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쾌한 비판통해 '부활 가능성' 타진

고전한학과 철학을 겹쳐 전공하고 있는 한형조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가 구한말 단재의 울분처럼 유학과 유학자들에게 진한 아쉬움을 담아냈다. 그가 최근 내놓은 ‘왜 조선 유학인가’(문학동네)와 ‘조선 유학의 거장들’(문학동네)은 자멸한 뒤에야 부활의 가능성을 타진한 조선의 유학에 대한 ‘앞 담화’다. 진중하고 묵직한 내용을 담고 있으면서도 문체가 독자를 끌어당긴다.
조선의 유학은 망국과 근대화를 거치면서 확실히 무너졌다. 그러나 자멸의 원인을 제공했던 망국과 근대화는 조선 유학의 부활을 끌어내는 계기로도 작용했다.
조선 유학의 몰락은 초심을 잃어버린 주류 유학의 ‘고집’ 때문이었다는 게 한 교수의 시각이다. 조선의 주류 유학이 변화에 혁신에 실패했기 때문에 몰락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유학의 잘못이라기보다는 사람의 잘못이다. 마치 ‘도(道)가 사람을 넓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도를 넓히는 것’(人陵弘道, 非道弘人也)이라는 공자의 말처럼 유학을 굳게 지키는 것도 사람이고, 혁신하는 것도 사람이기 때문이다.
전통이 지금의 삶을 풍부하게 하는 데 기여하지 않는다면 돌아볼 필요가 없다는 게 한 교수의 주장이다. 현대에 필요한 것은 ‘실학 너머의 유교’이다. 그러기에 자멸의 과정에서 사라져버린 주자학과 유교의 ‘본성’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본성에 주목하면, 유학이 제공하는 비전은 낡은 것이 아니라 영원성이 있기 때문이다.
한 교수가 주자학에 부여한 오늘날의 의미는 이렇다. “우주와 가족, 그리고 관계 안에서 태어난 인간이 그 관계를 적극 실현하는 한 자유체로서 자신을 실현해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그것을 확장적으로 계몽시킨다.”
조선 유학에 대한 한 교수의 유쾌한 비판을 접하며 오늘의 우리 모습을 돌아보게 된다. 조선 유학의 실수와 그 안타까움이 오늘에도 반복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 현대 철학자 조지 산타야나의 경구는 그래서 우리 모두에게 유효하다. “역사의 교훈을 잊는 사람들에게는 그것을 상기시켜 주기 위하여 똑같은 일이 다시 한번 일어날 것이다.”
박종현 기자 bali@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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