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름 농어는 다른 어류보다 단백질의 함량이 높아 대표적인 보양식으로 사랑받았다. 비타민A·B·D는 물론 칼슘과 인, 철분, 나트륨, 니아신 등도 풍부해 예로부터 몸이 허약한 아이나 산모들이 원기 회복을 위해 많이 먹었다. “7월 농어는 바라보기만 해도 약이 된다”는 옛말도 이래서 생겨났다. 연안 갯바위나 섬 암초밭에서 흔히 잡히는 여름 농어는 다른 때와 달리 가격도 저렴한 편이다.
7월 한 달간 ‘농어 요리 스페셜’을 진행하고 있는 그랜드힐튼호텔 일식당 ‘미쯔모모’의 장철호 조리장으로부터 땀을 많이 흘리는 여름에 특히 좋은 농어 요리에 대해 알아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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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백질과 필수 아미노산이 풍부한 농어에는 철분 흡수를 돕는 비타민C가 함유되지 않아 채소를 넣어 찜을 하는 게 좋다. |
# 벼슬도 버린 천하 별미, 농어
농어는 여름철 우리나라 인근 바다나 강 하구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물고기의 하나다. 입이 크고 온몸에 작은 비늘이 많으며 아래턱이 위턱보다 더 튀어나온 게 특징이다. 농어는 산란기(10월∼3월)보다 여름에 더 맛이 깊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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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어맑은탕. |
장 조리장은 “산란기인 겨울에는 농어가 알을 낳기 위해 깊은 바다로 나가는 데다 모든 영양분이 들어 있는 살이 빠지는 때라 그 맛이 떨어지고 냄새도 달라진다”고 설명했다. 농어는 또 어린 고기(치어)보다는 몸집이 큰 고기(성어)일수록 맛이 더 좋다. 길이 40㎝ 미만의 농어를 농어가 아닌 다른 이름으로 부르는 이유이다. 어린 농어는 깔따구(전남 순천·장흥)나 절떡이(전남 완도), 까지메기(부산 등 경상도) 등으로 불렸다.
깔따구 등이 3년 이상 자라야 비로소 농어란 이름을 갖게 된다. 또 지역마다 이름이 제각각이다. 전남에서는 깔대기나 껄떡으로, 부산에서는 깡다구, 경남 통영에서는 농에, 울릉도에서는 연어병치, 독도돔으로 불린다. 농어(農魚)라는 이름의 유래에 대해 정약용은 ‘아언각비’에서 “한자식 이름인 노어(?魚)를 ‘노응어’라고 한다”라고 적었는데 ‘노응어’가 ‘농어’로 바뀐 것으로 추정된다. ‘자산어보’에서는 ‘걸덕어’로, ‘난호어목지’에서는 ‘깍정’이라고 불렀다.
농어에 관한 일화 중 가장 유명한 것은 ‘오중노회’(吳中?膾)다. 중국 동진 시대 장한이란 선비가 낙양에서 큰 벼슬을 하고 있었는데 어느 여름날 문득 고향에서 맛봤던 농어회가 생각나 벼슬을 관두고 낙향했다는 이야기다. 장한은 사직서를 내면서 “인간의 삶 가운데 가장 귀한 것은 자신의 뜻과 마음에 따르는 것인데 어찌하여 관직에 얽매여 수천리 밖에서 명예와 관직을 구하겠는가”라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 오장을 튼튼하게 하는 음식
한방에서는 농어를 오장을 튼튼하게 하는 대표 음식으로 꼽는다. 허준의 ‘동의보감’에는 “농어는 성질이 평(平)하고 맛이 달(甘)며 독이 약간 있다. 오장을 보(補)하고 장위를 고르게 하며 힘줄과 뼈를 튼튼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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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어튀김. |
회를 쳐 먹으면 더 좋은데 많이 먹어야 한다”고 기록돼 있다. ‘식료본초’는 농어가 안태(安胎·태아가 움직여서 임신부의 배와 허리가 아프고, 낙태의 염려가 있는 것을 다스려 편안하게 하는 일), 보태(補胎·임신한 여자의 원기를 보하여 줌)의 효과가 있다고 봤다.
하혈하는 임산부, 특히 초산부에게 농어의 비늘만 떼고 내장째 넣어 시원한 국을 만들어 먹이면 지혈과 안정 효과를 볼 수 있다고 했다. 몸이 허약한 아이에게 농어탕을 끓여 먹이면 비위와 간, 콩팥이 튼튼해진다고도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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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게알·명란젓 소스를 곁들인 농어구이. |
흰살 생선으로 비린 맛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 농어는 부드러운 데다 소화가 잘돼 환자나 노인들이 먹기에도 적합하다. 점막을 튼튼하게 하는 비타민A와 비타민B·니아신·칼슘 등의 흡수를 돕는 비타민D가 많고 노화 예방에 효과적인 비타민E가 적절하게 들어가 있다. 특히 각종 필수아미노산과 불포화지방산인 EPA(오메가 3 지방산)나 DHA(물고기 기름 속에 존재하는 w-3-지방산)이 다량 함유돼 있다.
미꾸라지 등 강가에 사는 생선과 마찬가지로 농어에는 빈혈 예방과 치료에 좋은 철분도 많다. 하지만 철분 흡수를 돕는 비타민C는 들어있지 않아 반드시 비타민C가 풍부한 무채 등 채소와 곁들이거나 레몬즙을 뿌려 먹어야 한다는 게 장 조리장의 조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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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어 튀김을 넣은 메밀국수. |
# 쫄깃쫄깃한 맛 즐기려면 찬물에 씻어야
성어가 맛이 좋은 농어는 무게가 2㎏는 넘어야 특유의 담백한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 장 조리장은 “지방이 많은 편인 농어를 얇게 썰어서 얼음물에 씻으면 기름기가 빠져 느끼한 맛은 없어지고 쫄깃쫄깃한 맛은 더욱 살아난다”고 설명했다. 그는 흰살 생선회의 담백한 맛을 최대한 즐기기 위해서는 농어의 붉은 살 생선을 나중에 먹는 게 좋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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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어를 회로 먹을 때는 얼음물로 살짝 씻어야 느끼함이 사라지고 쫄깃쫄깃한 맛이 살아난다. |
농어 맑은탕은 원기가 떨어지기 쉬운 여름에 채소와 함께 먹을 수 있어 더욱 좋은 조리법이다. 다시마 국물에 신선한 농어 살과 배추, 두부 그리고 중합을 함께 끓여 먹으면 된다.
다소 작다 싶은 농어는 비늘과 내장을 제거한 후 소금을 뿌리고, 약간 적신 한지에 싸서 구워 먹으면 좋다. 비타민D가 풍부하게 들어 있는 껍질을 태우지 않아 고유의 영양소가 그대로 살아 있을 뿐만 아니라 태울 때 염려되는 발암물질도 생기지 않기 때문이다. 농어는 찜과 탕으로도 많이 먹는다.
송민섭 기자 stsong@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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