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제이주기구(IOM)에 따르면 세계 이민자 규모는 1970년 8150만명에서 2000년 1억7490만명으로 30년 만에 2배 이상 증가했다. 이 같은 현상은 미국, 호주, 캐나다 등 전통적인 이민 유입국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다른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으로 확산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2007년 세계 이민 보고서’에서 아일랜드의 총인구 중 이민자가 차지하는 비중은 1996년 6.9%에서 2005년 11%로 늘었다고 밝혔다. 노르웨이도 같은 기간에 이민자 비중이 5.6%에서 8.2%로 증가했다. 한국을 비롯해 체코, 폴란드, 헝가리 등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인력을 수출하던 국가들로도 이민자가 빠르게 유입되고 있다.
이민은 이민 유입국의 경제에 긍정적 역할을 한다. 젊은 이민자는 노령화된 선진국 노동시장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OECD의 ‘2007년 세계 이민 보고서’는 10년 새 스페인에 일자리가 700만개나 늘고, 프랑스와 호주에서 각각 일자리 200만개가 증가한 것은 외국 인력이 역동적으로 유입된 덕분이라고 분석했다. 외국인 노동자가 인력이 부족한 산업에 투입되면서 또 다른 신규 일자리를 창출하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졌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미국은 10년간 늘어난 일자리 1617만개 가운데 절반 이상인 886만개를 외국 인력이 차지했다. 같은 기간 외국 인력의 일자리 증가율은 71.4%로, 전체 일자리 증가율(13.2%)의 약 5.4배에 달했다. 아랍에미리트연합(UAE)은 총인구의 85%가 이민자로 구성돼 있을 정도이다.
이민자를 내보내는 개발도상국들이 얻는 경제적 혜택도 크다. 이민자들이 선진국에서 취득한 새로운 기술과 재산, 선진 아이디어를 갖고 귀국하는 사례가 늘어나는 덕분이다. 특히 이민자들이 본국에 보내는 송금액은 엄청나다. 국제농업개발기금(IFAD)에 따르면 개도국 출신 이민자들이 2006년 한 해 동안 본국에 보낸 송금액은 3010억달러에 달했다. 이는 선진국들의 개도국에 대한 투자나 원조 규모의 총 합계보다도 많은 수준이다.
세계은행은 보고서에서 지난해 이민자들이 115개 개도국에 송금한 금액은 2003년보다 10% 증가했으며, 그 결과 하루 1달러 미만으로 생활하는 극빈자가 3.5%나 감소했다고 분석했다. 딜립 라타 세계은행 연구원은 “남태평양의 섬나라 통가는 이민자들이 보내오는 돈이 전체 국내총생산(GDP)의 27%를, 카리브해의 섬나라 아이티는 21%를 각각 차지한다”고 말했다.
이민자들의 역할도 달라지고 있다. 과거 개도국의 미숙련 노동자들이 선진국에서 단순 노무나 중노동을 하던 형태에서 벗어나 이제는 고급 기술자들의 이민이 눈에 띄게 늘고 있다. 미국은 지난 7년간 노벨물리학상 수상자 가운데 3분의 1, 자연·공학 계열 박사 중 40%가 이민자이다. 실리콘밸리 기업의 3분의 1은 인도인이나 중국인이 설립했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2000년 선진 20개국의 이민자 5200만명 가운데 대학졸업자 비중은 36%에 달했다.

이민자들이 선진국으로만 유입되는 것은 아니다. 세계은행의 2005년 조사 결과에 따르면 세계 이민자의 5분의 2가량인 7800만명이 선진국이 아닌 개도국에 정착한 것으로 드러났다. 동남아시아 인구의 절반가량은 이웃 국가에 정착하며, 동유럽과 중앙아시아 국가의 이민자 중 3분의 2는 해당 지역 내에 머물고 있다. 사하라사막 남부 아프리카 출신 이민자 중 70%는 아프리카 대륙에 남는다. 모로코, 멕시코, 터키, 리비아, 인도, 러시아, 남아프리카공화국, 아르헨티나 등도 이민자들의 종착지가 되고 있다.
이민 비판론자들은 한 국가에 대규모 이민자가 유입되면 일자리가 줄고 범죄율이 높아지며 공공서비스와 세금 체계에 과도한 부담을 줄 수 있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이민 유입국의 단순 노동직은 외국인 유입으로 수입이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조지 보르하 하버드대 교수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미국에서는 1980년부터 2000년까지 20년간 이민자의 유입으로 전체 직군의 임금 상승률이 억제됐으며, 비숙련 노동직은 그 정도가 심한 것으로 드러났다.
인력 수출국은 기술자들이 높은 임금을 찾아 해외로 떠나면서 두뇌 유출이라는 부작용을 겪기도 한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은 대학 졸업자들이 대거 호주나 영국으로 떠나 수만개의 일자리를 채우지 못하고 있으며, 모로코의 과학도와 공학도, 컴퓨터 전문가 등은 프랑스나 네덜란드, 캐나다로 떠나 개도국의 인력난이 가중되고 있다고 이코노미스트는 전했다.
이보연 기자 byabl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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