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는 가는 허리를 위해 분투하는 여성의 모습이 단적으로 나타난다. 비비안 리는 침대 기둥을 잡고 새침하게 서 있고, 듬직한 흑인 하녀가 뒤에서 허리를 천으로 둘둘 말아 있는 힘껏 당긴 다음 코르셋을 마치 운동화 끈 조이듯 한땀 한땀 튼튼하게 채운다. 허리의 안쪽으로는 각종 내장기관과 갈비뼈(늑골)가 있기에 위험천만한 작업인데, 근대 서양의 침실에선 이런 전족(纏足) 대신 전요(纏腰)가 성행해 코르셋의 압박을 견디지 못한 늑골이 내장을 꿰뚫어 사망하는 사례도 있었다고 한다. 실로 잘록한 허리의 역사는 수많은 여성의 고통의 역사와 맥을 같이해 온 셈이다.
가는 허리는 이토록 중요한 것일까? 여성의 허리는 잘록함 자체만으로도 눈길을 끌지만 성적 매력을 대변하는 가슴과 엉덩이를 더 풍만하게 강조하는 기능을 한다. 스페인이 사랑하는 민중화가 고야의 작품에서도 이런 매력이 돋보이는 ‘알바 공작부인’이라는 작품이 있다. 전해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초상화를 그리기 위해 만난 마드리드 사교계의 꽃과 야심 찬 천재화가는 신분을 뛰어넘는 위험한 사랑을 불태웠다고 한다. 자유분방하고 계산이 철저했던 공작부인이 그에게서 돌아서자 젊은 예술가는 사랑의 상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그녀를 모델로 많은 작품을 남겼다.
고야의 대표작 ‘옷을 입은/벗은 마하’의 모델은 끝내 그 신분이 밝혀지지 않았으나, 그 생김새를 살펴보면 알바 공작부인과 상당히 닮아 있다. 이 미스터리는 오랫동안 스페인을 들썩였고, 그녀의 후손이 관을 열고 유해를 검시하는 해프닝까지 벌어졌다. 얼마나 세간의 이목이 집중된 스캔들이었는지 알 만하다.
순백색의 드레스를 입은 그림 속 공작부인은 빨갛고 두꺼운 허리띠 때문인지 상당히 경직돼 보인다. 분명히 실제 허리두께보다 ‘아름답게 보이기 위해’ 가느다랗게 변조했을 것이다. 요즘 여자연예인들의 사진도 포토숍으로 디지털 성형과정을 거친다는데, 아름다움이란 이처럼 깎고 다듬는 고통을 수반해야 하는 과정인가 보다.
그럼, 허리도 더 가늘수록 매력적으로 보일까? 그렇지 않다. 성인 여자의 이상적인 허리 대 엉덩이 비율은 7대 10, 성인 남자는 9대 10이다. 이것을 WHR(waist-hip ratio)라고 부르는데, S라인의 매력을 판별하는 지수로 사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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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형보 바람성형외과 원장 |
S라인의 비결은 단 하나, 꾸준한 운동뿐이라는 것을 우리 모두 잘 알고 있다. 코르셋에 갇혀 운명을 달리한 여성들에게 심심한 위문을, 그리고 아름다운 S라인을 위해 구슬땀을 흘리는 현대의 비비안 리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심형보 바람성형외과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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