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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현 기자의 대중과 소통하는 학자들] (6) 이정우 철학아카데미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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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0-02-01 15:41:41 수정 : 2010-02-01 15:4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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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아탑’ 밖으로 꺼낸 철학, 대중의 삶을 풍요롭게 하다
◇이정우 철학아카데미 원장은 “철학적인 교양이 있어야 삶을 전체적으로 조망하고 비판적 사고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송원영 기자
 우리처럼 동질성과 집단적인 소속감에 의미를 부여하는 사회도 많지 않다. 타인이 내놓은 ‘다른 것’도 ‘틀리다’고 정의하는 것이 예사다. 특정 사건이나 현상에 집단적으로 강도 높은 반응을 보였다가 시간이 지나면 아무 일도 기억하지 못하는 ‘메멘토’ 혹은 ‘망각증’도 자주 포착된다.

이 때문에 우리에게는 ‘냄비 근성’ 혹은 ‘철학의 빈곤’이라는 관형어가 낯설지 않다. 거울에 비친 우리의 모습이 안쓰러워지는 까닭이다. 철학과 사고의 토대가 튼실하다면 거치지 않아도 될 과정인 셈이다.

다행히 108년 만에 동양에서 처음 열려 지난 5일 폐회된 세계철학대회를 통해 철학적 사고의 중요성이 다시금 인식됐다. 12일 밤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철학대회 평가회에서 주최 측은 “올림픽에 버금가는 관심을 보여줬다”며 언론과 독자들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10년 전부터 철학의 대중화에 기여하고 있는 이정우(49) 철학아카데미 원장을 만나기로 한 것은 철학대회 기간 중이었다. 이 원장은 1998년 ‘대중과 철학적 교감’을 넓히기 위해 서강대 철학과 교수직을 버렸던 당시만 해도 ‘희한한’ 학자였다.

이 원장을 만나는 과정은 녹록지 않았다. 그의 바쁜 일상 때문에 약속이 몇 차례 연기됐다. 결국 11일에야 서울 중구 장충동을 찾았다. 철학아카데미가 인사동 시대를 거쳐 장충동에 보금자리를 틀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그곳에서 만나기로 했다.

그러나 철학아카데미 명칭이 장충동과 동교동에서 동시에 사용되고 있어 불러일으킨 착오였다. 장충동에는 여전히 재단법인 철학아카데미가 있었지만, 그는 이미 1년 전 동교동으로 자리를 옮겨 철학아카데미를 연 상태였다. 사진기자와 함께 동교동을 다시 찾은 뒤에야 그 배경을 듣게 됐다.

“철학아카데미를 여러분과 함께 운영했다가 지금은 혼자서 하고 있지요. 둘 다 철학아카데미이지만 동교동이 본류이고, 장충동은 재단법인 형태로 돼 있지요. 장충동에 남아 있는 분들이 ‘하드웨어’를 그대로 사용하는 셈이고, 저는 동교동에서 대중과 소통이라는 ‘소프트웨어’를 이용하는 셈이지요.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강의 대신에 대학원생 중심의 연구모임이 주축을 이루고 있습니다.”

일반인에게 철학적 사고의 기회를 제공하겠다며 강연 활동에 열심이었던 이 원장이 ‘연구 중심’ 방식으로 돌아간 것이 의아하다.

“학교(서강대)에서 3년, 학교 밖에서 10년 가까이 강의하면서도 마음 한쪽에는 아쉬움이 쌓였습니다. 철학과 고급 교양을 접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좋은 교재가 부족하기 때문이지요. 연구하고 집필하는 과정을 거친 뒤에 다시 할 강의를 위해서도 대학원생들과의 토론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왕성한 사회활동과 생활수준 향상에 따라 발생하는 대중의 ‘철학 갈증’은 이해가 된다. 특히 최근 몇 년 사이에 철학 수요가 크게 늘어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간명하지만 현답이 나온다.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인문사회계 학문에서 철학의 위치는 이공계 학문의 수학의 자리와 비슷할 겁니다.”

수학과 비교를 통해 철학 갈증 증가를 설명하는 답변으로는 충분하지 않은 것 같다. 수학 공부 갈증을 호소하는 일반인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철학만이 삶에 줄 ‘뭔가’가 있을 법하다. 재차 그 이유를 물었다.

“철학은 부분적인 지식을 넘어서 삶 전체를 보게 합니다. 더구나 지금은 사회가 더 복잡해지는 21세기입니다. 이런 때일수록 현상을 비판적이고 종합적으로 바라보는 안목이 필요하지요. 21세기야말로 개념화하고 이론화하는 작업이 중요한 때입니다. 철학은 메타적인 학문이기도 하지요. 예컨대 역사학자가 특정 사건을 논하면서 역사와 사회, 행위자와 당시의 사회구조를 복합적으로 살펴보는 게 메타적인 것이지요.”

