장소와 작품의 시각화를 위한 것이다.
그는 자신의 사진작업을 눈 풍경에 비유했다.
“눈은 있을 것만 있게 온 동네를 단순화시키지. 내 사진 작업도 단순화시키는 거야.”
그는 작가가 개입할 수 있는 서툴고 무기교하고 따뜻한 사진의 구현이라 했다. 인간의 인지 시점을 중시하는 그림과 사진의 중간 단계를 추구하고 있는 것이다. (02)739-4937(학고재), 734-6111(갤러리 현대)
편완식 기자 wansik@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