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말을 조리 있게 잘해 요직에 발탁되는가 하면, 말 한마디로 화를 자초해 정부 고위직에서 물러나는 경우를 본다. L의원은 말을 잘해 금배지를 단 대표적인 예다. 과거 총선에서 낙선한 그는 당 지도부와 간담회를 하는 자리에서 특정 지역의 출마자가 겪는 어려움과 소외감을 하소연했다. 당 지도부는 논리정연한 그의 발언을 수긍함은 물론 상대방을 설득하는 말솜씨에 감동했다. 단번에 당 지도부의 마음을 사로잡은 그는 핵심 당직에 발탁됐고, 그 후 자신의 소원대로 국회 진출에 성공했다. 반대로 천신만고 끝에 정부 고위직에 오른 S씨는 말실수 탓에 하루아침에 야인 신세로 전락했다. 과거 정부에서 잘나가던 그는 기자들과 저녁식사를 하면서 전·현 정부의 도덕성을 비교하면서 전직 대통령의 비자금을 언급한 것이 화근이 됐다. 다음날 조간신문에는 전날 밤 그가 한 말이 고스란히 보도됐다. 엄청난 파문이 일었고, 그는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
대다수 의원은 기자들이 짓궂은 질문을 하면 버럭 화를 내는 등 감정을 드러낸다. 성정 급한 이는 한발 더 나아가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며 발동이 걸린다. 중진 K 의원은 성이 나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다. 김종필 전 자민련 총재는 미묘한 현안에 대해서는 입을 굳게 다문다. 기자들의 집요한 질문에도 꿈쩍도 않는다. 한나라당 강재섭 대표가 최근 “ ‘말이 곧 사람의 인격’이다. 말을 잘 쓰면 명약이 되지만 잘못 쓰면 독약이 될 수 있다”며 소속 의원에게 말조심을 당부했다고 한다.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다고 우려한 때문일까.
황용호 논설위원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