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닷컴] '국내 비디오자키(VJ) 1호라는 타이틀을 갖고 있다는 것은 큰 의미를 지닌다. 국내에 최초로 VJ콘테스트가 열렸던 1994년 엠넷에 의해 뽑힌 인원은 6명이다.(그 중 현재 방송에 출연하고 있는 유일한 사람은 엠넷와이드뉴스를 진행하고 있는 이기상씨다) 모두 최고의 교육을 받았지만 그 안에서도 경쟁이 심했다. 시간이 흘러 그 경쟁을 통한 우열의 관계가 생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대중에게 '최할리'란 이국적인 외모의 20대 중반의 한 여성은 'VJ'라는 신세대 직업군과 동일한 존재로 대접받는다. 이후 장장 5년간 그녀는 국내 최초·최고의 VJ로 활약하게 된다. 그러나 결혼과 함께 VJ를 떠나게 되고 실질적으로 10년간 그녀는 'VJ'라는 딱지를 자신에게서 뗐다.
"사실 VJ라는 것은 제가 일을 그만둔 그 시점에서 없어졌다고 봐야되요. 당시에 엠넷을 처음 만든 사람들의 경우에는 해외에서 생활을 해보던 사람들이라 VJ에 대한 개념이 있었어요. 케이블방송국도 한국에 원래 방송국 분위기와 많이 달랐고요. 디지털기기들도 한국에서 다룰 수 있는 사람들이 거의 없어서 일본에서 사람들이 와서 교육을 시켰고요. 아무튼 투자를 많이 했죠. 그런데 그것이 다른 회사로 넘어가면서 그런 케이블방송 문화에 대한 마인드가 없어졌어요. VJ를 채용할 때도 학연 등이 작용하기도 했고요. 그런 문화를 전 잘 몰라서 조금씩 엠넷에서 발을 뺀 것이기도 했죠"
최할리는 VJ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다. 초창기 어렵게 교육받고 방송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했기에 그러한 자부심은 쉽게 이해가 갔다. 그런 그녀가 지금은 VJ가 없다고 말한 것은 처음에는 의아했다. 그러나 그녀는 자기만의 개성을 가지며 무엇인가를 바꾸려고 한 과거의 VJ와 너무 많이 달라진 지금의 모습을 인정하지 않았다.
"VJ들이 단순한 리포터 취급받는 것 안타까워"
"케이블 음악프로그램에 출연하면 모두 다 VJ라고들 하더군요. 그런데 VJ가 무슨 미스코리아도 아니고 외모만 보고 방송에 나오더군요. VJ는 본인의 개성을 가지고 본인의 프로그램을 만들어가야하는데, 지금은 어떤 프로그램이 만들어져서 거기에 맞는 VJ가 들어가고 있죠. 예를들어 제가 노홍철씨를 VJ를 인정하지않는 이유는 그냥 만들어진 프로그램에 노홍철씨가 들어갔기 때문이죠. 노홍철씨가 만든 것이 아니고 그냥 만들어진 프로그램에 본인의 방식대로만 진행해버린거죠. 그런게 아쉬워요. 또 과거에는 VJ가 프로그램을 만들 때 주도를 했죠. 그러다보니 VJ가 섭외도 하고, 기획도 했으니까요. 물론 당시에는 케이블방송 PD들이 힘이 없어서 섭외가 힘들었고, 매체력보다는 개인 인지도로 방송을 하는 것이 더 많았죠"
이어 그녀는 현재 VJ가 단순하게 리포터 취급 받는 것에 대해서도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그러면서 동시에 그 원류를 자신이라고 지목했다.
