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 정부는 가장 중요한 대미, 대북정책의 첫 단추를 끼우는 과정에서 큰 실책을 범했다. 노무현 정부 때의 불편했던 대미관계와 대북 퍼주기 외교를 시정하겠다는 의욕으로 급회전에 급급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한미 정상회담 성과를 자축하며 고조됐던 분위기는 뜻밖에도 ‘광우병 소고기 너나 먹어’식의 힐난과 조롱으로 뒤덮였고 여론의 질타와 논쟁은 몇 주째 끊이지 않는다. 이를 좌파 반미주의자들이 배후에서 부추기기 때문이라고만 생각하면 오산이다. 이명박 정부 스스로 화근과 빌미를 만들었음을 인식해야 한다. 대통령 지지율이 20%대로 추락할 만큼 심각한 신뢰의 위기를 자초한 것이다.
미국에 안겨준 소고기 수입 개방의 ‘선물’이 뒤탈을 낳은 이유는 무엇인가. 광우병 같은 문제가 생겨도 수입을 차단할 장치를 마련하지 못한 책임이 크다. 미국 측 요구대로 소의 연령을 불문하고 모든 부위의 수입을 개방하면서 검역과 통관 절차 등 최소한의 안전장치 확보를 등한히 한 것이다. 우리 협상팀은 미국 측의 동물성 사료 금지가 완화된 사실조차 알지 못한 채 사실상 ‘백지서명’한 것처럼 비친다. 수입확대가 불가피한 줄은 이미 대다수 국민이 느껴온 사안이다. 그렇다고 이런 졸속 처리까지 양해할 수 있겠는가. 정부가 민심이반의 단초를 제공했고 반미세력에도 좋은 구실을 안겨준 것이다.
이명박 정부는 미국에 대해서도 체면을 구긴 셈이 됐다. 계약서에 서명까지 다 해놓고 뒤늦게 계약내용을 바꾸자고 사정한다면 정부 위신은 어찌 되는가. 추가로 자율규제협정을 요구한다 해도 미국에 매달려야 하는 구차한 처지가 됐다. 좋은 ‘선물’을 받았다고 여겼던 미국으로서도 이제는 한국 내 반미 구호가 찜찜하다. 이래저래 이명박 정부의 부담만 커졌다. 졸속협상의 업보가 정권의 발목을 잡고 있으니 안타깝기 짝이 없다.
대북정책 역시 실용과 동떨어져 보인다. 물론 지난 10년간의 ‘햇볕정책’에 대한 반성은 불가피했다. 과거 정권의 일방적 ‘퍼주기’는 부작용이 컸고 반발 여론도 거셌으니까. 그렇더라도 북핵 해결과 함께 남북관계 개선도 중요하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했다. 대북 관계 설정과 발언에는 신중을 기해야 마땅했던 것이다. 6·15 공동선언 등 이행 여부를 재검토하겠다든지 핵기지를 선제타격하겠다는 등의 발언으로 굳이 북한을 자극할 이유가 어디 있는가. 북한은 ‘반민족적’이라며 당국 간 대화를 아예 중단했다. 제2의 6·25까지 운운했다.
정부가 뒤늦게 6·15선언 이행을 긍정 검토하겠다는 방침을 밝혔고 인도적 지원의사를 거듭 강조했지만 ‘차 떠난 뒤 손 흔드는’ 격이다. 그새 미국은 대북 식량지원을 위해 협상대표단을 지난 5일부터 사흘간 평양에 파견했다. 우리는 미국에 귀동냥을 해가며 대북 지원의 부담은 부담대로 떠안아야 될 판이다.
북핵 문제와 대북관계를 풀자면 정책의 일관성과 통일성을 지녀야 한다. 미국과의 사전조율도 중요하다. 북미 간 대화가 진행되는 이때 북한을 자극하는 ‘엇박자’는 우리 자신을 핵협상의 ‘들러리’로 전락시킬 게 뻔하다. 과거 정권이 잘못한 게 많다고 해도 그 모두를 부정하는 게 능사는 아니다. 취할 것은 취해 ‘꿩 잡는’ 게 실용 아닌가.
이명박 정부는 출범 초기 가장 중요한 두 가지 외교정책에서 혼선과 차질을 빚었다. 역주행한 감마저 없지 않다. 앞으로 이를 만회하자면 철저한 반성과 진로 점검이 요청된다. 내치(內治)든 외치(外治)든 멀리 보고 깊이 살피라. 국민이 신뢰할 수 있도록 이제부터라도 실용노선을 제대로 걷기 바란다.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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