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닷컴] “전 인간이 아니예요. 캐릭터예요.(웃음)”
우리가 기억하는 어린이 프로그램의 스타들은 누가 있을까. 모든 어린이들에게 언니 같고 엄마와도 같았던 뽀미언니 왕영은, 뚱뚱한 체격과 배추머리로 보기만 해도 웃음이 나오던 ‘뽀식이’ 이용식과 ‘뽀병이’ 김병조, 어린이들에게 한때 시금치를 많이 먹게 했던 뽀빠이 아저씨 이상용까지. 10년이 넘는 기간에도 어린이 프로그램 스타는 다섯 손가락에 꼽기 힘들 정도다. 요즘 아이들에게 좋아하는 어린이 프로그램 스타를 물으면 누굴 꼽을까. 단연 ‘뚝딱이 아빠’ 김종석씨다.
어린이들에게 대통령으로까지 불리우는 김종석씨가 ‘뚝딱이 아빠’로 살아온 지는 벌써 14년째. 뚝딱이는 EBS 딩동댕 유치원에 나오는 7살짜리 어린이 인형이다. 그는 올해 처음으로 개최된 'EBS 캐릭터 인기대상' 시상식에서 인기상을 받았다. 상이 증명하듯 자신은 인간이 아니라 캐릭터라고 주장(?)한다.
김씨는 하트와 꽃무늬가 그려진 노란색 상의, 알록달록 과일들이 주렁주렁 매달린 모자 그리고 트레이드마크가 된 흰색 뿔테 안경을 쓰고 인터뷰 실에 등장했다. 어린이들이 보면 정신을 쏙 빼놓을 만큼 휘황찬란한 소품들이 온몸에 가득이다. 총 480개의 뿔테 안경을 가지고 있고, 독특한 모자는 500개, 여러 가지 그림이 그려진 옷도 280벌나 있다. 소품 개수들이 그가 얼마나 오랫동안 그리고 열성적으로 자신의 캐릭터를 지켜 왔는지 말해준다.
어린이들은 ‘뚝딱이 아빠’를 만나면 너도나도 달려들어 모자를 벗기고, 옷을 찢기도 하고, 커다란 상의 속으로 너댓명씩 머리를 밀고 들어가기도 한다. ‘뚝딱이 아빠~ 이리 와봐’ 하는 반말을 듣는 것은 예사다. 그는 어린이들의 반말이나 짓궂은 행동들로 기분이 상하진 않을까.
“기분이 나빴으면 벌써 그만 두었겠죠. 오히려 ‘아저씨 누구세요?’ 하면 더 화가 나요. 서운하고 막 삐져. 제가 10살까지는 어린이 대통령, 가수 ‘비’예요. 아이들이 10살 이후 의식을 찾아가면 인기가 급격하게 떨어집니다. 그러다 서른살쯤 되면 다시 인기가 올라가죠. 자녀를 키우는 나이가 되니까 자녀들과 함께 다시 프로그램을 시청하게 되면서죠.”
그가 어린이 프로그램을 처음 할 때만해도 방송 환경은 열악했다. 어린이 프로그램으로 온 프로듀서들은 모두 ‘물먹었다’고 표현할 정도. 하지만 강산이 변하는 10년동안 어린이 프로그램 환경도 많이 바뀌었다. 전문 프로듀서들이 양성 되고, 프로그램을 위해 언어 전문가, 놀이 전문가, 율동 전문가까지 모두 구성된다.
그는 사실 이름만 대면 알만한 유명 코미디 프로그램에 출연했던 개그맨이다. 청춘 만만세, 영 일레븐, 웃으면 복이와요, 폭소 대작전을 거쳐 MC로도 조금씩 활약을 보이던 그가 어린이 프로로 우회한 것은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유능한 개그맨들은 너무 많았고 방송 또한 전문화되었기 때문에 더 이상 무언가를 개척할 여지가 없어보였다. 그러나 어린이 프로는 무한한 가능성이 보였고, 전문화가 절실히 요구됨에도 아무도 실천하는 사람이 없었다. 결국 남들이 가는 길을 가지 않는 역발상이 그에게 큰 행복을 가져다준 것이다. 그때 함께 했던 개그맨 동료들 중 지금까지도 활발히 활동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저에게는 변하지 않는 철학이 있어요. ‘나는 지금 낭떠러지에 산다. 여기서 떨어지면 난 죽는다’. 절박감이요? 어렸을 때 너무 가난하게 살아기 때문이에요. 형제가 4남 3녀였는데, 그 시절은 너무 가난해 첫째가 대학가면 둘째는 못가고, 셋째가 대학가면 넷째가 못가는 식이었죠. 제가 대학을 못가는 순서였어요. 너무 대학이 가고 싶어서 부모님께 입학만 시켜준다면 그 다음엔 내가 알아서 다 하겠다 말씀드렸죠. 당시 단돈 17만원을 가지고 서울에 올라와 지금까지 왔습니다.”
