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크레타 섬 카토 카루자나의 민속촌에서 펼쳐지는 전통 공연. 에게해 남부의 풍성한 햇빛이 빚어낸 크레타 전통 와인과 음식도 함께 즐길 수 있다. |
그리스는 서양 문화의 원류이자 신화의 땅이다. 서양 문화의 뿌리를 좇다 보면 결국은 그리스 신화에 닿게 된다. 여행지도 아는 만큼 보이는 법. 그리스 여행은 ‘그리스·로마 신화’를 꺼내 다시 한 번 읽고 나서는 게 좋다.
크레타 섬에서는 그리스 신화에서 가장 극적인 장면이 담긴 크노소스 궁전을 만날 수 있으며, 아테네에는 서양 문명의 시발점이라고 할 수 있는 아크로 폴리스가 자리하고 있다.
#신화 속 미궁이 있는 크레타 섬
크레타 섬은 한국에는 여행지로 거의 소개되지 않았지만, 낯설지 않게 다가온다. 한 번 들어가면 나올 수 없는 ‘미궁’(迷宮)의 신화가 탄생했다고 여겨지는 곳이며, 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고향이자 ‘그리스인 조르바’의 무대이다.
![]() |
◇크레타 섬 베네치안 요새에 몰아치는 파도. |
크레타 섬은 에게해 남쪽에 동서로 길게 누운 섬. 제주도의 4.5배에 달한다. 아테네의 피레우스 항구를 저녁에 출발한 크루즈선은 밤새 에게해를 달려 새벽에 크레타 섬의 이라클리온 항구에 닿는다.
크레타 섬에서는 아무래도 크노소스 궁전을 가장 먼저 찾게 된다. 미노스의 왕비는 머리는 소이고 몸은 인간인 ‘미노타우로스’라고 하는 우두인신(牛頭人身)의 괴물을 낳는다. 미노스 왕은 건축의 신, 다이달로스에게 한번 들어가면 나오는 문을 찾을 수 없는 ‘라비린토스’를 만들게 하고 이 괴물을 가둬 버렸다. 이 괴물을 죽이기 위해 나선 아테네의 영웅 테세우스는 미노스의 딸 아리아드네의 호의로 실타래를 얻어 실을 풀면서 미로로 들어가 마침내 괴물을 죽이고 무사히 빠져나온다. 비밀을 누설한 죄로 자신이 만든 미궁에 갇힌 다이달로스는 밀랍으로 새의 날개를 몸에 붙여 아들 이카루스와 함께 미궁을 빠져 나왔으나, 태양에 너무 가까이 간 이카루스는 그만 날개가 녹는 바람에 하늘에서 떨어져 죽고 만다.
영국 고고학자인 에번스(1851∼1941)가 1900년부터 10년간 이곳을 발굴하며 미노아 문명의 실체를 확인했고, 그 후로 크노소스 궁전은 신화 속 미궁으로 믿어지고 있다. 기원전 2000년에 지어진 이 궁전은 지금 폐허에 가깝지만, 신화를 되새기며 돌아보면 벽돌 하나 하나가 예사롭지 않게 다가온다. 이라클리온 고고학 박물관에도 크노소스 궁전에서 발굴된 벽화와 장신구 등 수많은 미노아 문명의 유물을 만날 수 있다.
크레타는 미노아 문명 이후 근세까지 온갖 침탈에 시달린다. 이라클리온의 베네치아 요새는 13세기부터 이곳을 점령한 베네치아 공화국이 16세기에 세웠다. 베네치아 요새에 몰아치는 집채만 한 파도는 지난했던 크레타의 과거 운명을 상징하는 것 같다.
유럽 사람들에게는 크레타 요리 체험도 인기 있는 여행테마가 된다. 올리브유와 생선을 주로 사용하는 크레타 요리가 세계 최고의 장수 음식으로 꼽히기 때문. ‘칼립소’(www.hotel-kalypso.com)에서는 정통 크레타 요리를 직접 만들어 먹어볼 수 있다. 크레타의 민속품을 모아 놓은 ‘리크노스타티스 민속박물관’(www.lychnostatis.gr), 크레타 전통 공연을 즐길 수 있는 카토 카루자나의 민속촌도 여행명소다.
