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닷컴] '가야금을 들고 트로트를 부르는 쌍둥이 자매 가야랑'. 국내 최초와 국내 유일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는 그녀들은 어지간해서는 독보적인 존재들로 남아있을 듯 싶다. 쌍둥이 자매라는 것은 따라할 수 있는 이들이 꽤 되지만, 이들의 가야금 솜씨와 열정을 그대로 따라하기에는 힘들 듯 싶기 때문이다.
언니 이예랑과 동생 이사랑으로 구성된 '가야랑'은 단순히 '가야금'과 '트로트'를 결합시킨 것이 아니다. 흔히 말하는 퓨전이나 크로스오버라는 말에 대해서도 정색했다. '접목'이 아닌 '활용'이라는 말로 이들은 자신들의 음악 정체성에 대해 이야기했다.
"거창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저희는 '대한민국 가야금 1호 가수'라는 생각으로 나왔어요. 가야금의 대중화를 고민할 때 사람들은 퓨전이나 크로스오버를 생각하지만 그것은 국악의 둘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도리어 국악이라는 색깔만 더 진하게 만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전 그렇게 대중화하면 안된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우리는 국악의 대중화, 국악의 퓨전이 아니라 가야금을 아예 들고 밖으로 나와서 대중속으로 우리가 들어가는 작업을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퓨전, 접목, 트로트와의 만남 등 이런 것이 아니라 통기타 가수가 통기타를 들고나오면 어색함이 없듯이 저희도 가야금을 들고나와도 어색하지 않는 상황을 만들고 싶어요. 가야금으로 어떤 노래든 연주할 수 있도록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은거죠" (이예랑)
언니 이예랑의 자신감은 이미 가야금을 통해 '국가대표급' 수준을 지녔기 때문에 가능하다. 한국예술종합학교 대학원 석사에다 2005년 제15회 김해 전국가야금대회에서 가야금 산조로 최연소 대통령상을 수상했다. 그러나 이것때문에 가수로 나오기까기 고민이 많았다.
"작곡가 정의송 선생님이 저희에게 가수 제안을 했을때도 저는 하자고 했는데 언니는 한번에 거절했죠. 그때가 2005년도였는데 당시 언니가 최연소로 대통령상을 수상한 직후였어요. 자신은 한창 주가가 올라갈때였으니 제 말은 들은 척도 안하더라고요" (이사랑)
"가야금이 대중속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것은 늘 고민했지만 다른 쪽으로 생각했죠. 후배인 IS(쌍둥이 세자매가 각각 가야금, 거문고, 해금을 들고나온 퓨전 국악그룹으로 가야랑에게는 한국예술종합학교 후배들이다)보다는 더 업그레이드해서 나아가야 된다고 생각은 했지만 그게 트로트와 접목시킨다는 것은 생각못했어요. 그래서 제안을 1년간 거절했고 도리어 사랑이에게 미쳤다고 말했어요. 나의 예술가로서의 라이프타임이 망가질 수 없다고 생각했죠" (이예랑)
그러나 '국가대표급' 수준의 이예랑은 도리어 동생 이사랑의 가야금 실력을 칭찬하고 나섰다.
"가야금을 극구 거부했던 동생이지만 어릴적부터 계속 악기를 해와서 전공아닌 전공이 되어버렸죠. 가야금을 하는 어머니 밑에서 30년 가까이 살았기 때문이죠. 그리고 어릴 적에는 저보다 저 잘했대요. 가야금을 전공하는 사람들 이상으로 하죠. 며칠전에도 가르쳐 주지도 않은 연주를 하는거에요. 제가 학생들에게 가르칠 때 심혈을 기울여도 안되던 거였는데 말이죠. 그래서 '사랑아 너 어떻게 해'라고 물으니 '몰라 그냥 하는거야'라고 답변하는 거에요. 손이 가는대로 하는 것이었죠" (이예랑)
이들이 태어날 때부터 들은 것은 국악이다. 가야금 연주자이자 후학을 양성하는 변영숙씨가 어머니이고, 거문고 연주자겸 한양대 국악과 교수인 변성금씨와 KBS국악대상 수상자로 '정가'부분의 유명 인사인 변진심씨, 해금연주자이면서 추계예술대 대학원 겸임교수로 재직중인 변종혁 교수가 이들 자매의 이모이다. 그러나 이예랑의 말처럼 이들이 국악집안이라고 해서 고스란히 그 분위기를 순조롭게 이어받은 것은 아니다. 둘 다 너무 어릴 적부터 가야금을 접했기에 도리어 반발심이 일어났고 이사랑은 언니보다 거부감이 더 심했다.