이뿐이 아니다. 한때는 철학이 대학의 교양필수 과목이었지만 최근에는 교육현장에서 철학교육이 사라져 ‘지적인 수요’를 감당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예전에는 고급 학문을 하려면 대학에서나마 철학 공부를 해야 했지요. 하지만 지금은 숫제 철학 과목이 사라졌어요. 성인이 돼서 철학적 사고의 중요성을 뒤늦게 자각하지만 길이 없는 상황입니다. 교육을 통해 공부하지 않았으니 막막함이 더 심해집니다.”

철학의 필요성과 갈증 사이의 공백을 메우는 제도 개선 주문 목소리가 이어진다. 오랫동안 생각하고 고민했던 듯 “수학 수준은 아니더라도 배움의 현장에서 철학 과목이 부활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초등학교의 고전철학을 시작으로 중학교의 근대철학, 고등학교의 현대철학으로 철학 학습의 바탕을 마련하자는 제안이다. 이 과정을 거친 성인이라면 ‘철학의 판’을 파악해 종합적인 사고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미 학교 현장을 떠난 일반인들은 ‘철학사’부터 차분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철학은 주관적이다’는 잘못된 인식을 버리고 차분하게 공부하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철학은 자신이 좋아하는 철학자부터 접근하거나 선택할 수 없는 학문입니다. 그렇게 공부하면 오류와 덫에 빠지게 됩니다. 철학사와 개론을 먼저 공부해야 자신이 지나는 길을 알게 되지요. 철학은 수학처럼 단계적으로 공부해야 하는 과목입니다.”

요사이 세 권으로 이뤄진 철학 시리즈를 준비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는 ‘지중해 세계의 철학’을 내년의 첫 책으로 목표 삼아 ‘아시아 세계의 철학’과 ‘근현대 세계의 철학’을 연이어 내놓을 생각이다. 신간이 1만권 이상 판매된 ‘개념 뿌리들 1, 2권’ 등과 함께 철학에 목마른 이들에게는 단비가 되길 기대해 본다.

하지만 여전히 철학 과목의 필요성을 자각하는 이들도 소수이고, 철학이 당장 일상생활에 큰 도움이 안 될 수도 있다.

“‘철학이 삶에 도움이 안 된다’는 말에는 ‘돈 혹은 경제적 이득에 도움이 안 된다’는 본 뜻이 숨겨 있지요. 이는 자본주의 이데올로기일 따름입니다. 개인의 삶은 단순히 경제적인 측면에서만 평가할 수 없지요.”

뒤늦게 개인적인 질문을 던져본다. 서울대 공대에 입학했지만 나중에 대학원에서 철학을 공부한 배경을 설명한다.

“사람들을 접하고 인생을 살면서 우리가 편협하다는 생각을 했지요. 다행히 철학 공부 덕분에 다양한 세계를 접하며 최소한의 독해 능력을 길렀습니다.”

대학 교수를 그만둔 10년 전의 선택에 대해서 그는 “교수 사회도 직장이었다”며 “내가 하고 싶은 공부를 마음대로 하고 싶어 캠퍼스 담장을 벗어났다”고 회고한다. 제약을 받지 않고 공부한 지난 10년에 대해서 잘한 선택이었다는 게 스스로 내린 중간평가인 셈이다.

bali@segye.com

■이정우 원장은…

1959년 충북 영동 출생. 동서와 분과 학문을 넘나들며 깊고 풍부한 ‘가로지르기’ 사유를 해오고 있다. 서울대학교 공과대학을 졸업했으나 전공을 바꿔 대학원에서 철학을 공부했다. 미학, 그리스 철학, 프랑스 철학을 연구했으며 미셸 푸코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1998년 서강대 교수직을 스스로 반납하고 2000년 서울에 철학아카데미를 세워 시민들을 직접 만나고 있다.

▷저서◁
‘담론의 공간’ ‘가로지르기’ ‘인간의 얼굴’ ‘접힘과 펼쳐짐’ ‘주름, 갈래, 울림’ ‘사건의 철학’ ‘기술과 운명’ ‘개념-뿌리들’, ‘탐독’, ‘세계의 모든 얼굴’ ‘신족과 거인족의 투쟁’ ‘천 하나의 고원’ 등

▷역서◁
‘철학사전’ ‘시간과 공간의 철학’ ‘지식의 고고학’ ‘생명의 논리’ ‘카타스트로피의 과학과 철학’ ‘의미의 논리’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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