당시 김씨는 전 재산인 17만원 가지고 방을 하나 구했다. 연탄공장 옆에 딸린 작은 방이었다. 생활비를 벌어야 했으므로 그 외딴방에서 과외를 시작했다. 처음 두 명이던 학생이 네 명으로 늘었고, 네 명이던 학생은 여섯 명으로 늘었다. 열정을 가지고 가르치니 금세 입소문이 퍼져 학생들을 모두 수용할 수 없을 정도였다. 마침 옆에 비어있던 방 3개짜리를 빌려 대학원을 다니던 친형과, 수학을 전공한 사람을 영입해서 아이들을 가르칠 만큼 번창했다.
“군대를 다녀오니 돈을 더 빨리 벌고 싶더군요. TV를 보니 개그맨이 돈을 많이 버는 것 같았죠. 방송사 개그맨 시험에 운좋게 한 번에 합격했고, 얼마간 방송을 하다보니 금세 인기 개그맨이 될 수 있을 것만 같았죠.”
그는 자신이 너무 어렵게 자라 남을 돕는 것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한다. 자신의 소신대로 10여전부터 ‘재능 10% 사회 환원하기 운동’을 몸소 실천해왔다. 이러한 남다른 선행이 알려지며 지난해에는 ‘전국 자원봉사자 대회’에서 장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물질로 봉사를 할 수 있다면 더 좋은 겁니다. 하지만 자신의 재능까지 나누면 더 좋을 게 없죠. 저는 재산이 없었고 그래서 재능을 환원하자 결심했습니다. 백혈병 아이들에게 웃음 치료를 해주거나 마음의 병을 앓고 있는 이들에게 스스로 웃음을 통해 병을 치유하는 것을 겪어보니 공책 하나 연필 하나 주는 것보다 훨씬 더 소중하고 값지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는 현재 서정대 유아교육과에 교수로 재직 중이면서 음성에 있는 동요학교의 교장선생님이기도 하다. 동요학교는 많은 재정난을 겪고 있음에도 평생 운영하고 싶은 이유는 아이들에게 맞는 율동과 노래, 예쁜 가사를 들려줌으로써 보람을 느끼기 때문이다.
“좋은 옷이라고 해서 양복을 아이에게 입히지 않습니다. 의식을 지배하는 노래를 과연 어린이 눈높이에 맞춰 주고 있나요? 아닙니다. 모두 어른들 눈높이에 맞춰 만들죠. 가요를 입에 달고 살고, 또 부모들은 잘 부른다며 박수쳐줍니다. 미래 아이들의 정서 안정을 위해 어린이 구조에 맞는 노래를 들려주자는 것입니다. 창작곡도 만들어보고, 여러 가지 체험들을 하면서요.”
그는 또 유치원 교육에 대해서도 일침을 놨다.
“우리나라는 교육을 100m 단거리 경주로 생각합니다. 교육이란, 42.195km의 퍼펙트한 마라톤이에요. 처음부터 페이스를 잘 유지 해야죠. 마리톤을 해야하는데 유치원 때부터 100m 뛰듯이 달리라고 하니 되겠습니까? 고등학생의 대입만 문제가 아니라 유치원 교육부터가 중요합니다. 주입식 교육에서 놀이 교육 문화로 바꿔어야죠. 천재 교육을 위한 학습장으로 만들지 말아야 합니다.”
이렇게 재미있는 아빠와 함께 사는 아이는 어떨까, 가족사항을 궁금해 하니 자신에겐 ‘뚝딱이’ 아들 하나 밖에 없단다.
“사실 가족 얘기를 절대 안해요. 10년 넘게 뚝딱이 아빠로 살고 있는데, 진짜 가족 얘기를 하면 어린이들이 혼란스러워 합니다. 환상이 깨질 수도 있거든요. 절대 안돼요.”
주위에서 그의 가족 사항을 많이 궁금해하지만 그는 아이들이 뚝딱이 아빠의 현실적인 실체를 알게 되면 혼선이 와 결국 상처가 될 것이라며 공개하기를 한사코 사양한다. 평생을 ‘뚝딱이 아빠’로 남고 싶은 그의 작은 바람이다.
장소협찬=삼일로 창고극장
/ 두정아 기자 violin80@segye.com · 사진 박효상 객원기자 / 팀블로그 http://comm.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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