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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선비정신 화폭에 담는 송필용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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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속의 나'를 씻는 '생명의 힘' 폭포
◇소쇄원 인근 작업실에서 조선시대 가사문학의 정신을 화폭에 풀어내고 있는 송필용 작가. 그에게 물은 이 시대의 마음의 여백이다.
상선약수(上善若水), 제 몸을 장소에 가리지 않고 모든 곳에 맞출 수 있는 낮은 마음이 곧 물이고, 또 곧 선이다. 전남 담양의 소쇄원 근처의 옛 우체국 건물에서 작업하는 송필용(50)은 물을 탐구하는 작가다.

“저에게 물은 마음의 여백 같은 것입니다. 무한한 상상력과 감동을 주는 폭포는 작업 에너지의 매개체가 되기도 하고 저를 돌아보게 하는 스승이 되기도 하지요.”
◇달빛폭포-생명의 순환

예로부터 선인들은 자신을 물에 빗대어 시를 쓰거나 삶을 은유했다. 흐르는 물에 응어리진 한을 씻어 내리고, 상처를 어루만졌다. 그것은 현대인에게도 여전히 유효하다. “폭포그림이 현대를 살아가면서 어쩔 수 없이 쌓여가는 강박함의 씻김굿이되었으면 합니다.”

폭포가 가지는 강한 에너지는 ‘생명의 힘’으로도 이해될 수 있다. 물줄기가 모두 모여 하나의 움직임을 가진 공동체를 만들면서 물은 단순히 생명이 아닌 ‘생명의 터’가 된다. 폭포 그림 속 색색의 작은 물고기들은 생명체를 품는 물을 보여준다. 물이 주는 희망적 메시지라 할 수 있다.

물보라 치는 폭포 앞에 서면 누구나 자연스레 그 경이로운 광경에 자신을 비추어 보며, 자신의 존재를 환기시키게 된다. 폭포를 표현하기 위한 크고 거친 붓질도 이런 강한 생명감을 강조하기 위한 것일 게다.

수직으로 표현되는 폭포는 언제나 수평을 향해 떨어진다. 폭포의 동적인 에너지는 언제나 정적인 물의 표면으로 변화된다. 수직에서 수평으로의 이동은 단순히 물이 가지는 성격이 아니라 만물의 이치라고도 할 수 있다. “만물은 위에서 아래로 이동하고 또 그것이 수평화되면서 안정화됩니다. 비단 물만이 아니라 달이 차고 지는 것도 시간의 흐름을 따르는 순환의 이치지요. 마찬가지로 꽃이 피었다 지는 것처럼 아무리 작은 생명이라도 태어남과 소멸의 순환을 보여줍니다. 저에게 이런 모든 소재들은 자연의 이치를 이어주는 메타포라 할 수 있습니다.”

물이 소재가 되면서 송필용의 화면은 녹색톤이 주조를 이루게 된다. 특히 푸른 빛깔의 색은 작가의 대표색이라 할 수 있다. “청색과 녹색을 주로 사용하지만 단순한 단색조 회화를 넘어 그 안의 묘미를 찾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한국 전통도자기에서 느껴지는 청아한 빛 같은 것이지요.” 그는 전통산수의 재해석을 위해 수십 번에 이르는 금강산 답사와 전국을 풍류객처럼 거닐었다. 자연의 신비로운 대기변화와 풍광에서 맑은 청색을 이끌어 낼 수 있었다.

송필용은 유화물감을 마치 먹의 농담을 표현하듯 쓴다. 수직적인 폭포를 표현하기 위해 변형 캔버스도 마다하지 않는다. 전통서화의 족자나 병풍을 연상시킨다.

“폭포라는 수직적 형태를 그리기 위해 캔버스는 위로 길게 변형되고, 흐르는 물을 위해 옆으로 길어졌습니다. 화면의 형식이 변했다기보다 동적인 운동감과 정적인 물의 성격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지요.”

그림 속 매화나 달은 동양적 전통을 느끼게 해준다. 달의 이미지나 폭포를 타고 오르는 형형색색의 물고기 떼를 보면 마치 이상향을 말하는 것 같다. 예로부터 산수의 이미지가 실경이면서도 ‘도원’의 풍경과 다르지 않은 것처럼.

작가는 전통적인 산수에서 출발해 초기에는 인물이나 정자가 배치된 풍경을 많이 그렸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인물이 사라졌다. “어떤 특수한 설정이 가미된 풍경으로 가둬진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의 본질적 탐구’에 장애 요소라는 판단이 섰지요.” 어쩌면 산수라는 원경의 풍경에서 출발하여 폭포와 물이라는 근경의 미시적인 관점으로의 이동으로 볼 수 있다. 물이 주는 순환적 의미를 극대화하기 위한 방책이다. 현대를 살면서 물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이며 또 그것을 어떻게 해석하여 표현하는가가 작업의 맥락이다.

“물은 세상의 모든 것을 대변하는 우주적인 이미지가 담겨 있습니다. 물방울이 모여 물줄기를 만들고 강과 바다로 확대되어도 물은 여전히 ‘물’ 그 자체로서의 의미를 잃지 않지요. 즉 물은 부분이자 전체지요.” 그는 물은 하나의 물질이자 공간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달빛폭포를 그리는 것도 그 광경이 우주공간을 대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폭포(물)는 생명 순환의 장으로 보는 이로 하여금 자기 존재의 반성과 치유를 유도하는 ‘선’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에게서 물은 자연이라는 근원에 대한 탐구와 열망이라고 할 수 있다.

작가에게 물은 ‘진리‘나 다름없다. 물을 따라 붓이 지나가고 낙하하고, 부딪치고, 유유히 흐르면서 우리를 성찰시키고 만물을 피워낸다. 쏟아지는 폭포 아래서 세속의 나를 씻어내고, 잔잔히 흐르는 생명의 물에서 나를 다시 채우는 진실된 생명의 시를 그는 그리고 있는 것이다. 폭포는 언제나 곧다. 9월16일까지 서울 청담동 이상갤러리(네이처포엠 빌딩) 초대전. (02)516-0140

편완식 문화전문기자 wansi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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