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지도는 우리의 현재를 비춰 주는 거울이자 미래의 방향을 제시하는 역사의 지침이라며 사료 수집에 평생을 바친 이가 있다. 혜정박물관 관장을 맡고 있는 경희대 김혜정(62) 석좌교수. 최근 일본이 독도가 자기 땅이라며 교과서에 기술하고 제국주의 야욕을 드러내는 가운데 영토 및 영해에 대한 우리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차곡차곡 학술적 근거자료를 축적하고 있는 김 교수를 경희대 수원교정에 자리 잡은 혜정박물관에서 만났다.“고지도는 국가의 정체성 및 역사성을 바로 잡는 데 매우 중요한 근거자료가 됩니다. 고지도 연구를 강화해 역사 왜곡에 맞서야 해요.”
고지도 수집과 연구에 밤늦도록 박물관의 불을 밝히고 있는 ‘역사 지킴이’ 김 교수는 “‘독도=한국 땅’임을 밝히는 데 가장 효과적인 증거물은 바로 고지도”라고 강조한다.
“지도에는 지리적인 정보뿐 아니라 그 당시 역사적 인식의 결과가 녹아 있습니다. 서양에서 제작된 고지도를 살펴보면 동해는 17세기 중반부터 ‘동방해’ 또는 ‘코리아해’로 표기돼 있어요. 그러나 19세기 중반부터 국제사회에서 일본의 세력이 커지면서 ‘일본해’로 바뀌고 우리의 국권이 침탈된 20세기 초반부터는 일본해로 굳어진 거지요.”
김 교수는 일본에서 대학시절 한 고서점을 들렀다가 우연히 고지도를 본 것이 지도 수집의 계기가 됐다고 한다. 그는 “고지도의 아름다움에 빠져 처음엔 호기심으로 수집했으나 점차 지도의 학술적 가치를 깨닫고 한 장 한 장 모으기 시작했다”고 당시의 기억을 떠올렸다.
그는 세계 곳곳을 뒤지며 발품을 팔아 지도를 모았고 요즘도 귀중한 고지도가 있다면 어디든 찾아간다.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유명한 외국의 고서점과 경매장을 거의 다 둘러봤을 정도다.
“한 장의 지도를 얻기 위해 같은 곳을 수차례 방문했는데 갈 때마다 지도 값이 껑충 뛰어 결국 사지 못한 경험이 있어요. 가치 있는 자료를 확보하는 것은 정말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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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2년쯤에 제작된 해좌전도. |
일본은 1905년 ‘시마네현 고시’를 통해 이미 100여년 전부터 독도가 자기네 영토라고 우기면서 자료를 확보하고 있다며 우리도 흥분만 할 게 아니라 과학적, 학문적 영유이론을 뒷받침할 만한 자료를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김 교수는 또 사회복지법인 원장을 맡아 장애아들의 ‘대모’ 노릇을 하고 있다. 일본에서 태어나 도쿄에서 성장한 그는 도쿄공립여대 문학부를 졸업하고 일본에서 마케팅연구소와 입시학원을 경영했다. 그러다 1985년 일본 생활을 청산하고 한국으로 들어왔다. 할머니의 고향인 제주에서 뭔가 의미 있는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에서 보따리를 싼 것이다.
2년 후 제주도에 정신지체장애 아동을 위한 사회복지법인 ‘혜정원 아가의 집’을 세웠다. 그는 몽골의 국립보육원 원생 150여명에게 지속적인 후원을 하는 등 어린이들에 대한 깊은 애정을 보여주고 있다. 이런 공로로 몽골에서 대통령 최고문화훈장(1991년)을, 한국에서는 자랑스런 제주인상(1999년)을 받기도 했다.
“‘정신지체 아동의 어머니’라는 말을 들을 때 인생 최고의 훈장을 가슴에 단 느낌입니다. 할머니 고향에서 눈을 감을 때까지 이들의 어머니로 살고 싶을 따름입니다.”
그는 동국대 교수를 거쳐 가치 있는 문화유산을 사회에 환원하겠다는 마음으로 자신의 목숨과도 같은 고지도를 2002년 경희대에 기증해 혜정박물관을 설립했다. 우리나라는 물론 세계 첫 고지도 전문박물관이 탄생한 것이다. 여기에는 그가 35년 동안 수집한 15∼20세기 동·서양 고지도와 및 지도첩, 고지도 관련 사료 등 1000여점이 전시·보관돼 있다. 이는 300여점의 고지도 및 관련 사료를 소장한 영국의 대영박물관, 140여점을 소장 중인 미국 남가주대(USC)를 훨씬 뛰어넘는 세계 최대 규모이다.
이 가운데 1595년 벨기에서 제작된 일본열도, 우리나라를 한반도로 표기한 1655년의 중국지도첩 등은 세계적으로도 귀중한 사료로 평가받고 있다. 특히 독도와 동해가 수백년 전부터 한국 영토로 표기됐음을 여러 지도에서 확인할 수 있다. 1737년 프랑스의 당빌이 제작한 지도에는 당시 중국식 발음으로 독도(Tchian-chan-tao)가 동해안 바로 옆에 명확히 표시돼 있다. 1705년 프랑스의 드릴, 1794년 영국의 던이 제작한 지도에도 동해가 ‘MER DE COREE’와 ‘COREAN SEA’로 각각 적혀 있어 서양인들이 동해를 한국의 영해로 일찌감치 인정했음을 알 수 있다. 그는 일본의 왜곡된 행태를 바로잡기 위해선 장기적인 계획을 갖고 의연하게 대처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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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의 옛 명칭인 ‘于山(우산)’이 동그라미 안 오른쪽에 울릉도와 함께 그려져 있다. |
“고지도에 대한 연구를 위한 연구센터 및 정보센터와 현재 운영 중인 혜정박물관과 같은 고지도 수장 기관이 더욱 확대되고 새로운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적극적인 대책이 강구됐으면 합니다.”
그는 정부가 지도 제작자에 대한 경제적 지원뿐 아니라 연구에 대한 지원을 체계적으로 진행했다면 우리 역사의 모습이 지금과는 다르지 않았을까 생각한다고 말한다.
“우리나라가 명확하게 영유권을 가지고 있는 독도에 대해 역사적인 사실을 무시하며 저지르는 일본의 행동은 마치 ‘남의 부인을 자기 아내’라고 주장하는 것과 같습니다. 무엇보다 역사적 증거를 발굴해 널리 알리면 일본 쪽의 입장도 바뀌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고지도는 자신의 영혼이고 삶의 전부라는 김 교수. 독도가 우리 땅이라는 증거는 고지도를 비롯한 수많은 문헌에 남아 있기 때문에 일본의 망언에 일일이 대응할 필요조차 없다지만 그의 눈은 일본의 역사왜곡을 바로잡으려는 비장함으로 가득했다.
글 황온중, 사진 이제원 기자
ojhwang@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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