"어머니 이모님 모두가 가야금 선생님이니까 가야금을 어릴 적 장난감 가지고 놀듯이 대했죠. 그런데 우리가 공기의 소중함을 잊어버리고 살아가듯이, 너무 익숙해져 어느 순간부터 가야금을 밀어내기 바뻤어요. 그러다가 고등학교를 올라갈 때 언니는 가야금에 대해 눈을 뜨게 되어 전공을 하게됐고 전 '언니는 가야금하고 난 공부만 할꺼야'라고 했죠. 어머니 딸이고 쌍둥이라서 무슨 축제때나 같이 공연했지, 그 이외에는 전 전공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이사랑)
"국악집안 딸들인 우리조차도 국악에 대한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국악은 어른들이나 하는 음악이고 성적 맞춰 대학 가기 위해 하는 음악이라는 편견에 빠졌었죠. 그러다 전 사춘기때 가야금이란 악기에 빠졌고 동생은 공부(영어학과)만 했죠. 그런데 가야금을 하면 할수록 너무 좋은거에요. 그래서 내가 국악에 대해 가졌던 고정관념을 깼듯이 이런 고정관념을 바꾸는 전도사역할을 해봐야겠구나라는 생각을 하게되었고 여기에 동생을 끌어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죠. 동생에게 남의 나라 말인 영어하지 말고 우리나라 음악이론들을 정리하면 어떻겠냐고 말하면서요" (이예랑)
집안 분위기상 가야금은 자연스럽게 접했다고 할 수 있지만, 이에 트로트를 끌어들인 것은 의외였다. 그런데 '트로트'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자 언니 이예랑이 동생 이사랑을 계속 쳐다봤다. 가야금에 관해서는 언니의 몫이지만, 트로트는 동생의 몫이라는 것이다.
"제가 중학교때 처음 노래방을 갔었는데 그때 부른 노래가 김수희씨의 '멍애'였어요. 그런데 너무 노래가 좋아서 그때부터 노래방에 가면 트로트만 불러요. 지금도 혼자 가서 3시간이상 부를때도 있고요. 어머니는 제가 이렇게 노래방가서 트로트 부르면 창피하다고 꺼버리기도 해요. 결혼도 안한 애가 유치하고 적나라한 노래를 부른다는 이유로요. 그런데 전 그것때문에 좋아해요. 솔직하고 편안한 가사때문이죠. 가야금도 표출의 음악이고 트로트도 적나라하게 표출하는 음악이죠. 그래서 그런 비슷한 음악끼리 만나서 굉장히 조화로운 모습을 보일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이사랑)
"정의송 작곡가의 제안을 거절하다가 어느 날 노래방에 가니 저도 트로트를 하게 되더라고요. 그 맛을 알고나니까 다른 장르는 하기 힘들게 되더라고요. 연주자의 입장에서 모든 장르의 음악은 다 듣는데, 정작 부를때는 트로트만 하게 되요. 그래서 사랑이에게 '네가 왜 이것을 부르는지 알겠다'고 말했더니 사랑이가 '언니가 좋아하는 가야금과 내가 좋아하는 트로트를 같이하자'고 말하더라고요. 전 처음에 공부하던 사랑이가 바람들어간지 알았어요. 그러다가 정의송 작곡가의 제안을 거절한지 1년만에 다시 찾아갔는데 정의송 작곡가께서 아무말 없이 타이틀곡을 연주해주시는 거에요. 그후 집에 돌아와서 둘이 가야금으로 그 노래를 악보없이 맞춰봤죠. 그리고 지금까지 온 거에요" (이예랑)
이예랑이 가요에 가야금을 맞춘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이미 수많은 가수들의 가야금 세션으로 참여했다. 그러나 세션 참여에 불만이 많았다. 가야금이 단지 들러리로 서 있었기 때문이다.