"요즘 VJ들은 리포팅을 많이 하죠. 처음에는 그게 제일 안타까웠어요. 왜 리포터 취급을 받을까. 그런데 생각해보면 제가 잘못했다고 생각해요. 90년대 중반 당시 연예정보프로그램에서 해외 가수들이나 연예인들이 한국에 들어오면 인터뷰할 사람이 저밖에 없었던 것 같아요. 영어가 되는 방송 인력들이 대부분 아나운서들밖에 없는데 당시 아나운서들이 그런 것을 할리가 없었고, 재치가 있는 타 분야 사람들은 영어가 안되고요. 이거 재고 저거 재고 하니 저 밖에 안 남더라고요. 그래서 한국에 오는 해외 가수들 다 만났어요. 김대중 전 대통령 취임식때 입국한 마이클잭슨까지 인터뷰했으니까요. 그러는 와중에 어느 때부터인가 국내 연예인도 인터뷰를 해달라고 연락이 오는거에요. 생각해보면 지금 하는 리포팅의 모습이 그때 정형화된 것 같아요."
최할리가 VJ에 대해 갖는 자부심은 당시 VJ에 대한 교육이나 사회적 인식이 지금과 엄청나게 차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대다수의 VJ들이 연예계 지망생들이나 외모가 뛰어난 모델들 중에 '말빨'이 되는 사람들이 활동하며, 그 숫자조차 가늠하기 어렵게 많지만 당시 VJ 교육은 현재 아나운서 교육 저리가라할 만큼 철저했다.
"당시 뽑힌 6명 중 4명이 유학파로서 저희가 알려지면서 자연스럽게 신종직업 VJ가 생겼죠. 1994년 9월에 뽑혀 엠넷이 개국하는 1995년 3월까지 각계 각층의 명사들을 모시고 교육을 받았죠. 매일 아침 9시에 출근해서 4~5시까지 교육을 받았어요. 재즈, 팝, 락 등 다양한 음악장르를 대표하시는 분들이 오셔서 교육을 하셨고, 메이크업이나 헤어, 아나운서 실습, 연기, 발음, 방송이론 교육도 받았죠. 또 일본 NHK에 견학과 실습을 가서 저희보다 일찍 케이블방송을 시작한 일본을 배우기도 했죠. 그리고나서 귀국을 하니 그 사이 저희는 유명해졌고 인터뷰가 하루가 모자를정도로 잡혀있었죠. 공중파에서도 섭외가 왔지만, 저희가 케이블을 고집한 것은 VJ라는 직업에 대한 자부심과 더불어 다른 연예인과 차별화하고 싶은 초창기 VJ로서의 자존심같은 거였죠. 지금 되돌아봐도 방송가에서 그 흔한 반말 한번 들어보지 못하고 방송했던 그 시절에 감사하죠"
"과거 재키림과 비교되는 것 속상해"
최할리의 말에 따르면 초창기 VJ들의 자존심이 흔들리기 시작한 것은 경쟁 케이블방송국이었던 KMTV에서 예비연예인들을 VJ로 내세워 방송을 시작하면서였다. KMTV 소속 VJ들이 공중파로 나가면서 이들 엠넷소속 VJ들과 종종 비교가 되기도 했다. 마약 상습 흡입으로 구속된 재키림이나 방송가에 진출해 활동하다 최근 모습을 보이고 있지 않는 이본 등이 KMTV 출신 VJ들이다.
"한번은 KMTV 개국 축하쇼가 있는데 와서 노래를 해달라고 하는거에요. 그때 재키림씨와 같이 무대에 세우고 더블로 노래를 부르게 하는 등 은근히 저랑 계속 라이벌 구도를 만들었죠. '전 엠넷이라는 회사 직원이고, 재키림씨는 연예인입니다'라고 말을 해도 계속 비교를 하시더라고요. 급기야는 재키림씨가 공중파에 진출하고 나서는 재키림은 잘 나가서 공중파하고 최할리는 못나가서 케이블에 있다고도 말하더라고요. 제가 아니라고 고집 피워봐야 대중들은 그렇게 받아들이지 않는거에요."
