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가 지네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소름 끼칠’ 정도로 다리가 많고, ‘스멀스멀’ 걸으며, 강력한 독에 물릴 수 있으니 보는 족족 에어로졸로 죽여야 한다는 정도. 흉측한 외모와 치명적인 독으로 지네는 동서고금을 통틀어 ‘괴물’로 통했다.
하지만, 지난 1년3개월간 지상 1㎝ 높이에 초정밀카메라렌즈를 들이대 온 제작진은 지네를 ‘우리가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잘못 알고 있는 모든 불쾌한 생물들의 이름’이라고 단언한다. 지네에게서 혐오감을 느낀다면 이는 주로 어둡고 음산한 곳에서 발견된다는 것과 마디마다 한 쌍씩 달린 수십 개의 다리, 작은 도마뱀 하나쯤은 너끈히 죽일 수 있다는 독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철갑을 두른 듯한 지네 몸 껍질은 실제로는 매우 연약하다. 체내 수분을 스스로 유지하지 못해 잠깐이라도 습기가 없으면 숨구멍이 막히거나 말라서 죽을 운명이다. 습한 곳에서 지네를 많이 만나고 지네 눈이 퇴화한 이유이다. 머리에 붙어있는 한 쌍의 더듬이가 눈 역할을 한다.
제각각 움직이는 위압적인 다리와 가장 앞의 몸마디에 붙어있는 턱다리 발톱에서 나오는 독은 하루에도 몇 번씩 치명적인 적들과 맞닥뜨리는 지네가 택한 생존무기. “상대가 아무리 강해도 목숨이라면 함부로 내주지 않는다”는 게 지구 모든 생물의 본능일 터. 새처럼 날개를 달지 못한 지네는 어떤 방해물이 나타나더라도 이를 극복할 수 있는 재빠른 다리와 유연한 마디를 가졌다. 최근 미국 펜실베이니아 대학 연구팀은 지네의 이동원리를 응용한 로봇을 개발해 행성 표면 탐사 등에 사용할 계획이다.
‘하늘다람쥐’ ‘담비’ ‘바이러스’ ‘밀거래되는 야생동물’ 등 비주류 생물들의 생태를 카메라에 담아온 이연규 PD는 “자신의 한계를 벗어 1㎝ 세계의 절대강자가 된 지네의 삶을 세계 최초로 만나보는 것만으로도 방송 50분이 후회되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송민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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