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정책 포스터를 보면 당시의 사회·문화적 환경을 알 수 있다. 통계청은 4일 ‘미래를 읽는 힘, 인구통계’를 통해 1960년대∼현재까지의 주요 인구정책 포스터를 정리했다.
1968년 발행된 가족계획 포스터는 한 어머니와 두 아이를 배경으로 한 달력 형태로 돼 있다. 그 밑으로 “가장 효과적이며 안전하고 간단한 ‘루우프’ 장치를 아십니까? 원하시는 분은 보건소나 가족계획 지도원을 찾으십시요”라고 적혀 있다.
전쟁이 끝난 뒤 가임기 여성 한 명당 평균 6명의 아이를 낳던 ‘베이비붐’ 시대였다. 61년부터 가족계획사업을 공식 채택한 정부는 정관수술 등을 적극 권장했으며 ‘3명의 자녀를 3년 터울로 35살이 되기 전에 낳자’라는 의미의 ‘3·3·35운동’을 펼치기도 했다.
1970년대의 가족계획 정책은 유명한 표어 “딸·아들 구별말고 둘만낳아 잘 기르자”로 대표된다. 인공임신중절을 합법화하는 등 적극적인 출산 억제 정책으로 출산율은 6명에서 4명으로 떨어졌지만 여전히 아기들은 넘쳐났다.
정부는 2자녀 가구에는 소득세를 면제해주고 남성이 불임수술을 할 경우 수용자 공공주택분양 우선권까지 줬다. 76년에는 여성에 대한 불임수술제도 도입됐다.
1980년 출산율은 2.38명까지 하락했지만 정부는 인구억제정책을 더욱 강화했다. ‘잘 키운 딸 하나 열 아들 안부럽다’ 등의 문구로 1명만 낳기를 주문했다. 이때문인지 80년대 중반 이후 출산율은 1.5명대로 떨어졌고 정부는 ‘불임’ 중심의 적극적인 인구억제책에서 소극적인 ‘피임’ 홍보로 정책을 바꾸기 시작했다.
1990년대 정부의 인구정책은 출산율 억제 보다는 아들 선호 사상을 없애는데 초점이 맞춰졌다. ‘아들바람 부모세대 짝꿍 없는 우리세대’ 등의 문구를 포스터에 내걸고 1994년에는 성감별 의사를 처벌하는 법도 제정됐다. 하지만 90년대 중반 이후 저출산 경향이 뚜렷해지면서 정부는 96년 공식적으로 인구억제정책을 폐지했다.
1가구 당 한명 꼴로 출산율이 뚝 떨어지자 정부는 2000년대 들어서서는 인구부양책을 쓰기 시작했다. “아빠! 혼자는 싫어요 엄마! 저도 동생을 갖고 싶어요” “한 자녀보다는 둘, 둘 보다는 셋이 더 행복합니다” 등 제발 아이를 더 낳아달라고 읍소하는 ‘저출산·노령화 사회’에 본격 진입한 것이다.
송민섭 기자 stsong@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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