그러던 그녀도 결국 공중파에 진출하게 된다. 그녀의 인지도를 통해 방송을 살려보자는 PD들과 주변 인맥이 큰 작용을 했다. 그렇게 해서 선 것이 SBS '충전100%'라는 가요프로그램이었다. 안재욱, 이주노 등과 함께 무대에 올랐다. 그리고 나서 라디오DJ 등으로도 그 폭을 넓혔다. 그러나 그녀는 VJ가 마치 공중파로 진출하기 위한 일종의 거치는 과정으로 인식되어지는 것에 대해서는 현실을 인정하면서도 탐탁치 않게 여겼다. VJ는 음악방송을 위해 만들어진 직업이고, 음악의 전문성을 담보해야 하기에 대중적인 캐릭터를 만들어내야 하는 공중파로 간다는 자체가 이상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그녀는 아이러니하게 이런 분위기에 대해 초창기 VJ들이 만들어낸 이미지에 대해 자랑을 늘어놓았다.
"공중파든 케이블이든 VJ 출신이라고 많이들 말하는 것을 보면 과거에 VJ이미지가 참 좋았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요. VJ라는 타이틀을 달고 연예계에 진출하려고 하는 것을 보면요. 그러나 요즘 VJ들이 하는 것을 보면 눈이 찌푸려지기도 해요. 방송이라는 것이 막하는 방송하고 자유롭게 하는 방송이 차이가 있거든요. 제가 방송을 할 때 양반다리하고 방송을 한 적이 있는데 심의위원들이나 PD들이 난리가 났어요. 당시에는 방송에서 얌전하게 여자들이 앉는 방법이 있었으니까요. 그러나 양반다리 했다고 눈이 찌푸려지지는 않잖아요. 그런데 요즘은 너무 많은 거 같아요"
"마니아 위한 음악채널 만들 것"
90년대 VJ에 대해, 그리고 지금의 방송에 대해 많은 것을 직설적으로 풀어놓았지만 그녀의 현재 직업은 VJ출신 아내이자 두 아들의 엄마다. 그녀는 결혼 후 미국으로 건너가 자신에 대한 근거없는 루머들을 듣고 아이들이 그런 내용에 연관되는 것이 싫어 옛날 자신에 대한 자료들도 다 없애고 방송에 미련을 두지도 않았다.
"시댁이 방송이랑 거리가 멀고 제가 결혼도 동료 연예인도 잘 모르게 빨리 진행하다보니 희한한 소문도 들었죠. 외국에 있으면서 인터넷에 들어가보니 최할리가 미혼모라더라, 미국에 숨겨놓은 아이가 있다더라는 식의 글도 뜨고, 저랑 재키림씨랑 혼동해서 마약한 후에 미국에 와 있다는 내용도 나오더라고요. 그런 것들과 아이들을 연계시키기 싫었어요. 그런데 요즘은 첫째 아들 (9살)이 제가 과거에 무엇을 했는지 알게 되었어요. 지금 국제학교에 다니는데 다른 아이들의 학부모들이 '저 아이가 최할리라는 방송 스타 아들이다'라고 외국인선생님들에게 말하고, 외국인선생님들이 제게 'TV스타였냐'라고 물어보더라고요"
그녀는 향후 대학에 진학해 공부할 예정이라고 한다. 물론 아이들의 교육과도 연계되는 부분이 있지만 스스로도 공부에 대한 욕심을 감추지 않았다. 그렇다고 그녀가 교수로 서거나 할 생각은 아니었다. VJ로 컴백할 의향이 있냐고 묻자, 돌아온 그녀의 답변은 딱 '최할리'다웠다.
"제가 스튜디오 하나 차려서 음악 채널 만들려고요. 요즘은 인터넷 스튜디오 만드는 데 얼마 안 들어갔다고 들었거든요. 그래서 저는 마니아들을 위한 음악만 전문적으로 하는 채널을 만들려 합니다. 예나 지금이나 전문성을 요구하는 젊은이들은 많다고 봐요. 음악뿐 만 아니라 그들의 생활을 알려주려 해요. 예를 들어 락을 이야기할 때 꼭 음악만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고, 락을 하는 사람들의 생활이나 문화, 사람 모든 것을 락적으로 느껴지는 사람을 락가수이고 락마니아라고 하잖아요. 음악만이 아닌 음악에 관한 무궁무진한 이야기를 다룰 음악 채널을 만들겁니다. 물론 지금은 가정의 CEO니까, 이 일에 충실하려고요"
/ 유명준 기자 neocross@segye.com 사진 박효상 기자 photo_p@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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