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5보(246∼261)=이날 기록을 맡은 이는 한국기원 원생이 아니라 현지 교사였다. 유병수씨는 광양제철고 교사이면서 광양시 바둑협회 감사를 맡고 있다. 토요일 휴무를 틈타 아트홀 로비에서의 바둑대회 출전을 마다하고 기록을 자처하고 나선 것이다.
오히려 원생보다 꼼꼼했다. 매 수에 걸쳐 분초 단위를 정확히 체크하면서도 대국자의 표정이나 손놀림, 푸념까지를 메모지에 남기는 세심함을 보여 주었다. ‘힐끗 손 가다 8분 장고…. 원래 그 자리에 둠’(42수;박영훈), ‘에휴’(한숨소리), 고개를 갸웃, 입술 비틀기, 또 에휴(61수;백홍석), ‘에휴 참…’(65수;백홍석), ‘입술에 손, 안경 고쳐 쓰기, 고개 숙여 반상 들여다보기, 돌 들었다 놓기 전 다시 확인…’(72수;박영훈), ‘미친 놈이야, 에휴, 아이고…’(135수;백홍석). 대충 이런 식이다. 대국 태도나 자세에서 그 사람의 매너를 읽을 수 있다고 하는데, 박영훈 기성은 이창호 9단처럼 전혀 군소리 없이 대국에 임하고 있는 데 반해 백홍석 6단은 조훈현 9단처럼 말소리가 심한 스타일로 여과 없이 분류되고 있다.
대국자들이 대국 중에 이런 말소리나 동작을 나타내는 것은 거의 무의식에 가깝다. 중요한 장면에서 자신이 잘 풀리지 않고 있음을 자신도 모르게 표출하고 있는 것이다. 유병수 교사에게 감사드린다.
바둑은 중앙으로 잡혀 있던 백돌이 삶의 궤적을 얹은 데다 ●들을 싸안으면서 다시 눈 터지는 계가바둑으로 환원되고 있다. 역시 끝내기의 달인답게 박영훈 기성이 막바지에 접어들면서 엄청난 성과를 올렸고 그로 해서 판세가 다시 좁아진 것이다. 검토실에서는 설령 그렇다 해도 미세하나마 흑에게 부가 있다고 조심스럽게 전망하고 있었다.
백홍석 6단 또한 자신이 불리하지만은 않다는 자신감이 사그라지지 않으면서 조금도 꿀리지 않고 끝내기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특히 61로 우변에서 마지막 패를 결행하기에 앞서 55로 좌상에서 막은 것들이 훌륭한 끝내기 수법이다. 가령 참고도 흑1로 상변에서 먼저 이으면 백2에 흑3 막는 수순일 터인데, 그래 놓고 흑A로 실전처럼 패를 집어 넣는다 해도 진행상 하자는 없다. 그러나 백B와 C로 두 팻감이 더 생긴다는 데서 실전의 55가 돋보이는 이유다.
이건민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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