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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중 어떻게 사로 잡을까…

입력 : 2008-04-05 10:18:20 수정 : 2008-04-05 10: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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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군중’이 다시 새로운 키워드로 떠오를 것인가. 유권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아야 할 총선을 앞두고 ‘군중’을 다룬 저서들이 잇따라 간행됐다. 하나는 프랑스 인류학자 귀스타브 르 봉(1841∼1931)이 지은 ‘군중심리’이고, 다른 하나는 독일 역사학자 조지 모스(1918∼1999)가 지은 ‘대중의 국민화’다. 전자가 군중의 집단의식을 다루었다면, 후자는 익명의 대중을 불러 내 국민으로 만드는 문화적 장치들을 분석하고 있다. 국가를 경영하려면 진화하는 군중을 바로 알아야 한다. 군중은 시대를 거슬러 오면서 국가를 움직인 원동력이었다. 

군중심리/귀스타브 르 봉 지음/차예진 옮김/W미디어/1만원
‘군중심리’는 군중이 가진 집단적 본능과 무의식에 관한 최초의 연구보고서다. 한 개인이 다수에 속해 있다는 사실을 알면 형언할 수 없는 든든함을 느낀다. 여기에 더해진 익명성은 책임의식으로부터 해방됨과 동시에 어떤 행동이든 실행에 옮길 수 있는 용기를 부여한다. 심리적 군중이 보여주는 놀라운 면모는 각자의 생활방식, 직업, 성격, 지적 수준과 무관하게 군중에 속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공동체적 영혼을 지닌다는 사실이다. 개인으로 머물 때와는 생각하고 행동하는 방식이 전혀 다르다. 이성적 사고는 무능한데, 행동력은 뛰어나다. 이 때문에 군중을 다룰 줄 아는 연설가들은 언제나 이러한 관념적 연합을 이용해 왔다.

오늘날 유권자들에게서 나타나는 군중의 속성은 빈약한 사유 능력, 비판 정신의 결여, 쉽게 흥분하는 성질, 잘 믿거나 단순함 등으로 대별된다. 따라서 정치지도자들이 군중을 사로잡고자 한다면 무엇보다 그들에게 쉽게 침투할 수 있는 자극적 이미지와 어휘들을 찾아 내 반복적으로 활용할 줄 알아야 한다. 군중은 논리적 설득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유권자들은 당선자가 공약을 얼마나 잘 지키는가에 주목하지 않는다. 환상을 심어 줄 수 있어야 그들의 주인이 된다. 그들을 각성시키려 들면 오히려 달아나거나 그들의 희생양이 된다. 선거출마자와 운동원이 유념해야 할 대목이다.

오늘날 수많은 사상도, 혁명도, 권력도 사라졌지만 군중의 힘은 유일하게 살아남았다. 이제 더욱더 군중이 주인이 되는 시대인 만큼, 정치지도자들은 국가 기반을 공고히 하기 위해 이웃국가 군중 심리까지 파악해야 할 때가 왔다. 군중 스스로도 자신들의 특성을 알고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을 수 있다. 군중의 집단의식이 상세하게 기록돼 있는 이 책은 1895년에 발표된 이래 히틀러의 나치즘 지배 방법론에 적잖은 영향을 미쳤고, 이 시대에도 군중을 사로잡는 기발한 아이디어를 제공하고 있다.

대중의 국민화/조지 모스 지음/임지현·김지혜 옮김/소나무/1만8000원
‘대중의 국민화’는 독일의 상징주의와 대중운동을 다루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많은 역사가가 독일의 파시즘 요체를 역사의 정상 궤도에서 이탈한 전체주의적 강제동원 체제로 분석했다. 이 때문에 민주주의에 의한 파시즘의 패배는 일탈로부터 회복을 의미한다고 해석했다. 과연 그럴까. 지은이 조지 모스는 이 같은 통념을 뒤엎었다. 파시즘은 강제적 동원이 아니라, 자발적 참여와 희생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며, 서구에 팽배했던 인민주권 사상의 구현이었다고 밝힌 것이다. 모스의 주장은 서구 학계를 경악시켰다. 그가 나치즘 피해자였다는 점에서 충격의 강도는 더욱 컸다.

그렇다면 당시 독일에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나폴레옹의 독일 침략 이후 독일 남성합창단에는 민족혼이 움텄다. 메테르니히 반동체제가 독일 통일을 저해할 때는 이 노래패가 반체제가 됐고, 1차 세계대전의 패배와 바이마르공화국 혼란 이후에는 히틀러의 집권을 여는 동맹세력의 역할을 해냈다. 독일 대중의 노래는 유신 시절 새마을운동가나 그 반대편에 섰던 운동가요 같은 것으로, 공통점은 민족주의다. 대중의 마음속에 내면화시켜 자발적으로 참여케 한 것은 히틀러의 공포정치가 아니라, 바로 민족주의라는 강력한 마법의 노래였다는 것이 지은이의 분석이다.

모스는 독일의 건축양식과 미장센, 각종 동호회, 대중예술, 조명과 합창의 진화 등 과거 역사학에서 등한시했던 것들을 분석하면서 이러한 것들이 모래알 같은 대중을 어떻게 강력한 아이덴티티를 가진 국민으로 바꾸어 놓았는지 면밀히 기술하고 있다. 하나같이 독일 민족의 웅지를 담아낸 기념비적 양식이요, 애국적 축제였다. 책은 역설적이게도 이것을 ‘대중독재’ ‘정치종교’라고 이름한다. 국가와 민족, 프롤레타리아트 등과 같은 세속적인 실재를 종교적 숭배 대상으로 삼는 정치현상이라는 것이다.

일본의 야스쿠니신사 참배나 한국과 중국에서의 호국 영령에 대한 제사 의식도 20세기 국민국가 정치종교의 한 상징으로 본다. 정치종교가 파시즘과 나치즘의 패망으로 사라진 것은 아니며 여전히 현재의 역사라는 모스의 결론은 새삼 그의 명제를 재검토하게 한다. 이를테면, 군중을 끌려면 문화이건, 건축물이건 민족적 웅혼을 담아야 한다는 것들이다.



정성수 기자 hul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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