"녹음하는데 가야금이 필요하다면 달려갔는데 새벽까지 녹음을 하는데 가야금 볼륨을 다 줄여버리더라고요. 가야금이라는 그림이 필요하고 이번에 자신들이 가야금이라는 전통 악기를 했다는 모습만 필요한것이지 소리가 필요한 것은 아니라고 말하면서요. 가야금 소리가 살면 가수가 죽는다고 해서 굉장히 속상했어요. 그래서 이번에 작업을 할 때 작곡가에게 처음부터 끝까지 가야금 볼륨을 모두 높혀주시면 가수를 하겠다고 했고 정의송 작곡가께서 흔쾌히 허락을 하셨죠' (이예랑)

이들의 가수 데뷔에 사실 주위 반대가 심했다. 특히 이예랑은 이미 가야금 연주자로 인정받고 있는 실정에서 굳이 험한 가수 생활을 해야겠느냐는 주위의 만류를 많이 받았다고 한다. 물론 지금은 지지를 해주는 사람들이 늘었다. 도리어 이들의 가수데뷔를 아쉬워하는 것은 연주 공연을 준비하는 기획자들이다. 섭외하기가 난해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은 국악이라는 분야에서 떠난 것이 아니고 그것을 대중들에게 알리기 위해 나왔기 때문에 이에 대해 그다지 신경쓰지 않는 눈치였다. 사람들에게 가야금을 통해 우리 음악이 얼마나 듣기 좋은지 알리는 것에 대한 자부심이었다. 본인들도 국악이라는 것에 대해 거부감을 가졌던 그녀들에게 왜 젊은 층이 우리 음악을 싫어하는지 물어봤다.
"첫번째 이유는 제대로 접할 기회가 없어서에요. 저희가 그 기회를 만들고싶어서 가야랑을 만들었고요. 가야금을 제대로 접하고 나서 싫어하는 사람들은 한명도 못봤어요. 가야금이란 악기는 원래 사랑방 악기로 무릎과 무릎을 맞대고 마이크없이 진동으로 대기를 울려서 연주를 들어야 온전한 소리를 들을 수 있는데 요즘 누가 방에서 누가 일대일로 연주를 합니까. 다 무대에서 마이크 대고 하죠. 그런데 모든 무대가 서양악기 위주로 만들어져서 가야금은 마이너스 효과를 내요. 다른 소리가 나거든요. 그래서 가까이에서 가야금 소리 한번 들은 사람들은 이거 어디가서 배울 수 있냐고 물어봐요. 그리고 대중매체도 문제가 있어요. 가야금에도 다양한 소리가 있는데 늘 유난히도 졸립고 따분한 음악을 틀어요. 저도 그거 들으면 졸립거든요. 물론 그 음악들이 실제로는 뇌호흡에 도움이 되는 등 장점이 있어요. 하지만 이런 다양한 음악이 있다는 것이 제대로 사람들에게 전달되지 않아서 거부감이 생기는 것 같아요" (이예랑)
"시대에 따라 가야금을 연주도 달라져야 된다고 생각해요. 공연을 하러 가서 우리가 준비한 것이 아니라 그 분위기에 맞춰야 하는거죠. 바에 가면 바에 맞는, 결혼식장이라면 결혼식장에 맞게 변화되어야 하죠. 지금은 '국악'이라고 하면 하나의 색깔만 생각하잖아요. 그러나 제가 생각할 때는 가야금은 어떤 색깔이든 표현할 수 있어야 하죠" (이사랑)
이들 쌍둥이 자매의 꿈은 어떻게 보면 단순했다. 가야금이 대중 속으로 좀더 파고들어가길 바라며 통기타 가수가 통기타 들고 나와도 이상하지 않은 것처럼 가야금을 들고나와도 어색하지 않은 그런 분위기를 꿈꿨다.
"저희 야심찬 꿈은 우리나라 대표가수를 말할때 '가야랑'이 먼저 거론되었으면 좋겠어요. 왜냐하면 저희에게는 우리의 악기인 가야금이 있잖아요"
장소=린(lynn) 스튜디오
/ 유명준 기자 neocross@segye.com 사진 황재원 객원기자 news@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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