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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늑하고 푸근한 영월 주천강 여행

입력 : 2008-08-21 19:48:24 수정 : 2008-08-21 19:4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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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이 놀다간 그곳 … 내 마음 두고 오다
◇요선정에서 절벽 아래로 내려다본 주천강. 낙락장송 뒤로 펼쳐지는 주천강의 부드러운 물길은 사람의 마음을 한없이 푸근하고 순하게 만든다.
순하고 부드러운 강물은 사람의 마음을 푸근하게 한다. 어머니의 품에 비유하는 게 공연한 수사는 아니다. 그 물길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몸과 마음이 모두 안식할 수 있다.

영월의 주천강도 그런 곳 중 하나다. 흔히 동강은 남성, 서강은 여성에 비유되지만, 서강의 상류인 주천강의 물길은 한층 더 보드랍고 온화하다. 강을 둘러싼 바위와 절벽도 위압적이고 압도적인 게 아니라, 시골 고향집 담장처럼 정겹고 아늑하다. 그래서 한여름 내내 무더위에 시달리다가 여름 끝자락에 늦은 휴가를 떠나려는 사람들에게 몸과 마음이 모두 편안해지는 여행지로 추천하고 싶은 곳이 주천강이다.

# 신선이 놀던 요선암과 요선정

‘강의 고장’으로 불리는 강원 영월에서도 주천강은 최상류에 자리한다. 평창과 횡성의 경계에 있는 태기산(1261m)에서 발원한 주천강은 영월의 수주면과 주천면을 지나 서면 신천리에서 평창강을 만나 서강이 된다. 이 서강이 영월군 합수머리에서 동강을 만나 남한강이 된다. 
◇조각품처럼 희한한 모양을 자랑하는 요선암.

주천강은 남한강의 첫 물줄기인 셈이다. 동강과 서강의 명성에 가려 덜 알려져 있지만, 주천강의 풍광은 결코 그에 못지않다. 동강과 서강에 비하면 피서객이 많이 몰리지 않았던 만큼 늦여름에 찾아도 쾌적하고 청정한 자연을 만날 수 있다.

88번 국도를 따라 주천강변을 오르내리며 드라이브를 즐기다 가장 먼저 찾을 곳은 요선암과 요선정이다. 금마리의 터널과 주천읍을 지나 시원한 강바람을 맞으며 상류로 올라가면 만나게 되는 작은 암자 미륵암. 이 미륵암 앞마당에서 돌계단을 따라 강가로 내려가면 조각품처럼 기기묘묘한 형상의 거대한 암반 지대를 만난다.

어떻게 저런 희한한 모양의 바위가 생겨났을까. 신선들이 신통력을 발휘해 바위를 밀가루처럼 반죽을 해 놓은 것일까. 요강 만한 작은 구멍, 욕조 만한 널찍한 구멍이 바위 곳곳에 패어 있다. 조선 중기의 명필 양사헌은 이곳 경치에 반해 ‘신선이 놀고 간 자리’라는 뜻의 요선(邀僊)이란 이름을 붙였다.

미륵암 뒤편으로 숲길을 5분 정도 오르면 요선정이 나온다. 정자 앞에는 마애석불과 작은 석탑이 서 있다. 석불과 석탑은 조형미가 뛰어나지는 않지만, 소박하고 온화하다. 그래서 부드러운 물길의 주천강과 더 잘 어울린다. 
◇주천강변 절벽 위에 자리한 요선정과 마애석불, 그리고 석탑.

마애석불이 새겨진 물방울 모양 바위의 뒤편으로 돌아갔다. 발아래는 수직절벽이고, 그 위에 멋지게 생긴 낙락장송 한 그루가 서 있다. 싱그러운 강바람이 온 몸을 감싸고, 산줄기 사이로 흘러내리는 주천강의 유려한 물길이 한눈에 들어온다.

# 송림이 울창한 적멸보궁, 법흥사

주천강 일대에서 빼놓을 수 없는 명소가 사자산(1120m) 중턱의 법흥사. 신라 선덕여왕 12년(643년)에 자장율사가 중국 당나라에서 가져온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봉안하기 위해 창건한 고찰이다. 우리나라에는 부처님 진리사리가 모셔져 있다는 적별보궁이 5곳 있는데, 법흥사가 그 중 하나다. 설악산 봉정암, 오대산 상원사, 영취산 통도사, 태백산 정암사 등 다른 적멸보궁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있지만 그 풍광과 정취는 어디에도 뒤지지 않는다.

법흥사는 멋진 소나무숲으로도 유명하다. 절집 진입로에 쭉쭉 뻗은 금강소나무가 빼곡히 들어서 있고, 적멸보궁에 오르는 산길 양 옆에도 높이가 30∼40m는 족히 되어 보이는 소나무가 가득하다.
◇엄둔계곡에서 즐기는 낚시.

적별보궁 안에는 불상이 없고, 대신 뒤쪽 풍경이 훤히 보이는 유리창 하나가 뚫려 있다. 유리창 너머로 사자를 닯았다는 사자산의 봉우리 3개가 보인다. 이 창에서 직선을 똑바로 뻗으면 사자의 귀 부분에 닿고, 그곳에 진신사리가 봉안되어 있다고 한다. 적멸보궁 뒤에는 자장율사가 수련을 했다는 토굴이 남아 있다. 적멸보궁으로 올라가는 산길 입구의 삼성각과 200년 된 잘 생긴 밤나무도 눈길을 끈다.