크레타에는 북쪽 해안을 따라 리조트도 즐비하다. ‘그리코텔 아미란데스 호텔’(www.grecotel.gr)은 그리스에서 첫손에 꼽히는 최고급 리조트로, 특히 풀 빌라(pool villa) 시설은 명성이 자자하다. ‘알데마르 호텔’(www.aldemarhotels.com)은 해수 스파로 유명하다.
#서양 문명의 발원지, 아테네
아테네에서 주요 고대 유적지는 대부분 구시가지인 남부에 모여 있다. 북쪽 지역은 19세기 초 아테네가 그리스의 새로운 수도가 되며 형성된 지역이다.
아테네는 화사하고 산뜻한 도시는 아니다. 도심 워킹 투어(walking tour)를 하다 보면 전형적인 개도국의 도시라는 인상을 받는다. 그러나 아크로폴리스에 오르는 순간 아테네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다가온다. 높이 190m쯤 되는 언덕에 조성된 이 거대한 돌성의 곳곳을 장식한 대리석 기둥은 2500년이 넘었지만, 지금도 눈부시게 하얀 색이다. 발 아래로 아테네 시내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가운데 파르테논 신전, 프로필라리아, 니케 신전, 에레크테이온, 디오니소스 원형 극장 등을 돌아보면 바로 이곳이 ‘신의 세계’가 아닌가 하는 감흥에 젖는다.
![]() |
◇아크로 폴리스의 입구인 프로필라리아. |
니케 신전은 크레타 섬 크노소스 궁전의 신화와 연결된다. 흰 돛을 기대했던 아테네왕 아이게우스가 검은 돛을 보고 자신의 아들 테세우스가 우두인신의 괴물에게 잡혀 먹은 줄 알고 절망한 나머지 바다로 몸을 날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장소가 바로 니케 신전이다. 에게해라는 이름도 이 자살한 아테네 왕의 이름에서 유래했다. 제우스 신전, 아고라, 국립 고고학 박물관 등 아테네의 명소를 둘러본 후 낭만적인 식사를 하고 싶다면 피레우스 항구의 ‘스몰 포트’(small port)를 찾으면 된다. 해산물 요리를 전문으로 하는 고급 레스토랑과 카페가 몰려 있어, 아테네의 멋쟁이들이 즐겨 찾는다.
아테네에서 남쪽으로 70㎞ 정도 떨어진 아티카 반도 끝에 자리한 수니온 곶도 빼놓을 수 없는 명소. 주변 에게해 풍광이 일품인 수니온 곶에는 바다의 신, 포세이돈 신전이 세워져 있다. 기원전 5세기에 세워졌다는 포세이돈 신전은 현재 34개의 대리석 기둥 중 15개만 남아 있지만, 그 위용과 장엄함은 수천년의 세월에도 변함이 없다. 아테네에서 수니온 곶에 이르는 해안도로는 그리스에서 가장 아름다운 드라이브 코스로 꼽힌다. 1960년대 후반 그리스의 선박왕 오나시스와 재클린 케네디가 이곳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며 더욱 유명해졌다.
10월에 파도가 심한 때는 좀처럼 드물다는데, 수니온 곶에 에게해의 거친 파도가 몰아친다. 에게해 깊은 바다 황금 궁전에 살고 있다는 포세이돈이 오늘은 왜 저리 화가 났을까.
크레타·아테네(그리스)=글·사진 박창억 기자
아테네까지 직항은 없다. 터키항공(www.thy.com)을 이용하면 이스탄불을 거쳐 아테네까지 순수 비행시간이 13시간 정도 걸린다. 터키 항공은 인천∼이스탄불 구간을 매주 주 3회(월·수·토) 운항한다. 아테네에서 크레타까지 ‘미노안 라인’(www.minoan.gr)이 크루즈선을 운행한다. 산토리니는 날씨가 좋지 않은 겨울에는 여행을 피해야 한다. 성수기인 4∼10월에 방을 예약하려면 최소 4∼5개월 전부터 준비해야 한다. 터키항공(02-777-7055), 산토리니 페리볼라스 호텔(www.perivolas.gr), 그리스 관광청(www.visitgreece.kr).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