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처음에 윤회사상과 함께 인도철학의 초기 우파니샤드사상에서 발생한 ‘업’의 개념은 뒤에 불교에 도입돼 인간의 행위를 규제하고, 살아있는 중생에게 윤회의 축이 되는 중요한 의미로 부각되었다. 선인선과(善因善果)·악인악과(惡因惡果) 또한 선인낙과(善因樂果)·악인고과(惡因苦果)의 뜻이 모두 업과 연결돼 있다. 인격의 향상은 물론 깨달음도 업이 인도한다고 여겨지고 있다. 업이 미치는 범위는 현생에서 더욱 확대돼 전생에서 내세로까지 연장되었다. 불교에서는 신(身)·구(口)·의(意)를 3업이라고 하여, 신체와 말과 마음은 언제나 일치해서 행위로 나타난다고 가르친다.
요즘 정치권을 보며 새삼 ‘업보’의 뜻을 새겨보게 된다. 여야의 공통점은 과거 당내의 비주류가 주류가 돼 마치 ‘칼자루’를 바꿔 쥔 형국이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비주류 신세였던 이들이 대선을 계기로 정권의 중심세력으로 떠올랐거나 당 지도부로 입성해 당권을 장악한 것이다. 4월 총선 공천을 앞두고 각당의 비주류 측 인사는 ‘칼 끝’을 마주한 채 주류 측과 힘겨루기를 해야 할 처지다.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최근 정국상황을 보면 칼자루를 쥔 쪽이나 칼 끝에 선 쪽 모두 분에 넘치게 의기양양하거나 지나치게 의기소침할 것까지는 없는 듯하다. 주어진 여건에서 최선을 다하고 수시로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며 역지사지의 자세를 견지해 봄직하다.
얼마 전 모 정당의 중진이 당을 위해 최선을 다했는데 ‘토사구팽(兎死狗烹)’ 당하게 됐다고 말해 파장이 일었다. 15년 전인 1993년에도 김영삼 정부 출범 직후 김재순 전 국회의장이 공직자 재산공개과정에서 국회의원직 사퇴와 함께 정계를 떠나면서 김 전 대통령과 민주계를 겨냥해 토사구팽이란 말을 써서 당시 정치권에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음지가 양지가 된다. ‘남의 눈에 눈물내면 제 눈에는 피눈물난다’는 속뜻을 이참에 정치인들도 되새겼으면 한다.
황용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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