# 청정 옥수 흐르는 법흥계곡

주천강 주변에서는 8월 말의 늦더위를 식힐 수 있는 청정계곡도 만날 수 있다. 법흥사가 자리한 사자산 기슭에서 발원해 요선정을 거쳐 주천강에 합수되는 법흥계곡이 이 일대의 대표적인 계곡. 1급수에서만 산다는 옆새우, 열목어 등도 이곳에서는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물이 깨끗하다는 수많은 계곡을 만나봤지만, 법흥계곡 상류의 계류는 유난히 맑고 투명하다. 바닥의 바위가 흰색이기 때문이다. 주민들은 이곳의 물은 식수로도 사용할 수 있다고 한다. 법흥계곡은 물놀이나 야영을 즐기기에 천혜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법흥사 적멸보궁 입구의 장대한 소나무.

최상류의 계곡인데도 물살이 느릿느릿하고, 군데군데 깊지 않은 소가 형성돼 있다. 계곡 양쪽의 울창한 소나무 숲은 8월 하순의 제법 따가운 햇볕을 막아준다. 주천강의 또 다른 지류인 엄둔계곡에는 꺽지, 쏘가리, 피라미, 버들치, 쉬리 등이 산다. 엄둔계곡에서 강태공이 유난히 눈에 많이 띄는 것도 이 때문일 게다.

가는 여름을 아쉬워하는 걸까. 해는 뉘엿뉘엿 서산으로 넘어가고 빗방울도 떨어지기 시작했지만, 낚시대를 드리운 휴가객은 좀처럼 자리를 뜨지 못한다.

영월 주천강은 1989년 포장도로가 연결되기 전까지는 외부에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90년대 들어 동강과 서강의 절경, 유적지가 여행지로 개발되며 이와 인접한 주천강도 도시인들에게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몇년 전부터 크고 작은 오토캠핑장과 야영장이 들어섰으며, 최근에는 각종 박물관과 미술관도 잇따라 생기고 있다. 주천강 일대는 지난해 8월 한우를 싸게 먹을 수 있는 다하누촌이 들어서며 미식여행지로도 주목을 받고 있다.

# 박물관 천국인 주천강과 서강

주천강에서 서강 쪽으로 내려오면 서면 옹정리 선암마을의 한반도 지형, 단종의 능묘인 장릉, 소나기재 정상 부근의 거대한 선돌, 단종의 유배지였던 청령포 등 영월 서쪽 지방의 대표적인 여행명소를 만나게 된다. 이들을 둘러본 후에는 박물관과 미술관을 여행 테마로 삼아도 좋을 듯싶다.
◇다하누촌.

주천강과 서강 주변에도 동강 못지않게 최근 독특한 빛깔의 박물관과 미술관이 속속 들어서고 있다. 지난해 5월 요선정 근처에 문을 연 ‘호야 지리 박물관’(033-372-8872/ www.geomuseum.co.kr)은 36년간 학교에서 지리를 가르쳐 온 호야 양재룡(61) 선생이 세운 국내 최초의 지리정보 전문 박물관. 한반도가 섬으로 표시된 1630년대 고지도, 동해가 ‘한국의 바다’로 표시된 1770년대의 고지도 등 지리 관련 희귀 자료 600여점을 모아놓았다.

주천면 판운리의 ‘영월화석박물관’(033-375-0088)은 영월·태백 지역을 비롯해 세계 각지에서 수집한 희귀 화석 320여점을 전시하고 있다. 영월에서 발견된 삼엽충과 암모나이트 화석을 통해 5억년 전에는 영월이 바다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화석박물관 옆의 ‘영월 서강 미술관’(033-375-0077)은 유해랑 작가의 서양화 작품 및 유명 화가의 작품이 전시되고 있다. 스케치 교실, 미술 기초지도 등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두 곳 모두 올 6월에 문을 열었다.

# 한우 싸게 먹을 수 있는 다하누촌

올 8월로 개장 1년을 맞은 다하누촌이 들어선 이후 주천읍내는 주말이면 북새통을 이룬다. 연평균 평일에는 2000명, 주말에는 5000명이 이곳을 찾았다. 다하누촌에서 소고기를 판매하는 정육점은 10곳, 고기를 구워 주는 식당은 모두 38곳이다. 정육점에서 소고기를 사서 식당에 들어가면 1인당 2500원에 상을 차려준다. 정육점에서 1등급 한우 600g에 2만8000원이니 200g에 9000원이 조금 넘는 셈. 식당의 상차림 비용을 감안해도 대도시의 한우 값보다 많이 싸다.

다하누촌에 사람이 몰리자 이와 연계한 다양한 여행 상품도 개발됐다. 다하누촌에서 한우를 즐긴 후 청령포, 동강 어라연 등 인근 여행지를 둘러보는 상품을 하나투어 등 여러 여행사에서 판매한다. 다하누촌을 방문한 후 주변 펜션에 묵거나 동강 래프팅을 즐기면 할인 혜택도 받을 수 있다.

≫여행정보

중앙고속도로 신림나들목에서 빠져나와 우회전해 88번 국도를 타고 직진하면 주천면이다. 법흥계곡 주변에 펜션과 민박집이 많다. 법흥계곡 최상류에 자리한 ‘청송가든 펜션’(033-374-8146)은 숙소 바로 옆에 계류가 흐르고, 송림이 우거진 넓은 잔디밭도 갖추고 있다. 주천강 일대의 별미로는 꼴두국수가 있다. 신일식당(033-372-7743)이 유명하다. 꼴두국수는 4500원, 메밀막국수는 5000원. 다하누촌(www.dahanoomall.033-372-0121), 주천면사무소.(033-372-8001).

영월=글·사진 박창억 기자 daniel@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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